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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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載謙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선명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의 9세 손이며, 구천군(龜川君) 이수(李睟)의 7세 손이다.
[활동 사항]
이재겸(李載謙)[?~?]은 어려서부터 예의 바르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내 또한 행실이 바르고 효성스러웠다.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여러 해 누워 계셨는데, 이재겸과 그의 아내는 밤낮으로 곁에서 보살피며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극한 정성으로 약을 달여 드리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와 같은 지극한 효행으로 삼십여 년 동안 할아버지를 정성을 다해 섬기니 마을에서 ‘쌍효(雙孝)’라 하며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몹시 추운 겨울에 마을에 염병이 돌았다. 이재겸은 아버지와 함께 일시에 병들어 눕게 되었다. 이재겸은 다행히 7일 만에 깨어났으나, 이재겸의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지 며칠이 되었고 지붕마저 부서져 시신은 꽁꽁 얼어 있었다. 이재겸은 곧장 자기 몸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이리저리 굴렀다. 사흘이 지나서야 비로소 얼어 있던 아버지의 시신이 녹았다. 이들 부부의 애통해하며 통곡하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이웃 마을에서도 이들의 효성에 감복하여 음식을 전폐하였다.
이들 부부가 살아 있을 때 이미 고을 사람들이 여러 차례 수령에게 포상하기를 청하였으나, 나라에서 상을 내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