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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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院里寺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503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태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2년 12월∼1993년 12월 - 신원리 절터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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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신원리 절터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산 169-1 |
성격 | 사지|절터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신라 때 절터.
[개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절터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오갑사(五岬寺)의 하나인 천문갑사의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신라 때 창건된 사찰의 터이다.
[변천]
천문갑사지에 대한 존재와 위치를 기록한 고문헌은 『삼국유사(三國遺事)』 보양(寶壤) 이목(梨木)조와 청도동 호거산 운문사 사적(淸道東 虎踞山 雲門寺 事蹟)이 있다. 고문헌에 의하면 557년(신라 진흥왕 18)에 한 신승(神僧)이 운문산에 들어와 지금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터에 초암을 짓고 3년 동안 수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과 골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이 놀라 우는 소리를 듣고 그 곳이 오령(五靈)이 숨어 사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중심부에 대작갑사(大鵲岬寺)[지금의 雲門寺], 동쪽에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 소작갑사(所鵲岬寺), 북쪽에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는데, 역사가 다 끝난 시기가 567년이었다고 한다. 그 후 후삼국에 들어와서 오갑사가 없어질 때 천문갑사도 같이 없어졌다.
[위치]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서 남쪽으로 운문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2.5㎞ 지점에 사리암(邪璃庵)으로 올라가는 골짜기가 있고, 여기서 다시 상류 쪽으로 1㎞쯤 올라가면 4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닿는다. 이곳을 천문동(天門洞)이라 부른다. 두 계천(溪川)이 만나는 곳에 배 모양의 북쪽으로 튀어나온 구릉(岬)이 있으며, 이 구릉 위에 절터가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청도군은 1992년도의 문화 사업으로 가슬갑사지를 찾아 신라 화랑정신을 재조명하고 사적으로 가꾸어 민족과 조국의 번영을 도모하는 훈련 도장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이러한 문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경북 대학교 박물관과 청도군은 1992년 12월 3일 학술 용역을 체결하고 가슬갑사지 위치 조사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갑사의 하나인 천문갑사지를 조사하게 되었다.
천문갑사지로 추정되는 배 모양으로 튀어나온 구릉의 능선 위에는 강돌로 쌓은 석축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동서 축 30m, 남북 축 13m 정도 되는 오각형에 가까운 형태의 평지가 있다. 평지 위에는 잘 다듬어진 동서 길이 23m, 남북 길이 10m 되는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건물터의 기단으로 추측되는 돌들이 길이 9m, 폭 6m 가량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통일 신라의 유물로 추정되는 수막새, 암막새, 평기와 등이 채집되었다. 와편은 태선문이 대부분이며, 토시형 수키와와 함께 봉황문·연화문의 수막새와 당초문 암막새가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채집된 기와 조각을 통해서 통일 신라의 절터로 추정되며, 현재 노출되어 있는 기단은 그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신원리 절터는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이후 표지판 하나 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지금도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수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