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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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名說話 |
영어의미역 | Folk Tales of Place Name |
이칭/별칭 | 지명 전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이홍숙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전해오는 설화 중에 지명에서 생성된 이야기.
[개설]
지명 설화는 지명과 더불어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지명 전설은 지명 유래담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지명을 지칭하는 우리말을 활용해서 생성된 것이다. 창원 지역의 지명 전설도 창원의 각 지역의 지명을 뜻하는 우리말에서 생성된 것이다.
[지명의 생성적 의미]
지명 전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명 전설은 지명을 표기하고 있는 언어 또는 지명을 지칭하는 음운에 의해서 인물이 생성되고, 그 인물들의 활약상 등이 생성되어 서사화(敍事化)[이야기를 구성함]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명은 옛 문헌의 표기상으로는 대부분이 한자로 되어 있고, 표기되지 않고 구전되어 오는 것 또한 한자의 음을 그대로 발음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표기되지 않은 원래 음가가 지역에 정착되어 그 지역의 사투리로 전해 오고 있다.
지명은 신화시대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 인식적 상관물로서 신화시대의 공간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화시대의 공간 인식이 방위로 인식되어 오늘날의 지명이 된 것이다. 신화시대 사람들의 공간 인식은 오방 체계(五方體系)로서 드러나는데, 이 오방(五方)에는 오방을 지칭하는 우리말이 존재했었다. 오방을 지칭하는 우리말은 한자의 차자(借字) 방식에 따라 표기되거나 혹은 사투리로 정착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오방을 지칭하는 음가로서 중심(中心)을 뜻하는 우리말은 ‘~, ~, ~’이 존재하고, 동쪽을 지칭하는 음가로서 ‘~’의 음가가 존재하며, 서쪽을 지칭하는 음가로서 ‘~’이 존재하고, 남쪽을 지칭하는 음가로서 ‘~’이 존재하며, 북쪽을 지칭하는 음가로서 ‘~’이 존재한다. 지명 전설은 이들 지명을 지칭하는 언어들과 관련이 있다. 지명을 지칭하는 방위 어사들이 전설의 주인공 이름을 생성해 내고, 그 어사들이 활용형으로 활용되어 하나의 서사체를 형성하면서 이야기가 생성되는데 현존하는 지명 전설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지명과 관련된 전설은 표현상으로는 지명을 표기하고 있는 방위 어사의 음(音)이나 훈(訓)을 활용하여 등장인물, 공간, 인물들의 활약 등을 생성하여 형성된 것이다. 동시에 내용상으로는 방위 어사로서 지명에 내재해 있는 신화시대의 인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시대 인식의 핵심은 천지창조를 보여주는 의례와 이야기에 들어 있다. 의례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어떻게 해서 생성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 우주 공간이 초자연적 존재인 신들에 의해서 창조된 신성한 공간이며, 그래서 신성한 공간에 살고 있는 인간 또한 신성한 존재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명에 이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대표적 지명 설화]
창원의 지명 전설은 서사 내용면에서 길이가 아주 짧은 것을 비롯해 제법 길이가 긴 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명에 붙어서 전해 온다. 창원의 지명 전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에 대한 예로써 『창원 시사』에 수록되어 있는 지명 전설 중 몇 개와 그 생성적 의미를 소개한다.
1. 「울르말등 전설」
창원시 의창구 동읍 태봉산(泰峰山)에 울르말등이라는 등성이가 있다. 여기에는 “옛날 아기장수가 나자 역적이 될 인물이라 하여 아이를 죽였는데 그 아이를 태운 말이 여기서 울었다고 한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울르말등이 있는 태봉산은 의창구 동읍 산남리와 죽동리에 걸쳐 있다. 태봉산은 태(泰)에 들어 있는 ‘큰’의 의미로 보아 ‘중심 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지역의 중심에 해당하는 산이다. 동제를 비롯한 각종 제의가 이 산에서 행해진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제의는 중심으로 인식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산은 옛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르말등’은 태봉산이 갖는 중심 산의 의미와 같은 의미의 이름이다. 우르말등은 ‘울루말등’, ‘울말등’, ‘우말등’ 등으로 불린다. 이는 기본적으로 ‘울+말+등’으로 형성된 말이다. ‘울’은 ‘~’의 변이음이다. ‘~’은 천지창조를 되풀이 하는 신과 관련된 음으로서 우주의 중심을 뜻한다. 우리 신화에서 ‘~’의 음가는 주로 ‘알’ ‘아기’의 형태로 변이되어 표현되어 있다.
수로왕 신화에서 ‘구지’에서 나온 수로가 ‘알’의 형태로 있다가 ‘아이’가 되고 왕이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박혁거세 신화에서 ‘알’에서 나온 이가 ‘아이’이고 ‘아이’가 ‘왕’이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동명왕 신화에서 유화가 큰 ‘알’을 낳고 여기서 ‘아이’가 나와 ‘왕’이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알=아이=왕’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신격(神格)과 동격이며, 천지창조를 실현하는 중심이 되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알~’이 신격이라면 신이 천지를 창조하는 곳은 천지창조가 실현되는 우주의 중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알~’은 우주의 중심을 뜻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의 변이형 ‘알’과 ‘아기’는 또한 우주의 중심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알’과 ‘아기’는 ‘~’에서 생성되어 서사화 된 형태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은 ‘울’로 변이되어 ‘말이 울었다’로 서사화 되어 있다. ‘’의 음가가 서술형 종결어미와 결합하여 ‘울다’로 변모한 것인데, ‘~’이 ‘울다’로 변모한 것은 신화에서 ‘울음소리’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지음(天地音)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음은 천지를 진동시켜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알리는 것을 말한다. 이 전설에서 말이 울었다는 것은 ‘울말등’이라고 하는 ‘대지의 질서’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
이 같은 기능을 가진 화소는 수로왕 신화에서 아홉 구간들이 알천언덕에 올라 왕을 모실 모의를 하는데 북쪽 구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서 그래서 그 소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박혁거세 신화에서는 육부의 촌장들이 알천언덕에서 나라를 세울 것을 모의하는데 나정우물가에 말이 꿇어앉아 우는 형상을 하고 있더니 큰 소리로 울고서는 하늘로 올라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박혁거세 신화의 “말이 울고 하늘로 올라가자 그 자리에 금합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에 알이 들어 있었는데 그 알에서 나온 이가 혁거세왕이 되는” 화소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알’에서 탄생한 혁거세왕이 신라를 건국한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의미한다. 말이 울었다는 것은 왕의 탄생과 더불어 신라라고 하는 나라가 건설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서의 천지음(天地音)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전설에서 말이 울었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예고하는 천지음이며 신화적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화소가 우루말등의 ‘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울루말등’의 지명은 중심을 나타내는 신화적 화소 ‘~’에서 생성된 지명인 것이다.
‘말’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진 표현인 것은 우리의 신화에 등장하는 ‘말’의 의미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박혁거세 신화의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와 땅을 비추고 있고 거기에 흰말이 꿇어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가가자 말은 울면서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금합이 있었는데 그 속에 알이 들어 있었고 이 알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혁거세왕이 된다”는 기록을 보면, ‘말’과 ‘알’ 그리고 ‘아이’와 ‘왕’이 의미상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것과 연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것은 천지가 창조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고, 천지가 창조되는 곳은 우주의 중심을 뜻한다. 따라서 ‘마(馬)’는 우주의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 ‘~’을 표기하기 위해 차자된 것이다.
‘등’은 산·봉과 같이 쓰이며, 여기서는 우주의 질서가 들어 있는 대지의 질서로서의 중심 되는 마을을 뜻한다. 설화 속의 아기장수의 ‘아기’는 ‘~’에서 생성된 것이고, ‘장수’는 신격인 왕의 시대적인 변모 형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중심을 뜻하는 지명을 모태로 생성된 것이다. 대부분의 아기장수 이야기는 이처럼 중심과 관련된 지명과 더불어 존재한다.
2. 곰절 전설
곰절은 창원시 불모산에 있는 절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절을 재건하려 할 때 어느 날 밤 곰이 절터에 나무를 물어다 놓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곰절의 원래 이름은 웅신사(熊神寺)이다. 『여지도서』 창원 대도호부 사찰조에 “웅신산재불모산(熊神山在佛母山)”이라는 기록이 있다. 곰절이 웅신사로 표기된 것은 ‘웅(熊)’이 ‘곰’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이기 때문이고, 웅신사의 ‘신(神)’은 ‘곰’의 의미를 강화시켜주기 위해서 차자된 것이다. 따라서 ‘곰’과 ‘신’이 동격이라는 결론이 성립된다.
‘곰’은 지모신격으로서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 ‘~’의 변이형이다. ‘~’이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인 것은 「구지가」의 ‘구’가 ‘검’, ‘’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 쓰인 데서 나타난다. 이는 거북의 옛 말이 ‘검’이었기 때문이다. ‘검’ 내지 ‘’은 신(神)을 통칭하기 때문이라는 박지홍의 주장과 김철준의 성씨와 관련된 주장을 수용하여 김수로(金首路)의 성 ‘김(金)’이 ‘, ’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이며 이것이 ‘중심’인 ‘구지’에 들어 있었던 관계를 통해 ‘~’이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임을 검증한 민긍기의 주장에 의하면 ‘~’은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따라서 곰절의 ‘곰’이 목재를 날랐다는 것은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 ‘~’의 변이형 ‘곰’을 짐승 ‘곰[熊]’으로 인식하고 만들어 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곰이 밤에 무슨 맘으로 나무를 날랐겠는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 전설은 곰절의 본래 음인 ‘~’의 음가가 ‘곰’로 표현되자 이것이 짐승 곰을 뜻하는 줄 알고 만들어 낸 것이다.
전설의 내용에 따르면 ‘곰’이 ‘밤’에 목재를 날랐다 에서 ‘곰’이 신화적 어사인 것은 물론이고 ‘밤’ 또한 신화적 화소다. 왜냐하면 밤은 어둠의 시간으로서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의 혼돈 즉 카오스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는 곰절이라고 하는 새로운 질서의 세계 즉 천지가 밤이라는 혼돈을 되풀이 하여 창조되는 것을 보여 주는 신화적 표현이다.
3. 조갈내 전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밀양 박씨 문중에 우곡(愚谷) 박신윤이란 사람이 있었다. 가난한 선비의 후손인 박신윤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으며, 또한 아홉 살에 소학에 입문할 정도로 학문에도 우수하였다.
집안이 궁벽하였으나 어린 나이에도 자못 의젓함이 있어 겨울철 얇은 겉옷에 빨갛게 얼은 다리일망정 대님만은 얌전히 맸고,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에 이웃들이 “과연 선비다.”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맨다리에 행건 친다’는 말이 이로부터 생겼다고 한다.
박신윤이 서른여섯 살 때의 일이다. 창원시 지귀 마을의 유력자 노온이 인근 고을 사우(士友)들과 함께 박신윤을 재각 낙성연(落成宴)에 초대하였다. 모든 사람이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홀로 박신윤만이 수저를 들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노온이 이유를 물으니, 병석에 누워 있는 노모 걱정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에 감동한 노온이 박신윤의 효성을 크게 칭찬하고, 연회가 끝난 후에 집에 가져갈 음식을 따로 마련해 두었음을 말하자 그제야 박신윤은 음식을 들었다고 한다. 때는 여름철인지라 박신윤이 노모에게 드릴 음식을 가지고 돌아가는데 마침 큰비가 쏟아져 냇물이 넘쳐 건널 수가 없었다. 박신윤이 탄식하여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이 나의 불효를 꾸짖어 죄를 준다.’고 애통해 하며 글을 써서 물에 띄웠는데, 갑자기 물결이 갈라지며 징검다리가 나타나 무사히 내를 건넜다 한다.
그 후로 냇물이 갈라졌다 하여 이 내를 조갈천[조갈내]라 하였는데 비가 와서 홍수가 날지라도 이 조갈천만은 한나절만 날이 좋으면 징검다리가 보여 내를 건널 수 있다고 한다. 박신윤은 그로부터 2년 후 신병으로 젊은 나이에 어머니보다 일찍 임종을 맞게 되었는데, 부모보다 먼저 죽으니 불효라 하면서 죽었다 깨어나기를 세 번 반복하였으나 결국 눈을 뜨고 운명하였다고 한다. 이에 박신윤의 학문과 효행을 기려 운암사우가 건립되었고, 이 후 운암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지금도 음력 4월 25일에 운암 서원에서 효자 우곡 박신윤을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다.
조갈내 전설은 조갈내라는 지명에다가 박신윤 장군의 효성을 연관 지어서 만들어 낸 이야기다. 조갈내는 ‘燥渴川(조갈천)’이라는 한자말이다. 우리말 음은 ‘말내’ 였을 가능성이 크다. ‘燥[조]’의 음이 ‘마르다’이고 마르다는 우리말 ~의 음가의 변이형이다. 따라서 ‘燥’은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 ‘~’의 음가를 표기하기 위해 차자(借字)된 한자다. ‘渴[갈]’ 또한 마찬가지로 ‘~’의 음가를 표기하기 위해 차자된 것이다. 그러므로 ‘조갈내’는 ‘중심에 위치해 있는 내’라는 뜻이다.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한자적 의미로 풀이 되어 ‘물이 마르다’로 인식되고 박신윤 선생의 ‘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화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중심천이라는 뜻의 ‘~내’가 한자어 ‘燥渴川’으로 표기되고 이것을 다시 한자적 의미 ‘마르다’로 인식 하여 여기에다가 이야기를 지어다 붙인 지명 전설인 셈이다.
4. 울빛재[울빚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서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으로 넘어가는 곳에 울빛재라는 고개가 있다. 이 울빛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진전면에 살던 어떤 처녀가 고개 너머 고성 땅으로 시집을 갔다. 신혼의 젊은 부부는 금슬이 좋았다. 그래서 그들의 신혼 생활은 꿈같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아내는 친정어머니가 몹시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녀는 시부모와 남편의 허락을 받고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개 너머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저 며칠 동안이면 되겠거니 했으나 친정어머니의 병환은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별 차도가 없었다. 젊은 아내는 시집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하루 더디어져 몹시 애가 타게 되었다.
한편 남편은 친정에 간 아내가 예정보다 훨씬 늦게까지 돌아오지를 않자 몹시 기다려졌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집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마침내 고개까지 와서 아내를 기다리게 되었다. 거의 매일같이 남편은 고갯마루에 앉아서 아내를 기다리다가 해가 저물면 지쳐서 돌아가곤 하였다.
이런 안타까운 나날이 몇 달째 계속된 후 그 동안 정성스런 딸의 간호를 받아서인지 친정어머니의 병환이 거의 완쾌가 되었다.
며칠 후 젊은 아내는 시집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친정을 나섰다. 남편과 시부모에 대해 그저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생각으로 젊은 아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하여 막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난데없이 큰 호랑이 한 마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시집으로 돌아가던 젊은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그만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고 말았다.
아내를 기다리기 위해 고개까지 올라온 남편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다 만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이상한 예감이 든 남편이 자세히 살펴보니 아내의 시체였다. 남편은 너무나도 애통한 나머지 울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신혼부부의 초행길에는 울빛재를 피해서 다니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울빗재는 ‘중심 고개’라는 뜻이다. 울빛의 ‘울’이 중심을 뜻하는 우리말 ‘’의 변이음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에 전해 오는 이야기는 ‘’의 변이음 ‘울’을 ‘울다’로 인식하여 지어낸 이야기다. 울다를 애통하다로 인식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제의와 관련이 있다.
5. 베틀 바위
마산합포구 진북면 괴정리 마을 앞에 베틀산이 있다. 베틀산의 정상에는 약 스무 평가량의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켜 베틀 바위라고 부른다. 이 베틀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천지개벽이 일어나 이 부근이 온통 바닷물에 잠긴 일이 있었다. 바닷물이 온 마을을 뒤덮고 마침내 베틀산의 정상에까지 차오르게 되었다. 그 때 마침 정상의 베틀 바위에는 아낙네가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고 있었는데 정상에까지 차오르던 바닷물이 웬일인지 그 이상은 더 불어나지를 않고 베틀 바위 근처에서 찰랑거리다가 차차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지금도 그 베틀 바위에는 그때의 흔적으로 조개껍질이 더러 붙어 있다고 한다.
베틀산의 ‘베틀’은 서쪽을 뜻하는 우리말 ‘~’의 변이음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서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야기는 ‘~’의 변이음 ‘베틀’을 활용하여 만들어 낸 천지창조 이야기다.
6. 수중 명당
대망의 뜻을 품은 이성계는 아버지가 죽자 선친의 묘를 명당에 쓰려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웅천 천자봉까지 내려와 보니 산줄기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물속에 명당자리가 있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묘를 쓸 도리가 없어 바위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물속에서 어떤 아이가 하나 솟아나와 헤엄을 쳤다. 이성계가 보니 그 아이는 가히 물고기보다 헤엄을 더 잘 쳤다.
그런데 그 아이가 헤엄을 잘 치는 데는 내력이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처녀의 몸으로 중한 중풍이 걸렸다. 그러자 부모들은 창피하게 생각하고 마을에서 동떨어진 바닷가에 움막을 짓고 그 곳에서 연명이나 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바다에서 물개가 올라와 그 쳐녀를 범하였다. 그리고는 매일 밤 처녀에게 왔다가 새벽에 바다로 돌아가곤 했는데 물개와 정을 통한 후 이상하게도 처녀는 병이 낫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새벽, 물개가 바다로 돌아가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처녀는 그 동안 정을 생각하여 물개의 시신을 거두어 뼈를 처마 밑에 달아 두었다. 그 후 처녀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이성계가 본 아이였다. 이성계가 아이를 불러 물었다.
“얘야! 바다 속에 미륵이 있느냐?”
“예! 미륵불 같은 바위가 있습니다.”
이성계가 그 아이에게 아이 아버지의 유골을 가져오게 하고는 자신의 선친 유골과 함께 물속에 가지고 들어가서 미륵불의 귀에 걸어 달라고 말하였다.
“미륵불의 귀가 명당자리니 내 선친 유골은 오른손에 잡고, 너의 선친의 유골은 왼손에 잡고 들어가서 미륵불 앞에서 마주보고 걸어 놓고 오너라.”
이 말을 듣고 아이는 두 유골을 두 손에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얼마 후에 빈손으로 물위에 올라왔다. 이성계가 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시키는 대로 바로 걸었느냐?”
“아이구! 말도 마십시오. 보통 때는 미륵불이 무섭지 않았는데 오늘은 미륵불이 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어떻게나 무서운지 뒤로 돌아가서 손에 잡는 대로 두 유골을 걸고 올라 왔습니다.”
뒤로 돌아서서 걸었으니 이성계가 시킨 것과는 반대로 이성계 선친의 유골과 아이 아버지의 유골이 바뀌어 미륵불에 걸린 것이다. 이성계가 탄식하였다.
“그렇게 되었다면 할 수 없다. 모두 하늘의 뜻이다. 그것도 다 너의 복이다.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뒷날 이성계는 조선조를 창건하여 태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중국으로 들어가서 병술을 닦아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가 명나라를 세웠는데, 그가 명 태조 주원장이라고 한다.
천자봉(天子峰)은 중심 산[중심이라는 개념은 사방의 중심으로서 공간의 중심을 뜻하기도 하지만, 천지창조를 실행하는 제의적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제의를 통해서 천지창조가 이루어지며 천지창조를 실현하는 자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탄생된 자는 신격으로서 국가를 건설하는 왕, 더 후대에 이르면 역사적 위업을 달성하는 영웅이 된다]을 뜻한다. 이런 의미의 천자가 사람의 신분으로 인식되어 중국의 천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옮겨 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신화에서 신화적 주인공의 이름은 그가 탄생한 곳의 이름[지명이자 제의적 공간]과 같은 이름을 갖는데,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역사적 인물로 인식되어서 특정한 시대의 뛰어난 인물로 정착된다. 천자봉 설화는 이런 배경 하에서 생성된 지명 전설이다.
7. 용당
창원시 진해구 웅동 용원의 옛 이름은 용당이다. 이 용당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용당 마을에서는 해마다 해신의 노여움으로 사람이 잡혀가고, 고깃배가 부서지는 재난을 겪었다. 그래서 해마다 해신을 달래주는 제사를 지내고, 마을에서 가장 예쁜 처녀를 골라 해신에게 바쳤다. 해신에게 바쳐질 처녀가 선정되면 그 처녀는 산천에 치성을 드리며 때를 기다렸다.
어느 해인가 그 해에도 해신에게 바쳐질 처녀가 결정되었다. 그런데 그 처녀는 편모를 모시고 사는 가련한 처녀였다. 처녀는 해신에게 바쳐질 날을 헤아리며 바다에서 해물을 캐고 산에서 나물을 캐며 끼니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산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홀어머니의 뒷일을 의탁하는 치성을 드렸다. 처녀는 부처님께 어머니의 편안을 빌고 또 빌었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처녀는 틈만 나면 부처님을 부르며 빌었다.
처녀가 해신에게 바쳐질 그 날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를 언덕에 세우고 함성을 지르며 해신의 노여움을 달랬다. 해신이 몸부림을 쳐 비가 천둥번개와 함께 억수로 쏟아지며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폭풍우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해신의 몸부림 앞에서 처녀는 단정하게 서서 부처님을 부르며 어머니의 여생이 편안하기를 빌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을 옆 연못에서 검은 용, 흰 용, 푸른 용이 뒤틀며 하늘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두려움에 떨며 부처님을 부르던 처녀는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폭풍우가 가라앉은 후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처녀를 해신에게 바친 언덕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해신에게 잡혀갔어야 할 처녀가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처녀의 어머니가 달려가 처녀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을 차린 처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부처님께서 저를 해신으로부터 구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해신의 장난은 다시없을 것입니다. 해신이 용이 되어 등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뒤부터 용당 마을에서는 해신에게 처녀를 재물로 바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용당’은 ‘龍堂’으로 표기되어 있다. ‘龍(용)’의 우리 음은 ‘미르’다. 미르는 ‘~’의 변이음이고 ‘중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제의와 관련이 있다. 용당에서 행해진 제의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에서 제의가 행해진 것은 ‘미르’로 변이된 ‘~’이 중심의 의미를 가진 것과 연관이 있는데, ‘중심’으로 인식된 곳에서 제의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창원 지역에 전해 오는 대부분의 설화는 지명과 관련이 되어 있다. 지명을 활용하여 서사화 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 속에 창원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지명이 생성된 유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명에서 이야기가 생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야기 속에는 그 지역과 시대의 세계관과 문화가 용해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