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청주지역의 육영 사업가. 학교법인 서원학원(西原學園)을 설립하여 운영한 육영 사업가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호는 운호(雲湖)이다. 아버지는 강병열(康秉烈),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부인은 임관익(任寬益) 여사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1917년 평안남도 용강군 서화면 용상리에서 강병열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
정월 14일 밤에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놀이. 정월 14일 해가 지기 전 일찍 오곡밥을 먹은 후 인근 내[천(川)]에 놓인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며 다리밟기[답교(踏橋)]를 한다. 다리밟기는 자기 나이와 같은 회수를 왕래하면 좋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내 다리 병이 나지 않고 튼튼하며 액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보름날...
-
무심천(無心川)은 청주시 청원구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일면 상대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금강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전체 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지방하천이다. 동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연결되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上黨山)[419m], 것대산(484.0m), 선도산...
-
청주 출신의 교육자, 사회사업가. 1883년 6월 11일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신학문에 눈을 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은삼산공립보통학교 훈도로 교육계에 투신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32년 음성군수까지 역임하고, 해방 후 다시 교육계로 되돌아와 1945년 10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청주여중 교장을 지내고, 학무국장을 역임하였다. 6·25 동란...
-
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호는 춘계(春溪)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부탄리에서 1865년 송수일(宋秀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비범한 재주를 보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스스로도 성현의 덕행으로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고, 친상에는 3년을 하루같이 추모하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간...
-
충청북도 청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때의 사립학교. 1909년 8월 31일에 설립 인가되어 오창식(吳彰植)이 청주 북부지역 지천(紙川)에 사립학교를 설립하였다. 농촌을 계몽하고 젊은이들에게 교육 계몽 및 생활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갑오경장(1894)을 거친 후에 사회 일반에는 민족적 자각이 증대하고 근대 의식이 성장해 감에 따라 경제력을 가진 지방유지...
-
청주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자하(紫霞)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대 법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부터 괴산군청 등에 재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육계에 뜻을 두어 청주고등학교, 공주교육대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그 후 청주교육대학에서 1963년 7월부터 1964년 3월까지...
-
의사이며, 충북지사를 역임한 행정가. 호는 가동(可東).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말의 학자 인재공 이종학(李種學)의 19대손이다. 인재공은 목은(牧隱) 선생의 둘째 아들이니, 그는 명문의 후예로 청원군 오창면 백현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15세까지 소학, 사서 등 한문을 수학하고, 그 후 신학문에 접하여 사립 보성중학을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전문학교를 마친 선생...
-
청주에서 성장한 정치인. 1940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입학하여 이듬해인 1941년에 중퇴하였다. 30여 년 야당 외길을 걸으며 6선에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계의 거목(巨木)이었다.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두 김씨(金氏)와 같은 세(勢)를 누리지는 못하였지만 1980년대 중반 정치 암흑기에 제1야당 당수로서 정계의 핵으로 활약했다. 해방직후인...
-
청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국운이 기울어가던 한말.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수여리 5번지에서 태어나 만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길림성(吉林省)에서 세운 제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신창학교와 길흥고등소학교 등을 설립, 육영사업에 투신하였다. 길림성 한교동향회(韓僑同鄕會) 상무 간사에 1929년 2월 임명되고,...
-
충청북도 청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때의 사립학교. 갑오경장(1894)이후 민족적 자각이 증대하고 근대 의식이 성장하고 을사조약으로 국운이 기울어져가고 있을 때 지방유지 및 선각자들은 교육 구국을 강조하였다. 이런 때에 청주에서도 새 학문을 지향하며 여러 사립학교가 개설되었는데, 교동에서 유해철(柳海哲)이 학교를 세우고 교장은 오장현(吳長鉉)이었다. 1909년 공식으로 학...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청주 최초의 서양식건물.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충청북도지방 기독교 문화의 요람이었던 청주탑동양관은 1906년부터 1932년 사이에 건립된 여섯 동의 서구식 건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청주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건립된 양옥(洋屋) 건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민노아(閔老雅, F.S. Mi...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청주 최초의 서양식건물.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충청북도지방 기독교 문화의 요람이었던 청주탑동양관은 1906년부터 1932년 사이에 건립된 여섯 동의 서구식 건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청주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건립된 양옥(洋屋) 건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민노아(閔老雅, F.S. Mi...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청주 최초의 서양식건물.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충청북도지방 기독교 문화의 요람이었던 청주탑동양관은 1906년부터 1932년 사이에 건립된 여섯 동의 서구식 건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청주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건립된 양옥(洋屋) 건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민노아(閔老雅, F.S. Mi...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청주 최초의 서양식건물.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충청북도지방 기독교 문화의 요람이었던 청주탑동양관은 1906년부터 1932년 사이에 건립된 여섯 동의 서구식 건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청주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건립된 양옥(洋屋) 건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민노아(閔老雅, F.S. Mi...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청주 최초의 서양식건물.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충청북도지방 기독교 문화의 요람이었던 청주탑동양관은 1906년부터 1932년 사이에 건립된 여섯 동의 서구식 건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청주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건립된 양옥(洋屋) 건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민노아(閔老雅, F.S. Mi...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청주 최초의 서양식건물.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충청북도지방 기독교 문화의 요람이었던 청주탑동양관은 1906년부터 1932년 사이에 건립된 여섯 동의 서구식 건물로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청주지방에서는 맨 처음으로 건립된 양옥(洋屋) 건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민노아(閔老雅, F.S. Mi...
-
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1951년 12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자신의 계속적인 집권을 위한 방편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자유당은 이승만의 카리스마적 권위주의를 중심으로 소수의 정치인들이 집결한 비대중적 정당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는 자유당의 힘에 의한 비민주적 방법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