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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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民俗文化-鄕土飮食-北面豆腐-北面- |
영어의미역 | Local Foods that have Traditional Folk Customs Culture, Cloudy Rice Wine and Bean Curd of Buk-mye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정헌 |
[개설]
창원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북면두부와 북면막걸리가 있다. 북면두부와 북면막걸리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지역민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현재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북면두부와 북면막걸리는 지역민들이 즐겨 먹는 것은 물론이고, 북면에 있는 마금산온천을 찾는 관광객들도 창원의 전통 민속문화를 느끼면서 먹을 수 있어 즐겨 찾는 음식이다.
[할머니의 손두부 맛을 잇고 있는 북면두부]
손두부는 예전같이 콩을 맷돌에 갈거나 가마솥을 이용하여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두부의 맛만큼은 변함이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북면두부는 북면 신리에 살고 있었던 외감댁이라는 택호를 가진 할머니 때부터 유명세를 타고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콩을 직접 맷돌에 갈고 가마솥을 사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어 새벽이면 혼자서 손수레에 실어 인근의 각 식당에 배달하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렇게 두부를 만들어 온천 주변의 상점이나 노점상들에 판매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5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두부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늘 혼자 두부를 만들어 팔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장애인이라 모친을 도와 줄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아흔이 훨씬 넘었을 나이인데 돌아가신 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 된다고 한다.
현재는 ‘북면옛날손두부’와 ‘북면신촌식품’ 등에서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산미식당에서는 콩 대신에 땅콩을 재료로 하여 두부를 만들기도 한다. 비록 예전같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두부 집은 없으나 맛만큼은 예전의 손두부 맛을 간직하고 있다고 정평이 나 있어 북면두부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즐겨 찾는다고 한다.
[특유의 비결로 빚어지는 북면막걸리]
막걸리는 막 거른 술이라는 데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민들의 술이다. 그만큼 역사도 오래되어 맑은 술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짠 술로 빛깔이 뜨물처럼 흐리다고 해서 탁주로도 부른다.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때에 만든다고 하여 이화주(梨花酒)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후세에 와서는 아무 때나 만들게 되어 자연 이화주란 이름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식량 대용 또는 갈증 해소로 농부들이 애용해 왔으므로 농주(農酒)라고도 불러 왔다.
곡주(穀酒)의 청탁(淸濁)은 숙성중의 여과에 의해서 구별되며 막걸리는 탁하게 양조한 백색의 주류로, 좋은 막걸리는 감(甘)·산(酸)·신(辛)·고(苦)·삽(澁)의 맛이 잘 어울리고 적당한 감칠맛과 청량미가 있다. 이 청량미는 땀을 흘리고 일한 후에 갈증을 멎게 하는 힘도 있어 농주로 애용되어 왔다.
창원에는 현재 온천양조장과 화천양조장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창원시 북면 신촌리 570-1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온천양조장은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지역민과 고락을 함께 해 온 창원의 대표적인 양조장이다. 온천양조장은 현재는 현대적인 건물로 세워져 있지만 8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식 건물이었다. 이 온천양조장은 일제강점기 박씨로만 알려져 있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다가 북한에서 넘어와 이곳에서 일가를 이룬 '깜둥이'(혹은 '깜딩이')란 별명으로 주민들에 널리 불리어졌던 사람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북면막걸리는 지금의 권익동(51세, 1959년생)에 이르기까지 100년 가까이 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해 왔다. 권익동의 부친인 권효근은 지금 생존해 있다면 91세인데, 10년 전 79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이후로 5남매 중 막내인 권익동이 가업을 물려받았다. 권익동은 부친으로부터 가계를 물려받은 지 올해로 12년째인데 한창 힘들고 어려울 때 물려받아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현재는 바로 손위 누이 권익란도 일손을 보태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면막걸리는 인근 창원 공단의 체육대회나 회식, 대학 축제 때 즐겨 찾는 명물이었다. 이외에도 북면의 온천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즐겨 찾았고, 명절 때는 각 마을의 주문량만 해도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양조장의 명성과 영화를 보여주는 장독들이 양조장 한켠에 보관되어 있다. 이런 큰 독이 30개 이상이었다고 하니 전성기 때의 명성과 영화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시절 따라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 사양 산업의 대표 업종이 되었다고 주인 권익동은 울상을 짓는다. 술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소비 패턴에 큰 변화가 일어 막걸리의 소비가 감소된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예전에는 농사철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요즘은 이때마저 찾는 경우가 드물 지경이라고 한다. 물려받은 업이라 어쩔 수 없이 하고는 있지만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하소연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과거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창원의 공장이나 대학교의 축제 또는 체육대회가 되면 밤을 새서 작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요즘은 주말 온천객들이 거의 전부라고 한다. 그나마 평일에는 거의 찾아오는 손님들이 없어 하루에 20리터 정도 밖에 소비되지 않으며, 주말에도 40리터 정도가 고작이라고 한다.
권익란은 북면막걸리의 비결은 술을 숙성할 때의 온도에 있으며, 바로 이 숙성 온도가 술맛을 좌우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숙성시 온도 외에 권익란은 술맛의 비결로 누룩, 물, 정성을 들고 있다. 이 집 막걸리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튿날 머리가 아프지 않고 특유의 '배물맛'이 난다고 한다. 또 묽게 타지 않고 걸쭉하게 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술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한다.
술의 재료도 세월 따라 많이 변해 왔다. 초창기에는 보리로 술을 빚다가 1980년대 중반쯤에 쌀로 만든 막걸리도 한 때 생산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료로 사용하는 쌀이 우리나라 쌀이 아니고 외국에서 수입한 쌀이어서 몇 년간 창고에 저장한 것을 사용하다 보니 술에서 좋지 않은 냄새도 나고 하여 자연 술맛에도 영향을 끼쳐 관계 기관에 건의하여 쌀 막걸리 생산을 중단하고 밀가루로 술을 빚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북면막걸리의 제조 과정은 여느 막걸리 제조 과정과 다르지 않다. 고두밥을 쪄서 입자를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체에 거른 후 숙성실로 가져가 보자기에 싸서 하루 정도 숙성시키고 또 상자에 담아 하루를 더 숙성시킨 후 발효실로 옮겨 삼사일 정도 지나면 술이 되는 것이다.
권익란이 제안하는 막걸리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금방 거른 술을 마시면 싱거워 맛이 덜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루에서 삼일 정도 냉장고에 보관해서 마시면 막걸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발효 식품이라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면 맛이 더욱 좋다는데 이는 막걸리가 김치의 숙성 과정과 동일하기 때문에 균을 살려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