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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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家屋 |
영어의미역 | Tradition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이호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지역에 있는 조선 시대 전통 가옥과 근대 서민 가옥.
[개설]
창원시는 1983년 부산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이 옮겨오면서 지역의 행정과 산업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창원시 일대에는 높이 5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가 넓게 분포하며, 북동부 낙동강 연안의 충적 평야는 곡창 지대를 이룬다. 연평균 기온은 12.9℃, 연평균 강수량은 1,527㎜로 연중 기후가 온화하여 가옥은 개방적인 남부 지방형으로 발달하였다. 조선 시대 창원 도호부였던 창원에는 다양한 전통 가옥이 있었을 것이나 노후화와 도시 개발로 대부분 헐리고 소수의 전통 가옥만 남아 있다.
[종류 및 형태]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있는 ‘창원의 집’은 1898년에 지은 퇴은(退隱) 안두철(安斗喆)의 생가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二’자형으로 배치되고, 그 앞에 중문채와 대문채가 놓인 형태이다. 정면 6칸 안채는 가운데 2칸 대청을 두고 좌우에 큰방과 작은방을 둔 형태이고, 구조는 대들보 위에 종보를 올린 5량가이다. 사랑채는 정면 4칸의 소로 수장(小櫨修粧)집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꾸몄다.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는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의 생가[등록 문화재 제200호]가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1920년대, 대문채는 1940년, 별채와 사미루(四美樓)는 1926년에 각각 지어졌다. 배치는 안채 정면 좌우에 아래채와 곳간채, 그 앞쪽에 대문채가 있었으나 곳간채는 1994년 도시 계획 도로 개설 시 철거되었다. 별채는 안채와 떨어져 있으며 사미루는 별채에 부속된 대문채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ㄷ’자형 소로 수장집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형태이다. 정교한 치목, 아름다운 비례, 다양한 수납공간, 높은 다락, 채광을 고려한 키 큰 미서기 유리문 등은 근대 창원 지방 상류층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서민 가옥은 사례가 많지 않으나 창원의 전통 민가를 계승한 1930~1970년대 가옥을 통해 그 대강을 살펴볼 수 있다. 외리 마을[현 삼정자동]에 있던 강미룡 가옥은 1960년경에 지은 전통 가옥이었으나 택지 개발로 철거되었다. 안채와 사랑채를 ‘二’자형으로 배치하고, 그 앞에 중문채와 대문채가 놓인 형태이다. 대문채 없이 아래채 앞을 돌아 안채로 출입하였다.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구(舊) 김해진 가옥은 1956년에 지은 것으로 임대 아파트 건축으로 철거되었다. 안채와 사랑채, 대문, 도장이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안채는 민도리집으로 부엌, 툇마루가 있는 큰방, 대청, 작은방으로 이루어졌다. 독립된 사랑 마당이 없는 정면 4칸의 사랑채는 남성 영역의 독립성이 약화된 모습이다.
1970년 초에 지은 의창구 봉림동 김계배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하게 배치된 형태로, 새마을 사업 때 초가를 기와집으로 개량하였다. 정면 3칸의 안채 평면은 마루 없이 부엌·큰방·작은방으로, 정면 4칸의 사랑채는 온돌방·대문칸·사랑방·마굿간으로 구성되었다. 좁은 대지에 전통 가옥의 평면과 구조를 토대로 근대 한옥의 기법을 수용하여 지었으나 봉림동 임대 아파트를 건축할 때 헐렸다.
봉림당은 의창구 봉림동에 있는 가옥으로 1939년에 초가로 지은 후 1970년에 기와로 개량하였다. 정면 4칸의 안채는 부엌, 툇마루가 있는 큰방, 대청, 작은방으로 이루어졌으며, 부엌 뒤쪽의 찬방 바닥에는 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6칸으로 서쪽부터 도장, 머슴방, 큰 사랑방, 작은 사랑방, 마루 및 통로, 대문간으로 구성되었다. 안채와 사랑채의 영역을 분리하고 사랑채에 대문간·도장 등을 집약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창원시 성산구 삼정자동의 이상두 가옥은 납도리를 사용한 민도리집으로 택지 개발로 철거되었다. 방 앞에 툇마루를 꾸민 정면 3칸의 안채는 마루 없이 부엌, 온돌방이 2칸으로 구성되었으며, 3량가의 사랑채는 정면 2칸 규모의 장여 수장(長欐修粧)의 겹집이었다.
성산구 삼정자동의 이한통 가옥은 전의 이씨(全義李氏) 예안공파 종가로 1900년 초에 지은 것이다. 주생활의 변화에 대응하여 부엌을 입식 부엌으로, 대청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지금은 택지 개발로 철거되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규모였으며, 왼쪽부터 부엌·큰방·대청·작은방의 순으로 평면을 구성하였다. 종가의 주생활과 제례를 고려하여 마루를 넓게 구성한 특징이 있다. 안채 앞에는 아래채가 마주 보며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아래채는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좌측으로부터 외양간 1칸,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징]
창원 지역의 전통 가옥은 남녀 거주 공간이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었으며, 안채와 사랑채 앞의 안마당과 사랑 마당은 다양한 옥외 생활공간으로 중시되었다. 좁은 대지에 지은 서민 가옥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집약 배치되었다. 안채와 사랑채의 규모는 대개 3~5칸 정도가 대부분이었으며, 안채와 사랑채의 구조는 민도리계 3량가이며, 상류 가옥의 경우 장여(長欐)나 소로(小櫨)를 사용하여 꾸몄다. 개항 이후 전통 가옥은 외래 건축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수납 공간, 채광을 고려한 키 큰 미서기 유리문, 붉은 벽돌 등을 사용하여 주생활의 편의와 효율성 및 장식성을 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