항목 ID | GC02201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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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山書堂 |
영어의미역 | Sosan Village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111-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남중 |
성격 | 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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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사파동 111-7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기호가 지었던 서당.
[개설]
소산(小山) 김기호(金琦浩)[1822~1902]는 창원의 남쪽 사파정마을 김녕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37세에 동향 문우들과 요천시계(樂川詩契)를 맺어 요천시사(樂川詩社)를 지도하고, 39세에 소산제(小山薺)를 지어 고장 선비들을 길러낸 유서 깊은 소산서당을 창시하였다. 44세에 김해부사(金海府使) 허전(許傳)에게 나아가 학문을 전수받았으며, 한평생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오직 자기 수양과 후진 교육에 정성을 바쳤다. 효성이 지극하고 품성이 고결하여 고을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다.
[변천]
1861년(철종 12) 비음산(飛音山) 아래 낮은 산기슭 북쪽에 세워졌는데, 소산재라 이름 붙였다. 그러다 1892년(고종 29) 마을 앞 소산 산기슭에 재실을 옮겼다. 1942년 중창을 도모한 지 11년 만인 1952년에 마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 지었다. 해방 이 후 한글 전용 정책으로 한문이 밀려나 서생들이 할 일이 없어지자 김기호의 후손들이 근대적인 교육기관인 남면중학교[현 창원남중학교]를 설립하여 소산서당의 유업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 1995년 창원시 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부득이 소산서당을 헐고 옮겨 지은 것이 추원재이다.
[형태]
동쪽은 문암헌(文岩軒), 서쪽은 지산재(地山齋)가 있고, 정문은 진덕문(進德門)이라 하였다. 추원재는 정당(正堂)이 4칸이고 문랑(門廊)은 3칸을 지어 추원재라 하였고, 입문(入門) 역시 진덕(進德)이라 하였다. 이는 선조를 추모하고 덕을 닦고 있다는 뜻이라 한다.
[의의와 평가]
소산서당은 유서 깊은 배움의 전당으로, 지금은 사파동 김녕가문에서 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소산공(小山公)의 가르침을 전승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관(官)과 유림이 협력하여 소산서당의 유업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계승,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