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919 |
---|---|
한자 | 韓國-輸出前進基地-馬山自由貿易地域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시출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봉암동에 있는 정부가 관리하는 비관세 임해 공업 단지.
[개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수출 진흥, 고용 증대, 기술 향상을 기하여 국가 및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0년 1월 특별법인 「수출 자유 지역 설치법」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외국인 전용 공단이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투자 유치 및 수출 진흥을 위해 입주 업체에 대해 외국인 투자 신고, 공장 건축 허가, 수출입 승인 등 모든 행정 업무를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로 제공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의 일부 배제, 조세 감면, 저렴한 임대료 및 지원 시설 등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비관세 지역으로서 어느 지역보다도 수출입 활동이 편리하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1970년부터 2000년 7월 12일까지는 생산 중심의 ‘수출 자유 지역[Free Export Zone]’으로 운영되어 왔다. 2000년 7월 13일부터는 ‘자유 무역 지역의 지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산은 물론 무역·물류·유통·정보 처리·서비스업 등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자유 무역 지역[Free Trade Zone]’으로 확대 개편되어 운영되고 있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총면적 95만 3576㎡의 규모로 제1공구와 제2공구, 제3공구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국가 산업 단지이다. 현재 마산 자유 무역 지역에는 외국인 단독 투자, 합작 투자, 내국인 업체 등 100여 개 사가 입주해 있으며 총생산의 98%를 수출하고 있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니 그룹의 한국 소니 전자(주), 일본 산요 그룹의 한국 TT(주), 핀란드의 NOKIA사가 전액 투자한 휴대폰 제조업체 (주)노키아티 엠씨 등 유수한 다국적 기업이 입주해 있다.
[마산 수출 자유 지역[현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탄생]
1. 탄생과 조성
수출 자유 지역 설치의 구상은 1964년 전경련 관계자들의 일본과 대만 카오슝 방문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69년 1월 20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수출 진흥 확대회의에서 전경련은 대통령에게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해안 지대에 특수 자유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1969년 7월 2일 정부는 수출 자유 지역 설치를 공식 발표했다.
정부는 마산·목포·부산·삼천포·여수·울산·인천·포항 등 8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절대 요건[용지·항만·국방], 중요 요건[용수·노동력·수송·통신], 기타 요건[공항, 관련 산업 및 시설, 구역 관리] 등을 입지 선정 기준으로 하여 현장 조사와 심사를 했다. 그 결과 1969년 8월 5일 제반 여건이 우수한 마산에 수출 자유 지역 설치를 결정했다.
1969년 12월 23일 제72차 국회 본회의에서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수출의 진흥, 고용의 증대 및 기술의 향상을 기하여 국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수출 자유 지역 설치법이 통과되고 1970년 7월 1일 공포되었다. 이어 2월 27일에 동법 시행령이 공포되었다. 4월4일에는 운영 및 관리를 전담할 마산 수출 자유 지역 관리청이 개청되었다.
2. 단지 조성
1970년 3월 건설부는 마산 수출 자유 지역 건설 사무소를 현지에 설치하고 제1공구 조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그해 5월 1일 첫 삽을 뜬 제1공구 조성을 시작으로 제2공구, 제3공구가 연차적으로 조성된다. 1971년 4월 14일 첫 표준 공장이 기공되고 그해 12월 18일 준공되었다. 정부가 마산 수출 자유 지역의 단지 조성과 표준 공장에 투자한 금액은 1977년까지 총 92억 1600만 원이었다. 정부는 단지 조성과 함께 공공시설과 후생 시설, 도로, 하수도, 전력, 전신, 공업용수, 항만 시설도 등 지원 시설 공사도 완공하여 수출 전진 기지, 마산 수출 자유 지역 출범을 뒷받침 했다.
3. 초기 입주 허용 업종과 기업
초기 입주 업종과 자격을 엄격히 했다. 당시에는 노동 집약도가 높은 산업, 가공 공정이 긴 산업, 국내에서 제조 및 가공 기술이 낙후된 산업, 국내 수출 산업을 저해하지 않는 산업이 우선 선정됐다. 또 입주 자격으로는 외국인이 전액 투자한 기업체, 외국인과 한국인이 합작 투자한 기업체[한국인 투자 비율 50% 초과 못함], 수출 전망이 확실하고 외화 가득률이 높으며, 제조 기술이 우수하고 노동 집약도가 높은 기업체로 제한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해외 투자 기업 유치를 위해 마산 수출 자유 지역 입주 기업에게는 세제상의 특전을 비롯하여 이익금 및 원금의 송금, 수출입 절차의 간소화, 기타 역내 행정 업무의 편의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변천 과정]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변천 과정은 설치 목적과 공단 조성, 투자 유치, 기업 입주 및 생산·수출을 고려하여 기반 조성과 도약기[1970~1980], 성숙과 시련기[1981~1994], 재도약기[1994~2004], 침체와 신 도전기[2005~현재]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또 법·제도 측면에서 보면 1970년부터 2007년 7월까지가 생산 중심의 ‘수출 자유 지역’, 2007년 7월부터는 생산은 물론 무역·물류·정보 처리업 등의 기능이 추가된 ‘종합형 자유 무역 지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2004년부터는 관세 자유 지역과 통합되어 현재까지 ‘자유 무역 지역’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1. 기반 조성과 도약기
1970년부터 1974년까지는 기반 조성기이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이 지정·조성되고 입주 기업 및 업종의 공고, 각종 행정 및 지원 업무가 구체화되었다, 1970년 7월 14일 첫 입주 기업 신청을 접수받았다. 1970년 4개 업체로 시작하여 1972년에 70개사, 1973년에는 115개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1973년 석유 파동은 외투 기업의 투자를 머뭇거리게 했다. 1974년에는 100개 입주에 98개사가 가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수출액도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는 고용·수출·투자 유치 등 다방면에서 도약기로 볼 수 있다. 1976년에는 수출이 3억 달러를 돌파했고, 1977년에는 고용이 3만 명을 넘어서고 투자액도 처음으로 1억 달러를 초과했다. 1979년에는 수출이 6억 달러를 기록 하는 등 이 기간 동안 입주 기업들의 체질이 강화되어 수출이 급신장했다. 1980년에는 수출 6억 2800만 달러에 외화 가득액 3억 3300만 달러로 외화 가득률이 53%에 달했다. 아울러 1971년 1,248명이던 고용도 1980년에 2만 8586명으로 늘어 무려 23배나 신장되었다. 한편 이 시기의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성장은 전자·전기 및 금속 업종이 주도했다
2. 성숙과 시련기
1981년 이후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안정적 성장 단계인 성숙기로 접어든다. 수출이 안정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근로자 복지 향상에 많은 투자를 했다. 부실기업 통폐합 과정에서 내국인 단독 투자를 허용, 내국인의 투자 비중이 1982년에는 28.7%까지 증가했다.
또 이 시기는 단순 노동 집약 업종에서 기술 집약 업종으로 대체 전환되는 시기로 업체당 투자 규모도 급격이 커졌다. 봉제·신발·잡화류 등의 업종은 점차 철수하고, 전자·전기·정밀 기기 업종으로 대체·전환되었다.
수출은 1986년에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고용은 1987년에 3만 6411명을 기록하여 마산 자유 무역 지역 40여 년 역사에 최고 정점을 찍었다. 외화 가득률도 꾸준히 50%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탄탄대로이던 마산 자유 무역 지역에 위기가 찾아왔다. 1987년 민주화·자율화의 바람과 함께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노사 분규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급신장하던 수출은 1989년에 전년 대비 5.8% 감소하기 시작하여 3년 연속 줄어들었다. 고용은 더욱 심각하여 1987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1993년에는 1만 5397명으로 1987년 대비 42%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입주 업체도 꾸준히 감소하여 1992년에 68개사에 그쳤다.
1993년에 들어 수출과 입주 기업이 증가세로 돌아서 시련을 극복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수출은 17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중 전자·전기 업종이 무려 79.9%를, 정밀 기기 업종이 9.0%를 점했다. 이러한 수출 구조의 변화는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이 기술 집약형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재편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2007년 7월부터 기존의 생산 중심에서 무역·물류·정보 처리업 등의 기능이 추가된 ‘종합형 자유 무역 지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3. 재도약기
1994년 이후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재도약을 시도한다. 고용 조정이 일단락되고 투자와 수출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회복하는 시기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지만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비교적 순항을 계속했다. 고용은 등락을 반복하며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입주 업체 수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고 투자도 꾸준히 늘었다. 특히 수출은 급격히 늘어나 2000년에는 4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러한 수출 실적은 외환위기 이후 환율 급등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과 선진국의 경기 호조에다 소니와 노키아의 선전이 주요인이었다. 이와 함께 입주 기업들의 노사 화합, 기술 개발, 환경 경영, 품지 경영 체제 구축도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재도약에 일조했다.
4. 침체와 신 도전기
2004년 7월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관세 자유 지역과 통합되어 ‘자유 무역 지역’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투자·수출·고용 등에서 자유 무역 지역의 설립 목적을 위협하는 감소세가 지속된다. 수출은 2004년 46억여 달러에서 2007년 32억 5600만 달러로 급격히 하락했다. 투자도 크게 감소했고, 고용은 7,046명으로 떨어지는 전형적인 침체기를 보였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위기는 환율 급등으로 이어지고 마산 자유 무역 지역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2008년에는 40여 년 역사에 최초이며 유일한 50억 달러 수출 금자탑을 세웠고, 투자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입주 기업이 꾸준히 증가하여 2011년에는 1976년 이후 35년 만에 100개사를 돌파했다.
그러나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2009년 이후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역내 최대 기업이며 수출과 고용을 견인하던 노키아티 엠씨와 한국 소니 전자의 위기는 바로 마산 자유 무역 지역 전체를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하고 있다. 급기야 2012년 10월 노키아티 엠씨의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과 수출 부진으로 2012년 수출 23억 달러, 고용 5,973명으로 급감하고 말았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줄곧 역내 수출의 90%를 차지하던 전자·전기 업종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 기계·광학·조선·정밀기기·금형 등으로 업종을 다변화하고 있다. 또 2008년부터는 1970년 설치 이후 노후화된 마산 자유 무역 지역 기반 시설을 재정비하고 생산 환경을 개선하여 외국인 투자 기업을 추가로 유치하기 위해 구조 고도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기본 현황]
1. 단지 개요
마산 자유 무역 지역 내의 공장 유형은 자가 공장과 표준 공장의 두 종류가 있다. 자가 공장은 공장 용지만을 정부로부터 임차하여 업체의 특성에 맞게 공장을 건축하여 사용할 수 있는 공장이다.
자가 공장 총면적은 95만 3576㎡인데, 제1공구 53만 5136㎡, 제2공구 25만 7874㎡, 제3공구 16만 566㎡이다.
표준 공장은 생산 시설만 갖추면 즉시 가동할 수 있도록 지어진 3~4층의 아파트형 공장이다. 공장은 7개 동에 총면적 8만 8952㎡으로 저렴하게 임대하고 있다.
2. 입지 및 산업 지원 시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우리나라의 남동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로부터 남쪽으로 388㎞, 부산에서 서쪽으로 46㎞ 떨어져 있다. 부산·대구 등 대도시와 가까워 생산 활동이 편리하다. 특히 고속도로·철도·공항이 인접해 있고, 항만을 끼고 있어 물류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임해 공업 단지로서 수출입 활동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유 무역 지역으로부터 약 30㎞ 떨어진 본포 수원지로부터 공업용수를 1일 1만 톤씩 공급받고 있고. 전력은 5만㎾ 공급 받고 있다. 구마 고속도로와 8㎞, 남해 고속도로와 4㎞ 떨어져 있다. 철도는 시내에 마산역·창원역·창원 중앙역이 있고 경전선과 KTX를 이용할 수 있다. 공항은 약 35㎞ 거리에 김해 국제공항이 있다. 항만 시설 자유 무역 지역 내에 마산항 제3부두를 끼고 있다. 2만 톤급 선박 2척이 동시에 접안이 가능하다. 인근에 마산항 4·5부두와 부산항 신항이 있다.
입주 기업체의 생산 및 수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기업·세관·우체국·파출소·의료·소방서 등이 역내에 입주해 있다.
창원 시내에 위치한 창원 국가 산업 단지에는 두산 중공업, 한화 테크윈, LG 전자, STX을 비롯한 볼보, 현대 위아, 효성, GM 등 기계·금속·전자·자동차·조선 등 약 2,200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어 마산 자유 무역 지역과의 산업 연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3. 업종별 입주 기업 현황
2013년 5월 현재 마산 자유 무역 지역에는 총 103개사가 입주해 있다. 업종별로 보면 정밀 기기가 32개사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전기 전자가 29개사, 기계제품 13개사, 금속 8개사, 비금속 4개사, 섬유 봉제 3개사 순이며, 기타가 14개사 입주해 있다.
입주 기업을 지원하는 기업체로는 물류 18개사를 비롯하여 통관 6개사, 수출입 도매 6개사, 금융 보험 5개사 등 다양한 지원 기업이 입주해 있다.
4. 국별 및 투자 현황
2013년 5월 현재 입주 및 투자 현황을 보면 국내 기업이 45개사, 외투 기업이 58개사이다. 외투 기업 중에는 단독이 13개사, 합작이 45개사이며, 나라별로는 일본이 36개사로 가장 많고, 미국 12개사, EU 5개사, 기타 4개사이다.
나라별 투자액을 보면 일본 8525만 5000달러, 한국 8504만 7000달러, EU가 7613만 5000달러 등 2013년 5월 현재 국내외 103개사에서 총 25억 22만 7000달러를 마산 자유 무역 지역에 투자하고 있다.
5. 고용 현황
2013년 5월 현재 103개 입주 기업에 5,953명이 종사하고 있다. 1987년 3만 6411명에 비하면 16% 수준에 불과하다. 남녀별로는 남자가 3,532명으로 59%, 여자가 2,421명으로 41%이다. 1971년 이후 70~80%대를 유지하던 여성 고용의 비중은 전기 전자 업종의 부침과 함께 2010년부터 역전되었다.
[의의와 평가]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우리나라 수출 전진 기지의 효시이다. 1970년 설치 이후 외국인 투자 기업 유치를 통해 해외 첨단 기술 및 선진 경영 기법을 도입, 국내에 전수하는 등 국내에 산업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지난 40여 년 간 수출을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 7위권 수출 강국이 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은 세계 130여 국가, 3,500여 개 자유 무역 중에서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으며, 개발 도상국의 외자 유치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1987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고용과, 2008년 이후 급격이 줄어든 수출은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기술 개발, 노후 인프라 환경 개선을 위한 구조 고도화, 녹색 융합 기술 개발 등을 통한 수출 증대와 고용 창출은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