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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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相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 박상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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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8년 3월 - 박상노 밀양 상동 보통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1월 27일 - 박상노 허남귤·이길우와 독립운동 단체 동진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7월 - 박상노 동진회 사건으로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2월 24일 - 박상노 동진회 사건으로 기소됨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8월 - 박상노 부산 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해방을 맞아 석방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43년 7월 - 동진회 사건 |
출생지 | 박상노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사촌리 |
학교|수학지 | 상동 보통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
활동지 | 박상노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동진회 회원 |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상노는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사촌리에서 출생하여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에 거주하였다. 1941년 2월 독립운동 단체 동진회(東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박상노(朴相老)[1925∼?]는 1938년 3월 밀양 상동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정미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1941년 1월 27일 청도읍 유호리 출신의 허남귤(許南橘)과 이길우(李吉雨) 등 11명의 20대 청년들과 뜻을 같이 하여 독립운동 단체 동진회를 조직하였다. 박상노는 이때 본인의 집을 동진회의 조직 장소로 제공하였다. 박상노의 3촌 박정근도 동진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동진회는 재만 독립운동 단체와 기맥을 통하고 항일 지하 운동을 전개하던 중 1943년 7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관련자 50여 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동진회 회원은 대부분 방면되었고 10명이 1944년 12월 24일 기소되었다. 이중 허남귤은 1945년 1월 8일, 이길우는 1945년 6월 2일 일제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부산 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박상노는 1944년 2월 부산 형무소로 신병이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이후 부산 시청 토목과와 부산 전매청 등지에서 근무하다 1951년 청도군 청도읍 사촌리에서 정미소를 경영하였으며,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청도읍 내호리 새마을 운동 지도자로 일하였다. 1982년 청도군 농협 단위 조합 총대에 선출되었고, 1985년에는 청도 축산업 협동조합 총대에 선출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