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남병인(南秉仁)[1817~1874]은 퇴계학파를 계승하였으며 청송사림 학풍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노산문집』이 전한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언(彜彦), 호는 노산(老山). 고조할아버지는 남재흥(南再興), 증조할아버지는 남창빈(南昌彬), 할아버지는 남시우(南時遇), 아버지는 남계운(南繼運), 어머니는 최광수(崔光洙)의 딸...
신라 말 고려 초 보성부[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서 활동한 지방 호족. 선필(善弼)[?~?]은 신라의 지방 호족으로 고려가 신라와 통교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고려에 귀부 후에는 경순왕이 왕건을 경주로 초대하였을 때 선발대로 경주에 입성하여 경순왕을 문안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성은 최씨(崔氏)로 알려져 있다. 선필은 원래 경주최씨 6두품 출신...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관(姓貫)의 연원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城主)·장군(將軍)·촌주(村主)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1392년 조선 건국부터 1895년 갑오개혁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청송 지역은 고려 전기 이후 조선 전기까지 독자적인 군현(郡縣)을 구축하지 못하고 지역의 이합(離合)이 빈번한 상태에 있었다. 1423년(세종 5) 청부현(靑鳧縣)과 송생현(松生縣)을 합쳐 새로이 청송군(靑松郡)이 되면서 이로부터 진보현(眞寶縣)과 함께 두 고을로 나뉘어 별개의 지방행정단위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