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팔도분도』 「경상도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333
한자 八道分圖慶尙道編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규격 47×32.2㎝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팔도분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편찬/간행 경위]

『팔도분도(八道分圖)』의 제작 시기는 1767년에 개명되는 경상도 안음(安陰), 산음(山陰)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1767년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경기도 지도에 건릉(建陵)과 화성(華城)이 표시되어 있으나, 이는 수원의 원래 읍치 소재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의 소장자가 써넣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표지 이면에 ‘가경7년시월초십일행현감전(嘉慶七年十月初十日行縣監全)’이라고 적혀 있다. 가경 7년(嘉慶七年)은 1802년(순조 2)에 해당하지만, 이는 지도의 제작 연대라기보다는 후대의 소장자가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표지 이면에 기록된 시기 이후에 본 지도가 제작되었다면 현 구리시의 육릉(六陵) 표시가 칠릉(七陵)으로 수정되어야 하는데 ‘육릉’으로 표시된 것은 최소한 영조가 승하하기 전의 지도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도 제작의 하한선 시기 근거가 될 수 있는 지리 정보를 찾아보면, 철산부(鐵山府)의 치소가 차련(車輦)으로 옮긴 이후이고, 평안도 선천(宣川)에 동림산성(東林山城)이 축성된 1753년 이후의 지도이다. 또한 금오산성(金烏山城)이 표시된 것으로 보아 『팔도분도』는 1758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팔도분도』는 총 8장으로 구성된 정상기 유형의 도별 지도집으로, 책 크기는 47×32.2㎝이다. 조선의 8도를 각각 한 장에 나눠 그리고 있으며, 지도의 수록 순서는 ‘기보(畿輔), 호서(湖西), 호남(湖南), 영남(嶺南), 동관(東關), 북관(北關), 서관(西關)’이다.

[구성/내용]

오늘날 경상도 일대를 그린 도별 지도이다. 『팔도분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정상기(鄭尙驥)[1678∼1752]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으며, 산지와 하천이 푸른색으로 채색된 필사본이다. 정상기의 『동국지도』 유형인 도별 지도 대부분은 정상기의 원래 지도를 그대로 모사한 사본들로 한반도의 윤곽을 비롯한 전체적인 표현 형태가 비슷하다.

『팔도분도』를 포함하여 정상기의 『동국지도』 유형에 속하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팔도 지도(八道地圖)』[古4709-23], 『팔도 지도(八道地圖)』[古4709-14], 『여지도(輿地圖)』[古4709-78], 『해동지도(海東地圖)』[古4709-61]는 제작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윤곽 및 해안선 대부분이 거의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팔도분도』 「경상도편」은 경상도 남해 부분 해안선 부분에 큰 차이가 보인다. 우선 거제도의 모습이 다른 사본들과 비교하여 가배량진(加背粱鎭) 아래쪽으로 길게 그려져 있고, 고성(固城) 부근 역시 해안선에 차이가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성의 진산인 무량산(無量山)은 서쪽 10리에 위치하며, 좌이산(佐耳山)은 서남쪽 30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팔도분도』 「경상도편」에서는 무량산과 좌이산이 거의 평행선에 표시되어 있다. 그 결과 이 부분의 해안선이 다른 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남해 모양도 앞에 제시한 다른 사본의 경우 미조항(彌助項)이 창선도(昌善島) 아래 부분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으나 『팔도분도』 「경상도편」는 창선도 좌측 아랫부분에 미조항이 표시되어 있다.

『팔도분도』 「경상도편」는 경상도의 지리 정보를 상세히 담고 있다. 산지는 ‘∧’ 기호가 중첩된 형태로, 먹선으로 그린 뒤 푸른색으로 채색하였다. 그리고 같은 색으로 표시한 하천은 겹선으로 표현하되 본류와 지류를 구분하여 지류의 경우 실선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 청도군을 포함하여 각 군현은 원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감영인 대구는 이중의 원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군현보다 작은 원은 진보를, 병영·통영·수영은 이중의 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찰방역의 경우에도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는데, 청도군 북쪽에 성현역(省峴驛)이 표시되어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 초기 수정본 계열의 『팔도분도』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전체적으로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으나 차이점이 있으며, 이 차이점이 『팔도분도』의 특징이다.

첫째 형식면에서 정상기가 원도 발문(跋文)에 언급했듯이 『동국지도』는 경기, 호서, 호남, 영남, 영동, 해서, 관서, 관북의 순으로 총 8의 도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도별 지도의 크기를 고려하여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장에 그리고 함경도를 북도와 남도 두 장으로 나누어 그렸다. 그러나 『팔도분도』의 경우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각 한 장에 그리고 있으며, 기보, 호서, 호남, 영남, 동관, 북관, 서관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팔도분도』에는 원도에 있는 발문과 백리척(百里尺)이 없다.

두 번째 차이는 내용 면에서 정상기의 『동국지도』에서 가장 큰 결점이었던 함경도, 평안도 지방의 부정확성을 수정, 보완하였다. 「서관 지도」를 보면 평안도의 북쪽 윤곽이 ‘동람도’형 지도보다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압록강 북쪽의 지명과 지류의 이름도 표시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팔도분도』정상기의 『동국지도』 초기 수정본 계열에 속하는 지도로, 원본 계열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국토 윤곽에 변화가 있었다. 이는 사본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후 조선 후기 지도학의 계보를 밝히는 데에 있었어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원본 계열이 지도들은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그대로 베끼고 지명과 같은 일부의 변화된 사항들만 수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팔도분도』의 함경도 지도를 살펴보면 중강진에서 만포로 이어지는 압록강의 유로 부분이 원도와 달리 우리나라 쪽으로 만입된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압록강 부분의 이러한 윤곽은 19세기에 제작되는 여러 지도에서 보이는데, 이들 지도의 전후 관계 및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팔도분도』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