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남양군(南陽君) 홍주(洪澍)의 후손이다. 홍천섭(洪天燮)[?~?]은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다듬이 방망이를 가지고 자신의 손가락을 찧어 생피를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다. 어사가 지극한 효행이 천성에서 우러났다는 서계(書啓)를 조정에 올렸으며, 유생들이 포상을 바라는 글을 지어 올렸으나 정표를 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