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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5월 1일 진보향교 회중에서 안동의 임천서당으로 보낸 통문. 1883년 5월 1일 진보향교 회중에서는 안동 임천서당으로 문의한 영양 남경대(攬景臺) 중건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진보는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가 우거하던 고을이며, 남경대 역시 권태시가 학업을 수행하던 곳이라는 인연이 있었다. 또한 남경대를 수리하기 위한 계(稧)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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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당시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박동춘이 피난 경험을 한문으로 기록한 일지. 『6.25 피난일지(六二五避難日誌)』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출신의 박동춘(朴東春)[1906~1989]이 6.25전쟁 당시 피난민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박동춘(朴東春)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원서(元瑞), 족보에 수록된 이름은 박헌성(朴憲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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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상북도 진보군에서 편찬한 읍지. 『경상북도진보군읍지(慶尙北道眞寶郡邑誌)』는 1899년 조선 정부가 전국적 읍지 편찬 과정 안에서 당시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진보군에서 제작하고 편찬한 읍지이다. 간행 년도를 1899년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이유로는 읍지의 구성 형태로 보아 알 수 있다. 먼저 본 읍지의 책머리에는 채색을 한 진보군 지도가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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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1900년에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간행한 읍지.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청송군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편찬 시기는 환적조(宦蹟條) 마지막에 기재된 장승원(張承遠)의 부임 시기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장승원은 1899년인 기해년(己亥年) 2월 이전 비서승(秘書丞)으로 있다가 군수로 부임하였다. 장승원이 1900년 초반까지 재임한 것으로 볼 때,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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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 간행된 청송 출신의 학자 조독호의 저서와 책판. 조독호(趙篤祜)[1843-1941]는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출신으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조독호는 국권 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896년 3월 심성지(沈誠之)가 경북 청송에서 100여 명의 병력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자, 조독호는 참모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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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청송 부강서당에서 간행한 조선 후기 김종덕의 저서와 책판. 김종덕(金宗德)[1724~1797]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로 의성 사촌 출신이다. 1753년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학문에만 전념하여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계 진출을 사양하였다. 또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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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청송 부강서당에서 간행한 조선 후기 이상정의 심학(心學) 해설서와 책판.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으로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1739년 연원찰방(連原察訪)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9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산서당(大山書堂)을 짓고 제자 교육과 학문 연구에 힘썼다. 1753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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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청송 방호정에서 간행한 조선시대 단종의 사적에 대한 내용을 모은 책과 책판. 정조는 1791년 단종에게 절개를 지킨 신하들의 배향에 대한 제도를 정하는 것을 계기로 사관을 시켜 단종에 대한 시말을 고찰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의봉(李義鳳)·윤광보(尹光普)에게 능지(陵志)를 찬집하게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 뒤 1796년 이서구(李書九)가 앞의 것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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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청송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의 창의 일기. 『적원일기(赤猿日記)』는 1896년 3월부터 5월까지 청송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청송의진의 활동을 기록하였다. 당시 조선은 1895년(고종 32) 10월 8일에 발생한 을미사변(乙未事變)과 11월에 공포된 단발령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친일 세력을 타도하고자 의병들이 봉기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1896년 각처의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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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청송 부강서당에서 간행한 조선 후기의『주자대전』을 요약·편집한 저서와 책판.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유치명(柳致明)[1777~1861]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성백(誠伯), 호는 유치명이다. 유치명은 이상정(李象靖)의 외증손으로 이상정의 문인인 남한조(南漢朝), 유범휴(柳範休), 정종로(鄭宗魯), 이우(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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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청송군의 인문, 자연지리 정보를 담아서 편찬한 사찬 읍지. 『청송군지(靑松郡誌)』는 1938년 신상기(申相祺) 등이 근대 청송의 인문·자연지리 정보를 엮어 청송군지출판소에서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송 출신인 신상기, 민동호(閔東鎬), 조성진(趙性璡), 권태로(權泰魯), 남기락(南基洛), 서유(徐游) 등이 편찬하였다.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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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심일택이 청송심씨 출신 인사들의 행적을 엮어 편찬한 책. 『청송세고(靑松世考)』는 심일택(沈日澤)이 1929년 청송심씨 출신 인사들의 행적을 엮어 청송세고간행소에서 간행하였다. 전통 시대에 편찬된 읍지의 형태를 수용하였으며, 내용의 대부분은 인물과 관련된 것으로 되어 있다. 청송군 출신의 심일택이 편찬하였다. 청송심씨 가문의 선대 행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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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서울에서 비롯된 3.1운동은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려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 인사들도 진보면, 현서면, 청송면[지금의 청송읍] 등 여러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비록 출동한 일본 경찰들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독립에 대한 청송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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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해 대한민국 전역에서 펼쳐진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맺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전개되었다. 6.25전쟁은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민족 간 전쟁이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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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靑松義陣), 의성의진(義城義陣), 이천의진(利川義陣)이 연합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관군과 벌인 전투.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 의성의진, 이천의진이 연합하여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고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관군과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의성연합의진은 관군 10여 명을 사살하는 등 크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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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강진선(姜進善)[1876~190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개항기의 의병장으로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일제가 강제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다음달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에 투신하였으며, 안동, 진보, 청송, 의성 일원에서 이하현·박연백·유시연 등과 합세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4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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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월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경찰특공대가 좌익 무장 유격대를 진압한 사건. 1945년 광복 이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던 좌익 세력은 1946년 ‘10월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산으로 거점을 옮겨 간헐적으로 무장 유격 활동을 벌였다. 1947년 한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과 없이 결렬되어 무기한 휴회되자, 1947년 9월 미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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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권회복운동은 의병 전쟁과 계몽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청송 지역에서는 계몽운동 단체의 결성은 없었다. 서울에서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대한국민교육회]가 결성된 이래 1906년 5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1907년 11월 대한협회(大韓協會), 1908년 3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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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에서 펼쳐진 의병 전투.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는 1910년 경상북도 경주·영천·의흥·청송 지역의 일본군 수비대로 편성된 합동 토벌대를 맞이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가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에서 치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는 큰 피해를 입고 해산되었다. 1908년 4월 26일 청송군 현서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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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설립된 근대 교육기관. 광덕학교(廣德學校)는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유지들에 의해 1908년 설립되고 1909년 9월 인가받아 진보향교(眞寶鄕校)에 설립된 근대 교육기관으로 이 지역의 신문물 수용과 보급 및 인재 양성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광덕학교는 1908년 진보군수 정형택(鄭衡澤)과 진보향교 및 유림들의 협조와 지원으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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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정치, 사회경제적 상황.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의 당면한 과제는 정부 수립이었다. 광복 직후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국의 도·군·면 단위에는 지부가 결성되었다. 청송 지역에서도 건국준비위원회 각 단위의 지부가 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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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을 타도하기 위한 의병들의 창의가 일어났다. 청송 지역에서도 의진들이 결성되어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과 진보의진,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참여한 청송 출신의 의병 및 1908년 2월경부터 청송 지역에서 의병장 서종락(徐鍾洛)이 지휘하던 청송 동부진과 의병장 남석구(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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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영(尹滋瑛)[1894~1938]은 청송이 낳은 걸출한 항일독립운동가이면서 공산당 조직에 몸담고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에 헌신한 혁명가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겪고 나온 후 청년운동에 진력하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에 가입하고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의열단(義烈團)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일시 가담하였고, 청년동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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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으로 청송의진에서 활약한 의병. 권복규(權復奎)[1850~1925]는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이다. 1896년 3월 청송향교의 향원으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진용을 편성하는 등 실무를 담당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장(景章), 호는 송은(松隱). 1850년 12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석정마을에서 향림(香林) 권식(權湜)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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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권성하(權成夏)[1852~1914]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우익장(右翼將)으로 참여하여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와 청송의진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언(泰彦), 호는 양파(良坡). 1852년 청송군 청송면 부곡리(釜谷里)[지금의 청송읍 부곡리]에서 아버지 권재기(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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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선(士選)이고 호는 일암(一庵). 증조부는 권해도(權海度)이고 할아버지는 권석장(權錫璋)이다. 아버지는 권병호(權秉鎬)이고, 어머니는 영해신씨(寧海申氏) 신규흠(申奎欽)의 딸이다. 부인은 김해배씨(金海裵氏) 배상학(裵相學)의 딸이다. 권수승(權秀升)[1862~1925]은 1862년(철종 13) 경상도 진보현 신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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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 권영만(權寧萬)[1877~1950]은 일찍이 의병에 참여하였고, 1915년 음력 1월 결성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후원하는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주비단(籌備團)의 결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임시정부의 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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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용이(權龍伊)[1903~1972]는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군 임동면 편항시장(鞭巷市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일제 통치기구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구(龍九), 호는 송담(松潭).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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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권유현(權有鉉)[1876~?]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陣)과 정해일의진(鄭海日義陣)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안동(安東)·풍기(豊基)·순흥(順興) 등지에서 활약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안동(安東). 1876년 음력 2월 30일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面) 흥구리(興丘里)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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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으로 흠치교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권중호(權重浩)[1887~1924]는 흠치교(吁哆敎)에 입교하여 조선의 독립을 기도하고, 교도 모집 및 군자금을 모금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1887년 9월 7일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廣德里) 357번지에서 태어났다. 권중호는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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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권탁수(權鐸洙)[1835~1909]는 1896년 3월 청송에서 심성지(沈誠之)를 창의장(倡義將)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결성되었을 때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여(循汝), 호는 석정(石亭). 183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서 태어났다. 권탁수의 가문은 안동권씨(安東權氏) 급사중공파(給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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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은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청송과 진보가 모두 군(郡)이 되어 안동부(安東府)에 속하였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道)로 개편됨에 따라 경상북도 청송군과 진보군이 되었다. 1911년 동리(洞里) 통폐합에 이어 1914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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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설립된 신교육에 관련된 조직이나 단체.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교육은 유교 교육이었다. 1876년(고종 13)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의해 개항(開港)과 함께 근대 서구 문물을 수용하면서 이를 교육에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을 신교육운동이라 하는데, 188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된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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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수(金基洙)[1859~1925]는 1919년 3월 26일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기수는 개신교 장로파 전도 조사(助師)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경상북도 각 지역에서도 곧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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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용(金基庸)[1883~1938]은 1919년 3월 25일의 청송 진보시장 만세시위운동, 3월 26일의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그리고 1928년의 3월 장진홍(張鎭弘)의 영천경찰서 폭파의거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 호는 능백(能伯), 이칭은 김명숙(金明淑).18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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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달희(金達熙)[1890~1977]는 1920년 음력 8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입교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달희는 1920년 음력 8월 청송 본가에서 치성(致誠)을 올리고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었으며,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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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김대락(金大洛)[1851~1905]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 및 중군장(中軍將)을 역임하였으며, 중군장으로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에 참여하여 크게 이겼다. 해산 이후 상경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여 융릉참봉(隆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을사늑약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김해부사(金海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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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두진(金斗鎭)[1873~1944]은 청송군 진보 출신으로 1913년 안동 출신 의병장 유시연(柳時淵)의 지휘 아래 경상북도 안동·영양·영주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잡혀 징역 15년의 옥고를 치렀다. 김두진은 1912년경부터 유시연의 지휘 아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안동 출신 유시연은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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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및 현대 청송 출신의 행정가. 김만천(金萬千)[1894~1975]은 일찍이 서울에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를 졸업하고 면서기, 일제 경찰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 1927년 이후 안덕면 면장으로 근무하며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신국가 건설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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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상길(金相吉)[1854~1927]은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가하여 좌익장(左翊將)에 이어 참모(參謀)로서 안덕면 감은리전투와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리 화전등전투 등을 이끌었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림(景琳), 호는 약우당(若愚堂). 고려 개국공신 김훤술(金萱述)의 후예로 1854년 12월 20일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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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숭진(金崧鎭)[1850~1919]은 1896년 청송 유림들이 결성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서기(書記)로 종군하여 진중일지인 『적원일기(赤猿日記)』를 남겼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우현(禹鉉). 1850년 5월 27일 청송군 현서면 도동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정재학파(定齋學派) 석간(石澗) 서효원(徐孝源)의 문인이다. 1895년 을미사변(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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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완이(金完伊)[1881경~?]는 1906년 3월부터 4월 24일까지 이하현의진(李夏鉉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완이는 1881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진보·영양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하현의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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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의성(金義聖)[1880~1909]은 청송군 진보 출신으로, 신돌석의진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안동 등지에서 일본군 헌병 1명을 비롯하여 일본군에 협조한 조선인을 처단하였으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경성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김의성은 1880년경 경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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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청송군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 김인환(金寅煥)[1919~1989]은 농촌진흥청장 등을 역임하면서 미곡 증산에 기여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상의(金相儀)이며, 어머니는 신남(申南)이다. 김인환은 1938년 안동공립농림학교 농과, 1941년 수원고등농림학교 농학부를 졸업하였다. 1941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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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재수(金在洙)[1876~1909]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난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의성의 박연백(朴淵伯) 의진에 들어가 소모장(召募將)으로 영천, 안동, 신녕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확보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1909년 4월 교수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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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 김종달(金鍾達)[1864~1909]은 청송 출신의 의병으로 1906년 창의한 신돌석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09년 8월 11일 현서면 백자리에서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김종달은 1864년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백자리(柏子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백자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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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진구(金鎭九)[1854~1914]는 1896년 3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일어난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가하여 외방장(外防將)으로 청송군 현서면의 행정과 치안을 맡아 활동하였다. 김진구는 1854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명으로는 김진방(金鎭方)이라고도 하였다. 청송 유림들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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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진영(金震榮)[1876~1921]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집사(將營執事)에 이어 군문집사(軍門執事)로 활동하였고, 1908년 청송 동부진 서종락(徐鍾洛)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옥(重玉), 호는 벽초(碧樵), 이명은 김해영(金海榮). 1876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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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태진(金泰鎭)[1828~1904]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저항하는 항일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나자, 1896년 3월 청송 향회(鄕會)에서 유림들과 함께 창의를 결의하고 심성지(沈誠之)를 대장으로 추대하여 청송의진(靑松義陣)을 결성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언(亨彦), 호는 만회당(晩晦堂). 182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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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사당. 개일리에 있는 낙금당(樂琴堂)은 남성로(南星老)[1829~1878]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1880년(고종 17)에 건립한 사당이다. 남성로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낙금(樂琴)이다. 남성로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났을 때 군량미를 지원하였으며, 지역에서 많은 빈민을 구제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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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에 설립된 근대 교육기관. 낙일학교(樂一學校)는 1909년 4월 경상북도 청송 지역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청송 지역의 근대 문물 보급과 인재 양성 및 지역 발전의 산실이 되었다. 낙일학교는 1909년 당시 청송군수였던 안종덕(安鍾悳)과 지역 인사들이 뜻을 모아 청송향교(靑松鄕校)의 재원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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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두희(南斗熙)[1850~1924]는 1896년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우익장(右翼將)으로 활동하였다. 청송의진의 창의 초기에 참여하여 해산할 때까지 지휘부를 이끌고 경상북도 청송·경주·영덕 등지를 전전하며, 각처 의병진과 연합하여 불굴의 항전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중(極中).1850년 1월 29일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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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복수(南福洙)[1880~1931]는 1906년 3월 영양남씨(英陽南氏) 일족인 남석우(南錫祐) 등과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군수품 수집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귀향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도(景都). 이명은 남수복(南洙卜). 1880년 5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523번지에서 아버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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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 남상현(南相鉉)[1861~1942]은 1896년 창의[국난을 당하였을 때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킴]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국필(國弼), 호는 당파(棠坡). 1861년 12월 2일 경북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개일리(開日里)에서 아버지 삼계(三溪) 남용하(南龍夏)와 어머니 의성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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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광(南錫光)[1881~1952]은 1906년 3월 남석우, 남석인 등과 함께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고와실전투에서 패한 뒤, 각처를 전전하며 은신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박(而珀). 188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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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구(南錫球)[1875~1911]는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다가 1908년 3월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 휘하의 청송 서부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서(應瑞). 187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광하(南光夏)와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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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술(南錫述)[1872~1907]은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입진하여 감은리 전투를 수행하였고, 1907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청송·흥해·영덕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영덕 유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숙(敬叔), 이명은 남경규(南景圭). 1872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문철(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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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우(南錫佑)[1869~1906]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의병 해산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화적(火賊) 토벌에 참여하여 약포장(約砲將)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우익장(右翼將)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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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우(南錫祐)[1871~1933]는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으며, 1908년 2월경 편성된 남석구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여(德汝). 1871년 9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327번지에서 아버지 남성하(南成夏)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4남 3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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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인(南錫仁)[1878~190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였고, 1906년에는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팔(禹八), 이명은 남우팔(南又八). 1878년(고종 18)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도평리(道坪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의병이 전국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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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태(南錫台)[1879~1961]는 1896년 경상북도 영천 신녕의 화산의진(華山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청송 고와실전투 패전 후 은신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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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승철(南升喆)[1851~1922]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사병도총(司兵都摠)으로 군사훈련과 군율을 담당하였다. 특히 의병의 폐단을 진무하고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흥해(興海)로 출진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5월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 이후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와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에 참여하여 각처 의병진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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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승하(南昇夏)[1872~1907]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4월 산남의진 대장 정용기(鄭鏞基)가 체포된 뒤 귀향하였다가, 1907년 4월 정용기가 재기하자 청송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성(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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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정철(南井喆)[1888~197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으며.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崔世允)이 소부대 단위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의 종사로 의병 항전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삼(極三), 호는 청강(靑江), 이칭은 남정철(南定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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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월 좌익 무장 유격대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면 달기마을을 습격하여 주민을 학살한 사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청송 지역의 좌익 무장 유격대[빨치산]가 달기마을[청송읍 월외1리] 주민들에게 식량 지원과 부상자 치료 등을 요청하였으나 거부하였다. 좌익 무장 유격대는 달기마을을 ‘반동의 마을’로 규정하고 공격하여 주민 12명을 학살하고 마을 민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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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개항기의 정자. 담포정(澹圃亭)은 평해황씨(平海黃氏) 황일성(黃一聖)이 선조를 추숭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1880년에 건립한 서당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정자로 바꾸고 이름을 담포정이라 하였다.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701-5번지의 신기1리 새터마을 새마을회관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m 떨어져 있는 밭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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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7월 대구에서 결성되고 경상북도 청송 출신 권영만(權寧萬)이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1910년대 민족운동을 대표하는 비밀결사 단체로 군자금 모집과 관공서 습격 및 친일 부호 처단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청송 출신으로는 권영만이 본부 요원으로서 경주의 세금 우편마차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광복회의 창립 목적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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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경상북도 청송군의 정치, 사회경제적 상황과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는 정부 수립이었다. 광복 직후 38도선을 경계로 이남 지역에는 미군, 이북 지역에는 소련군이 각각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한반도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미국과 소련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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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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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중국 만주(滿洲)로 망명한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인물들의 활동. 만주 망명은 일제 침략에 의한 민족 수난기에 만주 지역으로 나가 구국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 출신 인물로는 박영산(朴榮山)과 남우락(南佑洛)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만주는 압록강(鴨綠江) 및 두만강(豆滿江)을 경계로 중국 동북 지방의 랴오닝성[遼寧省],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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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개항기의 정자. 망미정(望美亭)은 1899년(광무 3) 청송군수(靑松郡守) 장승원(張承遠)[1853~1917]이 용전암 위에 건립한 정자이다. 망미정은 월막리 월막마을 남쪽 끝을 휘감고 흐르는 용전천 변의 절벽에 있다. 망미정이 위치해 있는 절벽을 용전암(龍纏巖)이라 불리며, 그 아래에 있는 수심 3m의 소(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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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모충이(牟沖伊)[1883~1960]는 1906년 3월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의 대장 정용기에 이어 대장 정환직(鄭煥直)마저 순국하자 1908년 3월 청송 보현산(普賢山)으로 들어가 최세윤(崔世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평(咸平), 이명은 모준이(牟俊伊). 1883년 4월 4일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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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민동호(閔東鎬)[1874~1938]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였으며, 4월 29일 참모(參謀)에 선임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숙경(叔京), 호는 효강(曉岡). 1874년 9월 29일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민치호(閔致澔)와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4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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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민성호(閔晟鎬)[1836~1908]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지(成之), 호는 청당(靑棠). 1836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산곽(山郭) 민치박(閔致博)과 어머니 상락김씨(上洛金氏)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880년 증광시(增廣試)에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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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민인호(閔仁鎬)[1854~1925]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척후장(斥候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일(文一), 호는 낙산(樂山). 1854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민치벽(閔致璧)과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세종 때 청송군 안덕현 현내면 당저(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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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춘기(閔春基)[1922~생존]는 1922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에서 수학하였고, 학업 도중 교토한국인유민생회[京都韓國人留民生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키웠다. 민춘기는 1939년경부터 신문점 배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지들과 회합하며 독립의식 고취와 비밀결사 조직에 노력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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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무여(武汝). 1927년 8월 2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828번지에서 아버지 박해진(朴海振)과 어머니 김시목(金時睦)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박동열(朴東烈)[1927~2008]은 1935년 4월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의 임하공립보통학교(臨河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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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문신. 박상범(朴尙範)[1855~1913]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반대 상소를 올리고 국권피탈 후에는 침식을 전폐하였다. 본관은 춘천(春川). 자는 계순(繼舜), 호는 가은(稼隱), 초명은 박제원(朴悌源). 박상범의 11대조는 도은(島隱) 박언필(朴彦弼)이며, 고조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박희렴(朴希濂), 증조할아버지는 박이상(朴履相),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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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박수찬(朴壽燦)[1867~1922]은 1906년 3월 처남 신돌석(申乭石)과 함께 경상북도 영덕에서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일으키고 참모장(參謀將)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 박덕술(朴德述)의 지극한 효행으로 풀려났다.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양정(養亭). 1867년 10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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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산(朴永山)[1887~1931]은 일제 관헌의 기록에 한자 이름이 박영산(朴榮山), 박영산(朴英山)으로도 남아 있다. 또한 박병곤(朴炳坤), 박용찬(朴容讚)이라는 이명을 쓰기도 하였다. 1887년 1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태어났고, 1910년대 초에 만주로 망명하여 부민단(扶民團), 서로군정서(西路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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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출신의 의병. 박용태(朴容台)[1888~?]는 경상북도 진보에서 신돌석의진에 참여한 이후 1908년 음력 3월 17일경 이 참봉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진보군 남면 감곡동(甘谷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용태는 1888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상리면(上里面)[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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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주한(朴柱翰)[1893~1923]은 1920년 음력 7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산동(梧山洞) 오항산 제실(祭室)에서 치성을 하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잡혔으나 면소(免訴) 처분으로 풀려났다. 박주한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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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춘식(朴春植)[1928~1987]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농림학교 제10기 재학 중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박춘식은 1928년 1월 16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농림학교 제10기 학생으로 입학하여 1944년 10월 말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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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56년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좌익 무장 유격대의 활동을 진압한 사건. 1945년 광복 직후 청송 지역의 도심에서 활동하던 좌익 세력은 1946년 미군정이 탄압을 강화하자 산으로 도피하여 산발적인 무장 유격 활동을 벌였다. 1947년 미국이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시키고 정부 수립의 유리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좌익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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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배연집(裵淵集)[1878~1953]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수위(將營守衛)를 역임하였으며, 1908년 2월부터 서종락(徐鍾洛)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원서(元序), 이명은 배연집(裵淵楫) 혹은 배상언(裵尙彦). 1878년 5월 5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하속리 925번지에서 아버지 배선화(裵善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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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주거 건축. 감연리에 있는 배재창 가옥(裵在暢家屋)은 1928년경에 배희직(裵熙稷)[1868~1942]이 건립한 민가이다. 배희직의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경래(敬來)로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군자금 50금을 낸 의병이자 부호였다. 현동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따라 청송군청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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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배희직(裵熙稷)[1868~1942]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陳)에 군자금 50금을 의연(義捐)한 의병이자 부호였다.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경래(敬來). 다른 이름으로 배희직(裵凞稷)을 사용하였다. 1868년 3월 29일 경북 청송군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리 1225번지에서 아버지 낙은(樂隱) 배학순(裵㶅舜)과 어머니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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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6월 경찰이 경상북도 청송군 보현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좌익 무장 유격대를 진압한 사건. 1945년 광복 직후 청송 지역에서는 좌익 세력이 인민위원회, 민주청년동맹 등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6년 좌익 세력이 미군정 철폐와 친일파 처벌, 식량문제의 해결 등을 요구하며 일어난 ‘10월 사건’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청송 지역에서도 민주청년동맹에 소속된 청년들이 청송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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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중 경상북도 청송군 보현산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과 북한군 간의 전투. 보현산(普賢山)[1,124m]은 청송군 현서면과 영천군 화북면의 경계에 있는 울창한 삼림의 높고 험준한 산이다. 보현산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좌익 무장 유격대[빨치산]가 근거지를 두고 활발히 활동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49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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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2일 좌익 무장 유격대가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던 부동지서를 습격한 사건. 1945년 광복 이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던 좌익 세력[빨치산]은 1946년 ‘10월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과 경찰의 검거를 피해 산으로 거점을 옮겨 활동하였다. 1947년 7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된 직후 미군정은 좌익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청송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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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경주 및 경상남도 울산, 밀양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 정환직(鄭煥直), 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였다. 의진은 처음부터 관동(關東)을 향한 북상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하다 1907년 9월 입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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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고락(徐高洛)[1867~1909]은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다가 1909년 8월 11일 진보군 동면 백자동(柏子洞)에서 체포되었다. 영덕경찰서로 압송되던 중, 영덕군 동면 주동(酒洞) 산간에서 도주를 시도하다 호송하던 경찰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서고락은 경상도 청송도호부 남면 마평(馬坪)[지금의 경상북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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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유생 겸 의병. 서석기(徐錫琦)[1869~1924]는 청송 출신의 유생(儒生)으로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다. 1896년(고종 33) 의암 유인석이 충청북도 제천에서 창의(倡義)한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제천의진 해산 이후 의암 유인석이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자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등과 함께 들어가 7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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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종락(徐鍾洛)[1874~194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청송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창의(倡義) 이후에는 1차 산남의진의 후봉장(後鋒將)에 이어 선봉장(先鋒將)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에는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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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효격(徐孝格)[1855~1936]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書記)에 선임되어 각종 문서를 담당하며 『적원일기(赤猿日記)』를 기록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순가(順可), 호는 오산(午山). 1855년 12월 26일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서운희(徐運熙)와 어머니 진성이씨(眞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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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효달(徐孝達)[1839~1904]은 청송향교의 향원(鄕員)으로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는 등 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덕언(德彦). 1839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화오(花塢) 서병화(徐炳華)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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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효신(徐孝信)[1848~1915]은 1896년 1월 예안의진(禮安義陣)의 청송 소모장(召募將)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창의(倡義)하는 과정에서 귀향하여 소모장, 우익장(右翼將)을 맡아 하였고, 5월에는 부동외방장(府東外防將)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달오(達五), 호는 현연(玄淵), 이명은 김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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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효원(徐孝源)[1839~1897]은 1896년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陳)의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청송의진의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에 선임되는 등 창의 때부터 해산할 때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백순(百順), 호는 석간(石澗). 1839년 9월 25일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서문희(徐文熙)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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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있는 개항기의 서당. 송호서당(松湖書堂)은 남양홍씨(南陽洪氏)와 평해황씨(平海黃氏) 문중에서 후진을 양성할 목적으로 1900년(광무 4)에 세운 서당이다. 청송읍사무소에서 지방도914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8㎞ 정도 향하면 좌측편에 송생리 원송생마을이 나타난다. 송호서당은 원송생마을 서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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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에 있는 개항기 의병장 임용상이 태어난 집터. 수락리 임용상 생가지는 일제의 침탈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독립유공자 임용상(林龍相)[1877~1954]이 태어난 집터이다. 임용상의 자는 충서(忠瑞), 호는 중호(中虎)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영덕군(盈德郡) 청련사(靑蓮寺)에서 의병을 모아 동해창의군(東海倡義軍)을 조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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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지역에서 시온산제국 신도들이 독립운동을 펼치다 체포된 사건. 시온산제국사건은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의 수행 과정에서 전쟁 동원과 종교 탄압에 직면한 기독교 장로교 신자들이 일본의 패망을 전망하고 펼친 반일반전운동이다. 1944년 4월 25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출신의 목사 박동기(朴東基)가 시온산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헌법을 공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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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동호(申東鎬)[1842~1920]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에 선임되어 청송의진의 편제를 정비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백(敬伯). 1842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에서 안동 유생 이야순(李野淳)의 문인이었던 부호군(副護軍) 신홍운(申弘運)과 어머니 함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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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동환(申東煥)[1891~1958]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1891년 1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신동환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겉으로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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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두환(申斗煥)[1880~1958]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1880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81번지에서 태어났다. 신두환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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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범희(申範熙)[1892~1929]는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신범희는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1892년 3월 13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겉으로 종교 활동을 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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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두(申相斗)[1871~1969]는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선두에서 주동하다가 잡혀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청송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5일 청송군 진보장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상두는 청송군 파천면 출신으로 이웃 고을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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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선(申相宣)[1887~1969]은 1920년 음력 8월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였다. 신상선은 흠치교에서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지만, 대구복심법원의 면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신상선은 1920년 음력 8월경 청송에서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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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용(申相鎔)[1876~1925]은 1920년 음력 7월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흠치교의 힘으로 국권을 회복한다는 신념으로 교도 조직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잡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신상용은 상위자인 신규환(申圭煥)의 권유를 받아 1920년 음력 7월 청송군 합강리 마을 거주지에서 치성(致誠)을 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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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상익(申相翼)[1852~1919]은 1896년 4월 창의(倡義)한 진보의진(眞寶義陣)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창의장(倡義將) 방산(舫山) 허훈(許薰)을 대신하여 진보의진의 업무와 전략을 전담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보(敬輔), 호는 가천(可川). 1852년 3월 19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아버지 사은(泗隱) 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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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9월 21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벌어진 의병 전투. 신성전투(薪城戰鬪)는 1907년 9월 21일[음력 8월 14일] 추석 전날 밤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에 들어온 산남의진의 청송 지역 유격대와 일본군이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건너 추강마을에서 벌인 전투이다. 1907년은 의병 전쟁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는 시기로 7월 19일 고종의 강제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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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에 있는 개항기의 주거 건축. 복리에 있는 신영근 가옥은 19세기 후반 무렵 건립된 민가이다. 안덕면사무소가 있는 면소재지를 우회하는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을 따라 현서면 방향으로 가다가, 안덕교를 건너 수락리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방도908호선에서 우회전하여 약 850m 가면, 도로 우측에 소대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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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익한(申翊漢)[1838~1906]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보(漢輔). 1838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안덕면 복리]에서 아버지 신병호(申炳浩)와 어머니 여강이씨(驪江李氏)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익한은 1896년 창의(倡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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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희(申喆熙)[1895~1965]는 1920년 음력 8월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잡혔으나 1921년 11월 대구복심법원의 면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본관은 평산(平山).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 1895년 7월 4일 신상기(申相琦)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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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태휴(申泰烋)[1870~1931]는 1919년 3월 26일 조현욱(趙炫郁)과 함께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평산(平山). 이명은 신태걸(申泰杰). 1870년 8월 3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신태휴는 전국 각지에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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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신필호(申弼鎬)[1834~1900]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창의(倡義)하는 과정에서 청송향교(靑松鄕校)의 교장(校長)으로서 향교의 향원(鄕員)을 소집하여 향회(鄕會)를 개최하는 등 창의를 지원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은수(殷叟), 호는 만음(晩陰). 1834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안덕면 복리]에서 아버지 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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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관지(沈灌之)[1834~1899]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서효원(徐孝源)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1834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안덕면 복리] 101에서 태어났다. 고려 후기 충혜왕(忠惠王) 때 전리판서(典理判書) 악은(岳隱) 심덕부(沈德符)의 6세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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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능규(沈能奎)[1850~1897]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오(星五), 호는 국포(菊圃). 1850년 4월 7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성재(省齋) 심면지(沈冕之)와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집에서 공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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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능장(沈能璋)[1855~1903]은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척후(斥候)로 활동하다가 소모장(召募將)에 임명되었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위옥(韋玉). 1855년 8월 5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낙지(沈洛之)와 어머니 경주김씨(慶州金氏)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심능장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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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능찬(沈能璨)[1859~1903]은 1896년 3월 결성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장(倡義將) 심성지(沈誠之)의 아들로 자제군관(子弟軍官)에 임명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방(景方). 1859년 2월 25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소류(小流) 심성지와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의 2남 중 차남으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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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사회활동가. 심상완(沈相完)[1899~?]은 1899년 4월 28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동(德川洞)에서 자산 60만 엔을 보유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 사상 단체와 국외 독립운동 단체에 일시 가담하였다가 물러난 후 기업을 설립하여 운영하며 광산 개발 및 경영에도 전념한 사업가였고, 경상북도 평의회(評議會) 의원을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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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성지(沈誠之)[1831~1904]는 1896년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장(倡義將)으로 추대되어 의병진의 결성과 진용의 정비, 그리고 의병 활동 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행(士行), 호는 소류(小流). 1831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하수(沈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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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고려 충신 심원부의 신도비. 심원부 신도비는 청송군 파천면 덕천1리 경의재(景義齋) 앞에 있는 비석이다. 심원부(沈元符)[1330~?]는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서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등과 같은 고려 말 충신들과 두터운 교의를 맺었다.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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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의봉(沈宜鳳)[1875~1927]은 유생(儒生) 신분으로 안동 지역에 파견되어 정세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1875년 5월 25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116번지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충혜왕(忠惠王)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악은(岳隱) 심덕부(沈德符)의 6세손으로 조선 단종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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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의식(沈宜植)[1860~1937]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서기(書記)에 선임되어 각종 문서를 담당하며 진중일기를 기록하였다. 1911년 망명지를 물색하기 위해 서간도(西間島)를 여행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립(景立), 호는 노산(老山). 1860년 7월 1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서 아버지 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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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의철(沈宜喆)[1870~1931]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부서외방장(府西外防將)에 임명되어 휘하에 친군을 거느리고 각 면 지역의 방어와 치안을 담당하면서 본진을 후원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팔(景八), 이명은 심의주(沈宜柱). 1870년 11월 30일 청송군 청송읍 덕리에서 아버지 심능부(沈能溥)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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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의택(沈義澤)[1862~1910]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이 군비를 효율적으로 모집하고 운용하기 위해 지휘부의 편제를 정비할 때 서기로 임명되어 각종 문서를 관장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예백(禮伯), 호는 묵암(黙菴). 1862년 7월 7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의성(沈宜聖)과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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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의화(沈宜華)[1840~1921]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장재도청(掌財都摠)에 선임되어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는 등 군세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삼(聖三), 호는 금계(琴溪). 1840년 7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서 아버지 심능린(沈能麟)과 어머니 함안조씨(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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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진택(沈瑨澤)[1866~1933]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유생으로 안동의진(安東義陣)에 파견되어 연락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군옥(君玉). 1868년 11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서 아버지 금계(琴溪) 심의화(沈宜華)와 어머니 숙부인(淑夫人) 김해김씨(金海金氏)의 5형제 중 3남으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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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송(靑松). 창씨명은 청전훈(靑田勳). 192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상만(沈相万)과 어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6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헌춘(金憲春)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1942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의 파천국민학교(巴川國民學校)를 졸업하고, 1942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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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항일 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가 일으킨 항일운동.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는 1933년 4월에 설립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유일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하고 전쟁에 동원될 군인을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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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의 오누지에서 벌어진 진성의진과 일본군의 전투. 1906년 4월 이현규(李鉉圭)가 이끄는 진성의진(眞城義陣)이 장수령전투(長水嶺戰鬪)에서 패하고 도주하는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 계급] 무토[武藤] 부대를 오누지에서 격파하고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魚川)까지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에 온 민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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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오세로(吳世魯)[1852~1900]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장(參謀長)으로 군량미를 수합하고 의병을 훈련시키면서 의병의 군세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국(聖國), 호는 인산(仁山). 1852년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에서 아버지 오정화(吳正和)와 어머니 아주신씨(鵝洲申氏)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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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우영조(禹永朝)[1870~1963]는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진보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1907년 10월 9일 입암전투(立巖戰鬪) 이후,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유격전을 구상하자 청송동부진을 맡아서 불굴의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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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택락(禹宅洛)[1878~1946]은 1920년 음력 7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가입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우택락은 면서기(面書記)로 재직하던 중 1920년 음력 7월 청송 진보에서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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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백자리에 있는 운사정(雲沙亭)은 윤정벽(尹鼎璧)[1653~1697]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윤정벽의 본관은 파평(坡坪)으로, 숙종 연간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역임하였다. 운사정은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의 모래실마을의 야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운사정은 1917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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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 원주이씨 판도공파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에 있는 원주이씨 집성촌에는 이오언(李五彦)과 이준영(李俊永)이 창건한 약산정(藥山亭)이 있다. 고문서 12건은 모두 20세기 초에 약산정으로 보내온 차운시(次韻詩)이다. 이 외에도 필사본으로는 부곡동경로회 관련 4종, 약산정 수계 관련 3종, 학계안 5종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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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청송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字)는 선초(善初), 호(號)는 학남(鶴南). 아버지는 유연호(柳淵好), 어머니는 신규석(申奎錫)의 딸 영해신씨(寧海申氏), 할아버지는 유방진(柳邦鎭), 증조할아버지는 유치록(柳致祿), 부인은 이장욱(李章旭)의 딸 진보이씨이다. 유동직(柳東稷)[1883~1968]은 가학(家學)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경전에 밝아 학남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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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에 은둔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하(應夏), 호는 염암(恬庵). 아버지는 유정호(柳廷鎬), 어머니는 생원 남고(南皐)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 할아버지는 유치검(柳致儉), 증조할아버지는 유노문(柳魯文), 부인은 이은영(李殷榮)의 딸 재령이씨(載寧李氏)와 김태교(金泰敎)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유연구(柳淵龜)[1861~1938]는 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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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에서 활동한 학자. 유연호(柳淵好)[1851~1936]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학여(學汝), 호는 천산재(天山齋)이다. 아버지는 유방진(柳邦鎭), 어머니는 김회수(金會洙)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 할아버지는 유치록(柳致祿), 증조할아버지는 유선문(柳宣文), 부인은 신규석(申奎錫)의 딸 영해신씨(寧海申氏)이다. 유연호는 1851년(철종 2)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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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윤기열(尹基烈)[1878~1917]은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2초장(哨將)·도포장(都砲將) 등을 맡았다. 1908년 1월 이후에는 이세기(李世紀)의 휘하에서 포항 장기읍(長鬐邑)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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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창씨명은 송강동행(松岡東幸). 1927년 11월 20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면 월막동에서 아버지 윤자기(尹滋琦)와 어머니 영해박씨(寧海朴氏) 박근이(朴根伊)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버지 윤자영(尹滋瑛)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지도부 일원이었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滿洲總局)과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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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이명 윤은도(尹殷道). 경상북도 청송군 부내면에서 태어났으며 청송의진(靑松義陣)의 통인(通引)으로 활동하였다. 윤삼업(尹三業)[1875~1953]은 1875년 7월 13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내면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단발령(斷髮令)을 공포하자, 전국 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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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성택(尹成澤)[1926~1957]은 16세 때인 1941년 6월부터 일본 교토[京都]의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동포 공원(工員)인 동지들과 함께 만 3년 동안 독립운동을 은밀히 벌이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1여년 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5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이현동(泥峴洞) 170번지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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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영(尹滋瑛)[1894~1938]은 20대 중반 때 서울에서 3.1 독립만세운동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고 나온 후, 초기 청년운동 및 사상운동 대오의 선두에서 활동하다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들어가 곧 중요 인물이 되어, 국민대표회의 때 개조파(改造派)의 거두로 활약한 후 청년동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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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출신의 의병장. 윤정우(尹楨禹)[1848~1902]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書記) 및 전방장(前防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무일(無逸). 1848년 경북 청송군 부동면[현 주왕산면] 라리 604에서 아버지 윤태영(尹泰永)과 어머니 구산박씨(龜山朴氏)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6년 예조판서(禮曹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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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사회운동가. 윤주학(尹周鶴)[1905~1956]은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사회운동가로 1920년대 후반기 청송 지역의 청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40년대 이후 경상북도 평의원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신국가건설운동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도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청송중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원태(元泰), 호는 송정(松井).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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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윤학이(尹學伊)[1873~?]는1908년 6월 경상북도 영덕에서 창의한 신돌석 의진(申乭石義陣)에 입진하여 울진, 영해, 청송, 영양 등지에서 군량미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강제 체결에 격분한 신돌석은 1906년 3월 13일 경상북도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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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윤효업(尹孝業)[1849~1901]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하면서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와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에 파견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원(百源). 1849년 8월 22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234에서 아버지 윤종칠(尹宗七)과 어머니 송생윤씨(松生尹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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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백(李起白)[1899~1971]은 1920년 음력 7월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독립자금 모집과 교세 확장에 노력하다 잡혔으나 1921년 11월 대구복심법원의 면소(免訴) 판결로 풀려났다. 이기백은 1920년 음력 7월 청송 본가에서 치성(致誠)을 하고 흠치교에 들어갔다. 흠치교의 본부는 전라북도 정읍에 있었고,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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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순(李琦淳)[1918~1999]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1년부터 도쿄[東京]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동지 규합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43년 체포되어 옥고를 겪고, 고문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오랫동안 앓았다. 호적명은 이명수(李明秀), 창씨명은 벽산명수(碧山明秀), 호는 천애(天涯). 1918년 3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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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기찬(李起璨)[1853~1908]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나 의흥·상주 등에 거주하였던 유생으로, 1896년 3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창의하여 김산의진(金山義陣)의 창의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김산의진 해산 후 충청북도 영동군 문의(文義)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며 은거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능(敬能), 호는 지산(止山)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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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서화(李瑞和)[1885~?]는 한족회 회원으로 국내로 잠입하여 고향인 청송을 비롯하여 안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서화는 1885년 11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목계리(木溪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이동화(李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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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석이(李石伊)[1879~1910]는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산남의진의 정용기(鄭鏞基) 대장이 전사하자 독자적으로 의병을 이끌고 일본인 및 친일파 처단과 군자금 징수 활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1910년 3월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10년 당시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 거주하였던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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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세기(李世紀)[1882~1911]는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1906년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였으며,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잡힌 뒤부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909년 7월 일본군에게 잡혀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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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수목(李守睦)[1887~1909]은 1907년경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11일 경상북도 진보군 동면에서 영덕경찰서 순사대에게 붙잡혀 압송되던 도중 피살되었다. 이수목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및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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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출신의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 이오덕(李五德)[1925~2003]은 1925년에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 태어나 1943년 영덕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하여 43년간 교직 생활을 하였다. 1986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교육행정에 반감을 가지고 스스로 퇴직하여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말 연구에 힘쓰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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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의수(李宜洙)[1838~1907]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1838년 12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이진규(李鎭奎)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의수는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募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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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지영(李之榮)[1844~1904]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1844년 11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서 이만협(李萬協)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지영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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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현규(李鉉圭)[1874~1917]는 1905년 11월 청송군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청송군 진보읍 오누지전투 참전과 울진군 죽변읍 왜관 격파 등으로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1908년 일본군의 추격과 고종의 의병 해산령 등으로 의진을 해산하고 은거하였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하현(夏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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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李瀅)[1886~1949]은 1919년 3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형은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며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였다. 그러던 중 조현욱(趙炫郁)과 신태휴(申泰烋) 등이 1919년 3월 26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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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의 공포에 이어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 관제(官制)가 실시되었다.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였던 청송 지역은 1895년 23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안동부(安東府) 청송군(靑松郡)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道制)에 따라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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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전개되었던 노동운동. 청송군에서 청송노동공제회가 중심이 되어 야학을 운영하고 봉건 의식 타파를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는 활동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은 1910년대에 부두 노동자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다. 본격적인 노동운동은 1920년 4월 서울에서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가 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의 강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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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성들의 계몽과 권익 옹호를 위해 펼친 운동. 청송군에서 청송여자청년회가 결성되어 대중운동의 흐름에 호응하여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등 여성들의 계몽과 권익 옹호 등을 목표로 한 다양한 여성운동을 벌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민족운동 세력은 3.1운동을 포함한 그 동안의 민족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략과 노선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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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청년들이 벌인 사회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운동 세력은 그동안의 민족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운동의 방략과 노선을 모색하였다. 민족운동 세력은 3.1운동이 국내외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한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으나, 비조직적이고 고립 분산적으로 전개되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총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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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임영수(林永洙)[1881~?]는 1907년 8월부터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여하여 1908년 12월까지 일본군과 교전하거나 군수품을 수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1881년경 경상북도 청송군 현남면[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났다. 임영수는 1907년 8월부터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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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임용상(林龍相)[1877~1954]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합류하여 활동하다가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이후 청도, 청송,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잡혀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출옥 후 의열단(義烈團)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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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장무호(蔣武鎬)[1852~1926]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후방장(後方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공언(拱彦). 1852년 11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서 아버지 장재명(蔣在明)과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경상북도 의성 출신인 문익공(文翊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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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장수령(長水嶺) 일대에서 벌어진 진성의진과 일본군의 전투. 1906년 4월 이현규(李鉉圭)가 이끄는 진성의진(眞寶義陣)이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장수령 일대에서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 계급] 무토[武藤]가 이끄는 일본군 부대를 맞아 교전 끝에 격퇴시켰다. 1905년 11월 일제는 친일 정부대신(政府大臣)들을 조종하여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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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장한탁(蔣漢倬)[1852~1930]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한 유생이다. 안동의진의 송천도회에 참가하여 안동의진을 비롯한 주변 의병진의 정세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경장(景章), 호는 근재(芹齋). 1852년 1월 1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장발호(蔣發鎬)와 어머니 안동김씨(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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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는 현재[2017년 12월 기준] 15군데 고택에서 한옥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청송 송소 고택을 비롯하여 옹기종기 고택이 모여 있는 덕천마을에 6곳, 그리고 청송 송소 고택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평마을에 4곳, 이외 청송읍에 2곳, 현동면·주왕산면·진보면에 각각 1군데씩 한옥스테이를 하고 있다. 조선 후기 또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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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정진도(鄭鎭燾)[1852~1903]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진무장(鎭撫將)으로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에서 크게 이겼다. 그리고 청송의진이 면군체제(面軍體制)로 전환한 뒤 부장(副將)에 임명되어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 영덕전투(盈德戰鬪),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를 수행하는 등 불굴의 항전을 전개하였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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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공곡(曺功谷)[?~1908]은 1907년 4월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포술장(砲術將)으로 활동하였다. 정환직(鄭煥直) 대장 휘하에서는 포군초장(砲軍哨長) 및 부장(副將)으로 흥해·영덕 등지에서 순사주재소(巡査駐在所)를 습격하고 일본인 순사들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다 순국하였다. 조공곡은 19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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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광규(趙光奎)[1851~1927]는 1896년 3월 청송의진의 참모로 선임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명서(明瑞), 호는 간은(磵隱). 1851년 9월 5일 청송군 청송면 송생리에서 아버지 조성종(趙性宗)과 어머니 전의이씨(全義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질이 총명하여 재주와 학식으로 문명을 떨쳤다. 정절공(貞節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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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규락(趙奎洛)[1835~1909]은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지휘사(指揮使)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중서(中瑞), 호는 옥하(玉下). 1835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성안(趙性安)과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입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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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규명(趙圭明)[1860~1935]은 1896년 김도화(金道和)가 이끄는 안동의진(安東義陣)에 입진하여 경북상도 북부 지역 7읍 연합의진(聯合義陣)이 추진한 함창 태봉전투(胎封戰鬪)에 참전하였으며, 의관(議官)을 지냈다. 조규명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분노하여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김도화가 이끄는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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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규영(趙奎永)[1897~1950]은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도하고, 교도(敎徒) 모집 및 자금을 모집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관은 함안(咸安). 189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내면[지금의 현서면] 두현리 375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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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규진(趙奎震)[1850~1903]은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학맥을 계승한 긍암(肯菴) 이돈우(李敦禹)의 문인이다.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유생(儒生)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하서(夏瑞), 호는 수암(守菴). 1850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아버지 조성홍(趙性弘)과 어머니 광주안씨(廣州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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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근백(趙根伯)[1872~1908]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일으킨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참모장(參謀將)이 되어 의진을 이끌었다. 그 뒤 1907년 10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은신하였다가 1908년 6월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당해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이명은 조근백(趙勤伯)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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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능호(趙陵祜)[1852~1925]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의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여(聖汝), 호는 연잠(蓮岑). 1852년 1월 17일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印支里)에서 아버지 일산(逸汕) 조기술(趙基述)과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능호는 개항기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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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독호(趙篤祜)[1843~1914]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용(周用), 호는 회간(晦磵). 1843년 11월 6일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서 동추(同樞) 조경방(趙景滂)의 현손으로 아버지 조기유(趙其宥)와 어머니 영양이씨(永陽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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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국(趙柄國)[1883~1955]은 1919년 3월 26일 조현욱(趙炫郁), 신태휴(申泰烋) 등과 같이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튿날 다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조병국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 조현욱으로부터 궐기를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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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22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군자금 모집 활동. 중국 만주(滿洲) 서간도(西間島)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고자 1920년 9월경 경상북도 김천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이 1922년 12월 일제 경찰에 발각될 때까지 경상북도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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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성규(趙誠奎)[1853~1926]는 1896년 3월 청송향교(靑松鄕校)의 향원(鄕員)으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진용을 편성하는 등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공진(公振) 혹은 서구(瑞九). 1853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성묵(趙性黙)과 어머니 월성손씨(月城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재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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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청송 출신 의병장 겸 독립운동가. 조성길(趙性吉)[1860~191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격문을 발송하여 창의를 독려하였으며, 청송의진의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비롯하여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 영덕전투(盈德戰鬪),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 등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후원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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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성눌(趙性訥)[1835~1902]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 과정에 참여하여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으며, 향도청(鄕都廳)을 맡아 군량미의 출입을 주관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탁성(琢成). 183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두현리에서 아버지 조윤호(趙倫祜)와 어머니 달성서씨(達城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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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성로(趙性魯)[1839~1908]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참모(參謀)로 선임되었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종수(宗叟), 호는 휘산(輝山). 1839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서 아버지 조진호(趙進祜)와 어머니 월성손씨(月城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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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성박(趙性璞)[1845~1904]은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부장(副將) 및 현서면 외방장(外防將)에 임명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형옥(荊玉), 호는 영담(嶺潭). 1845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섬호(趙暹祜)와 어머니 평산신씨(平山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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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성태(趙性台)[1858~1928]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4월 29일 참모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응삼(應三), 호는 존심정(存心亭). 다른 이름으로 조성대(趙性臺)를 사용하기도 했다. 1858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長田里)에서 아버지 조연식(趙蓮植)과 어머니 오천정씨(烏川鄭氏)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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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옥제(趙玉濟)[1923~1999]는 1923년 5월 24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34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4월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3학년 재학중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비밀결사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하였다. 문예부는 일찍부터 민족의식이 담긴 역사와 문학 관련 서적을 읽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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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원(趙鏞元)[1899~1979]은 1920년 흠치교(吘哆敎)에 들어가 경상북도 청송 일대에서 교도 모집과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조용원은 1920년 음력 9월 흠치교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실제로는 한국 독립을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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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학이(趙學伊)[1890~1953]는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경상북도 안동군에서도 안동읍과 예안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이웃한 임동면에서는 유연성(柳淵成) 등이 3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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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현욱(趙炫郁)[1854~1922]은 1919년 3월 26일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목산(牧山). 1854년 1월 2일 대구 성당동(聖堂洞)에서 아버지 조경화(趙敬和)와 어머니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조명화(趙命和)에게 입양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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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1914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파천면 일대에 있던 행정구역. 1895년(고종 32) 조선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위한 23부제(二十三府制)를 실시하였다. 아울러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으로 구분되어 있던 기존의 지방행정구역이 부(府)와 군(郡)으로 이원화되었는데, 이때 기존의 진보현(眞寶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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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4월 경상북도 진보군 지역에서 결성된 의병 부대. 진보의진(眞寶義陣)은 1896년 4월 7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의 방산(舫山) 허훈(許薰)이 창의하였던 의병진이다. 창의 이후 주변 의병진과 협조 체제를 형성하고 활동하였다. 1894년 갑오변란(甲午變亂)과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변복령(變服令), 단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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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서 청년운동을 주도한 단체. 진보청년회는 청년운동을 목적으로 진보면의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설립된 청년 단체이다. 지역민을 계몽하고 지역 사회의 발전 방안과 산업 진흥 대책 마련을 위해 활동하였다. 진보청년회는 청송군 진보면 청년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지역 발전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진보면은 청송군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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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있는 창실 고택(昌室古宅)은 1917년 심호택(沈琥澤)[1862~1930]과 재종간인 심영택이 건립한 가옥이다. 청송읍에서 지방도914호선을 따라 길안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3.2㎞ 가면, 도로 우측에 하덕천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창실고택은 하덕천마을 서북쪽에 있다. 주변에 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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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청송 소류정(靑松小流亭)은 심성지(沈誠之)[1831~1904]가 덕천리에 건립한 정자이다. 심성지의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소류(小流)로 청송 출신의 학자였으나, 개항기에는 일제에 맞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896년 병신창의(丙申倡義) 당시 청송지역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는데, 청송 소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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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주거 건축. 청송 송소 고택(靑松松韶古宅)은 심호택(沈琥澤)[1862~1930]이 거주하기 위하여 1880년(고종 17)에 건립한 가옥이다. 심호택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계오(啓五), 호는 송소(松韶)로 당대 경주 최부자와 더불어 경상도의 만석꾼으로 명성을 떨쳤다. 파천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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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건립된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있는 청송 송정 고택은 1914년에 건립된 심상광(沈相光)[1886~1964]의 살림집이다. 심상광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화(純華), 호는 송정(松庭)으로 심부자라 불리는 만석꾼 심호택(沈琥澤)[1862~1930]의 둘째 아들이다.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파천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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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보전되고 있는 전통 한지 제작 기술 및 기능 보유자. 한지는 닥나무 등의 섬유를 원료로 하여 한국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든 종이를 말한다.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2리 감곡마을은 삼국시대부터 종이가 특산품이었다고 한다. 1920년대까지 감곡마을에서는 20여 호가 제지업에 종사하였으나, 현재는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인 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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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주거 건축. 창양리에 있는 청송 후송당 고택은 1937년 후송(後松)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한 근대 가옥이다. 조용정은 현재 청송 후송당 고택을 소유하고 있는 조창래의 조부이다. 청송 후송당 고택은 현동면사무소에서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안덕면으로 가는 길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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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4월 13일 좌익 무장 유격대가 경상북도 청송군의 청송경찰서를 습격한 사건. 1945년 광복 이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던 좌익 세력은 1946년 ‘10월 사건’ 이후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산으로 거점을 옮겨 무장 유격 활동을 벌였다. 1947년 8월 무렵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아무런 성과 없이 휴회에 들어가자, 그해 9월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였고,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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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에 설립된 금융기관. 청송군 부남면 식산조합은 지역 농민에게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예금 및 농촌에 유리한 사업을 진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5년 청송군 부남면의 유지 서정윤(徐廷潤), 우도훈(禹導勳), 정현유(鄭賢悠)는 지역 농민들이 영농자금을 원활히 마련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금융기관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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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경상북도 청송군의 농지개혁 과정에서 행정 당국과 농민의 조정 역할을 담당한 기구. 청송군농지위원회는 농지개혁의 원활한 실시를 위해 1950년 3월에 구성되어 행정 당국과 농민에게 구체적인 사무를 처리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청송군농지위원회는 농지개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조정 역할을 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49년 정부에서 「농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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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사회운동을 벌였던 개신교 청년 단체. 청송기독청년회는 청송군 청송면 예배당에서 창립된 청년 단체이다. 1925년 2월 창립되었으며, 창립 당시 회장은 윤우영이었다. 청송기독청년회는 개신교를 매개로 하여 종교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년을 비롯한 지역민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벌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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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 청송노동공제회는 1920년대에 청송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단체로, 민족 현실과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청송 지역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교육 활동 등을 통해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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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동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靑松東部陣徐鍾洛部隊)는 최세윤(崔世允)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대(支隊)로서 1908년 2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다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에서 패하고 해산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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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백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가장 활발하게 생산되어 유통되었던 청송백자는 1958년 이후 한동안 명맥이 끊어졌으나, 2009년에 청송군 향토문화유산[무형유산] 제1호로 지정되면서 활성화되었다. 이에 고만경이 청송백자의 제작 기술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청송백자의 생산과 전승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 청송백자는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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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서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서부진 남석구부대(靑松西部陣南錫球部隊)는 1908년 3월 철령(鐵嶺)을 근거지로 경상북도 청송 서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편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역 부대였다. 일본군과 여러 차례 격전을 벌인 뒤 1910년 청송군 안덕면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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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있는 청송심씨 찰방공 종택은 청송심씨 찰방공파의 종택으로 1933년에 건립되었다. 찰방공(察訪公) 심당(沈鐺)[1606~1674]의 자는 자경(子警)으로 벽절공(碧節公) 심청(沈淸)의 손자이자,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9세손이다. 파천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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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청송심씨 현감공파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청송심씨 현감공파 소장 고문서는 심홍부(沈洪孚)의 21세손 심의록(沈宜祿), 22세손 심유택(沈有澤) 부자대(父子代)에 작성된 교지와 호적표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고문서와 족보(族譜)를 참고하면 심유택의 7대조 심약문(沈若汶)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으며,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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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성운동을 펼친 단체. 청송여자청년회는 1920년대 초반 청송군에서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사회 운동 단체이다. 여성들의 사회 인식을 고양하기 위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개최하고, 여성들의 권익 옹호와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청송여자청년회는 여성의 교육 사상 보급과 이상적인 여성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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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3월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결성된 의병 부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은 청송 유림(儒林)이 주도한 의병진으로 주변 각처 의병진과 상호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활동하였다. 따라서 청송의진은 의성의진(義城義陣) 및 이천의진(利川義陣)과 연합하여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고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수행하였으며, 경주연합의진(慶州聯合義陣)의 결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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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영덕에 파견한 의병 부대. 청송의진은 창의(倡義) 이후 흥해, 영덕(盈德)[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과 척후(斥候)를 파견하거나 사통(私通)을 주고받으며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 주둔 관군의 출병에 위협을 받고 있던 영덕의진(盈德義陣)의 요청으로 군사를 파견하여 출진소(出陣所)를 설치하고 후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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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이 흥해(興海)[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파견한 의병 부대. 청송의진은 창의(倡義) 이후 흥해, 영덕 지역과 척후(斥候)를 파견하거나 사통(私通)을 주고받으며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흥해로 군사를 파견하여 출진소(出陣所)를 설치하고 후원하였다. 청송의진은 흥해의진(興海義陣), 영덕의진(盈德義陣)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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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청송청년회는 설립 초기에는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대 중반에 혁신하여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1920년대 초반에는 봉건의식을 타파하고 근대 지식을 전파하는 등 문화운동을 펼쳤고,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에게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목적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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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평해황씨 부사공파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평해황씨 부사공파가 있는 청송읍 청운리는 평해황씨 청송 입향조인 황덕필(黃德弼)이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낙향했다가 중종 때에 정착한 곳이다. 평해황씨는 황덕필이 입향한 이래로 학자와 효자 등을 많이 배출하면서 청송을 대표하는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고문서 중 교지는 1888년 황계응(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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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한국사의 전개 과정에서 의병(義兵)은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 때의 의병과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의병이 대표적이다. 그중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의 의병은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전개된 전기 의병[제1차 의병 전쟁, 갑오의병, 을미의병,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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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군 진보면으로 이거하여 진보의진을 결성한 유학자이자 의병장. 허훈(許薰)[1836~1907]은 근기남인(近畿南人)의 학풍과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이자, 1896년 경상북도 진보에서 창의하여 진보의진(眞寶義陣)을 결성한 의병장이다. 허훈은 전답 3천여 마지기를 팔아 아우 허위의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개항기 의병 활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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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았지만, 곧바로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하지는 못하였다. 광복 직후 38도선을 경계로 이남 지역에는 미군, 이북 지역에는 소련군이 각각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한반도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함으로써 첨예한 이념 대결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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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립된 조선형평사의 분사. 형평사 청송분사는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백정 출신 인사들이 백정들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여 저울처럼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내걸고 설립한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의 하부 단체이다. 형평사 청송분사는 백정의 자유와 평등, 권익의 쟁취를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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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백정 출신의 주도로 전개된 사회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가 조직되어 1935년 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12년간 전개된 백정(白丁)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이다. 백정은 전통 사회에서 최하층 천민이었다.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백정들에 대한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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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화목장터에서 1919년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비록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해산되었지만 청송 지역 3.1운동을 대표할 만큼 규모가 컸고 격렬하였다.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의 주도층 인사들은 만국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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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7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동 마평의 화전등(花田嶝)[꽃밭등]에서 벌인 관군과의 전투. 청송의진은 본진 해산 이후에도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와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를 통해 주변 의병진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김하락(金河洛)이 지휘하는 이천의진(利川義陣)과는 끝까지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청송의진은 영덕전투(盈德戰鬪)에서 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