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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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飛龍-許將軍 |
이칭/별칭 | 허 장군과 용화사 미륵불,비령 고개 허 장군,이순신 장군과 비령 고개 허 장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용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영순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6월 25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김영기 등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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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5월 15일 -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 |
관련 지명 | 비룡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용암리 |
관련 지명 | 용화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178 |
성격 | 전설|지명 유래담|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허 장군|이순신 |
모티프 유형 | 아기 장수 설화|자결한 허 장군|죽어서 미륵불이 된 허 장군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와 북면 비룡 마을 사이에 있는 비룡 고개에 얽힌 허 장군 이야기.
[개설]
「비룡 고개 허 장군」은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와 북면 용암리 비룡 마을 사이에 위치한 비룡 고개에서 임진왜란에 참여하지 못한 허 장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미륵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비룡 고개 허 장군」은 1990년 6월 25일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가 천안시 북면과 목천읍 일대에서 김영기[76세, 남] 등에게 채록하여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1994년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하였다. 1996년 10월 5일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도 다시 수록하였다.
[내용]
1.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임진왜란 때 허 장군을 쓰려고 불렀다. 본디 허 장군은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는데, 집안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한쪽 날개를 떼어 낸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활쏘기인지 무엇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를 매우 못하였다. 그로 인해 이순신이 허 장군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자, 허 장군이 돌아오는 길에 비룡 고개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며 타고 있던 말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피가 흘러 비룡 고개의 돌들이 붉게 물들었다. 비룡 고개에는 아직도 허 장군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2. 천안시 동남구 북면에는 허 서방네가 많은데 임진왜란 때도 허씨 성을 가진 장군이 이순신과 함께 무예 훈련을 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은 전쟁터로 달려갔으나 허 장군은 패배할 것 같아서 비령[비룡] 고개에서 목숨을 끊었다. 허 장군이 죽자마자 그 자리에서 미륵불이 생겼는데, 이때 비령 고개 돌들도 피가 묻어 붉게 변했다. 허 장군 묘는 허 서방네가 관리하고, 비령 고개 미륵불은 목천읍 동리의 용화사 경내에 있다.
[모티프 분석]
「비룡 고개 허 장군」은 아기 장수 설화 모티프의 변이형이다. 천안에는 아기 장수 설화가 두 가지로 전승되는데, 그중 지역색이 강한 한 가지가 건국 시조 설화인 「남산 아기 장수와 마한 건국」이다. 이에 비해 허 장군은 아기 장수로 태어났지만 한쪽 날개를 박탈당한다. 결국 능력이 약화되고 이순신에게 쫓겨나기까지 한다. 역적이 될 것을 걱정해서 집안에서 능력이 거세되었다는 모티프보다 국가 위기 상황에 쓰임을 받지 못한 것이 더 큰 한이 된다는 민중 의식을 반영한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