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8년에 청송도호부사가 경상감사에게 올린 서목. 1838년(헌종 4) 10월 20일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는 당시 경상감사인 권돈인(權敦仁)에게 2건의 서목(書目)을 올렸다. 이 서목은 「1838년 청송도호부사 첩정」에서 보고한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것으로서, 당시 청송도호부에서 만연한 향리들의 군정과 조세 문란에 대한 처벌과 조치 사항에 대한 보고이다. 1838년 10월...
1838년 8월 청송도호부사 김진화가 이방과 서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과 조사 과정을 경상도관찰사 권돈인에게 보고한 서목. 1838년(헌종 4) 8월 1일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는 당시 경상도관찰사 겸 순찰사인 권돈인(權敦仁)에게 1건의 서목(書目)과 점련(粘連)된 1건의 첩보(牒報)를 올렸다. 그것은 당시 청송부에서 만연한 조세 문란과 관련하여 당사자들에 대한 1차례 형...
1838년에 청송도호부사가 경상도관찰사 겸 도순찰사에게 올린 첩정. 1838년(헌종 4) 10월 20일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가 경상감사인 권돈인(權敦仁)에게 올린 2건의 첩정(牒呈)이다. 두 첩정은 군정의 문란과 향리들의 세금을 빼내어 누락한 것에 대한 보고 및 그들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19세기 초반 청송도호부에서 있었던 삼정(三政) 문란의 구체적 실상과 이를...
1841년 5월 20일에 교체된 전임 청송도호부사 김진화의 해유문서. 1841년(헌종 7) 8월부터 1842년 4월까지 전임 청송도호부사 김진화에 대한 해유(解由) 과정을 알려주는 문서이다. 이를 보면 신임 청송도호부사 이병두는 부임 후 전임 청송도호부사의 치적과 근무 일수, 부내 각처의 물건 수량 등을 조사하였다. 그것을 1841년 8월 경상도관찰사 겸 순찰사인 홍재철(洪在喆)에...
1883년 5월 1일 진보향교 회중에서 안동의 임천서당으로 보낸 통문. 1883년 5월 1일 진보향교 회중에서는 안동 임천서당으로 문의한 영양 남경대(攬景臺) 중건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진보는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가 우거하던 고을이며, 남경대 역시 권태시가 학업을 수행하던 곳이라는 인연이 있었다. 또한 남경대를 수리하기 위한 계(稧)를...
조선 전기 청송부 안덕현의 권명리가 자식 8남매에게 노비를 나누어 준 문서.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권명리(權明利) 집안은 경상도 안동 동부 용흥리에 세거해 왔다. 그러다 1384년(고려 우왕 10)에 난을 피하여 경상도 청송의 안덕으로 처음 이주해 온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이 분급문기에 따르면 권명리는 영일정씨(迎日鄭氏)와 혼인하여 9남매를 두었는데,...
1838년 10월 20일 청송도호부사가 장차에게 군납전을 훔친 안동의 배씨를 잡아오라고 내린 차사첩. 1838년(헌종 4) 10월 청송도호부사 김진화(金鎭華)는 금위영과 어영청에 상납하는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이 배가(裵哥)가 그것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장차(將差)를 급히 보내어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는데 이 차사첩이 그것이다. 청송도호부에서 금위영과 어영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