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
1913년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조직되어 천안 출신의 인물이 가담한 독립 운동 단체. 대한 광복단은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 광복단은 1910년대 국내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항일 비밀 결사 조직 중의 하나로 1913년 경상북도 풍기[현재 영주시]에서 채기중(蔡基中), 유창순, 유장렬(柳璋烈), 한훈(韓焄), 강병수(姜炳洙), 김병렬(金炳...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단파(徐檀坡)[1891~1937]는 충청남도 천원군 수신면 해정리 413을 본적지로 한다. 1931년에 제87사단 군의처장으로 복무 중 1937년 12월 남경(南京) 대회전에서 전사하였다. 서상덕(徐相悳)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4년 북간도(北間島)로부터 국내에 들어와 내외 연락 등의 활동을 수행하다가, 데라...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민식(兪民植)[1898~1969]은 본적지가 충청남도 천원군 성거면 모전리 213번지이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의정원 충청도 대표로 선임되었으며, 1925년 3월 신민부에 참여해 중앙 집행 위원회의 경리부 위원장에 선임되어 무력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유정근(兪政根)이...
-
개항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관료·정치인·사회 운동가. 윤치호(尹致昊)[1865~1945]는 한말 개화파로 1898년 독립 협회 회장, 1903년 천안 군수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1920년 이후에는 친일 활동을 펼쳤다. 본관은 해평(海平), 호는 좌옹(佐翁)이다. 할아버지는 윤취동(尹取東), 아버지는 무관 출신으로 충청감영 중군(忠淸監營中軍)을 지낸 윤웅렬(尹雄烈)이다....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태(李圭珆)[1904~1931]는 본적이 충청남도 천안군 수신면 장산리로 되어있고,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 역시 같다. 1919년 3월 14일 충남 천안 목천 보통학교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규태는 당시 목천보통학교 학생으로서 동교생인 이소용(李蘇用)과 함께 태극기를 준비하는 등 학생들의 만세운동계획을 수립·...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봉소(鳳所), 호는 석오(石吾, 石五, 石梧)·암산(巖山)이다. 1869년 10월 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영해 군수를 지낸 아버지 이병옥(李炳鋈)과 어머니 광주 안씨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났다. 1. 구한말 애국계몽운동 이동녕(李東寧)[1869~1940]은 고향에서 서당을 다...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건(李鍾乾)[1906~1960]의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 수신면 속창리 215로 되어있으나 그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종건은 대한 교민단 의경대원, 임시 정부 의정원 의원, 한국 독립당 남경 지부 간부 등을 역임하며, 북경, 상해, 남경, 무창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 이동초(李東初)·이세장(李世章)이라...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인석(鄭寅錫)[1872~1953]은 충청남도 천안군 북면 해송리 572가 본적지로 되어 있으나 가계와 학력 등 그 외 사실은 알 수 없다. 1920년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취임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20년 11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대표로 상해에 파견되었다. 정국진(鄭國鎭)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호서 은행 지점에서 인출한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 신현상(申鉉商)과 최석영(崔錫榮)은 1930년 2월에 양곡 거래 조건으로 호서 은행 천안 지점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인출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자금으로 쓰다가 1930년 4월 3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무정부주의 운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어...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찬섭(洪燦燮)[1889~1858]은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출신이나 경기도 안성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찬섭의 경기도로의 이주나 그의 가계, 학력 등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元谷面) 가천리(加川里)에서 한 주민이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