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
근대 개항기 청송 출신의 유생 만강 서석기의 유고집. 청송 출신의 유생이며,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의 문인 서석기(徐錫琦)[1869~1924]의 미간행 유고이다. 서석기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도언(道彦) 또는 재진(宰眞)이며, 호는 만강(晩江)이다. 1869년 3월 15일 청송군 파천면 이사리[현 덕천 3리]에서 아버지 서득곤(徐得坤)과 어머니...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해 대한민국 전역에서 펼쳐진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맺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전개되었다. 6.25전쟁은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민족 간 전쟁이었다. 또한...
-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靑松義陣), 의성의진(義城義陣), 이천의진(利川義陣)이 연합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관군과 벌인 전투.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 의성의진, 이천의진이 연합하여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고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관군과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의성연합의진은 관군 10여 명을 사살하는 등 크게 이겼다....
-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가톨릭을 구교(舊敎)라고 하는 데 대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일컫는 말로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1885년(고종 22)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1859~1916] 목사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개일교회는 1918년 청송군 현동면에 최초로 설립된 교회이다. 청송군 현동면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개일교회는 1918년 11월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의 개일교회는 신도들에 의해 교회의 모체가 되는 예배 모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고려 초 청송 지역에는 보성부(甫城府)가 설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 공통으로 표현하기를 보성부는 명주관내(溟州管內) 야성군(野城郡)의 영현(領縣)인 진안현(眞安縣)과 상주관내(尙州管內) 문소군(聞韶郡)의 영현인 진보현(眞寶縣)을 합친 것이라 하였다. 진보성(眞寶城)은 진보현이며, 재암성(載巖城)은 진보현과 인접한 진안현으로...
-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권회복운동은 의병 전쟁과 계몽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청송 지역에서는 계몽운동 단체의 결성은 없었다. 서울에서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대한국민교육회]가 결성된 이래 1906년 5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1907년 11월 대한협회(大韓協會), 1908년 3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와 같은...
-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정치, 사회경제적 상황.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의 당면한 과제는 정부 수립이었다. 광복 직후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국의 도·군·면 단위에는 지부가 결성되었다. 청송 지역에서도 건국준비위원회 각 단위의 지부가 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상으로...
-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을 타도하기 위한 의병들의 창의가 일어났다. 청송 지역에서도 의진들이 결성되어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과 진보의진,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참여한 청송 출신의 의병 및 1908년 2월경부터 청송 지역에서 의병장 서종락(徐鍾洛)이 지휘하던 청송 동부진과 의병장 남석구(南...
-
윤자영(尹滋瑛)[1894~1938]은 청송이 낳은 걸출한 항일독립운동가이면서 공산당 조직에 몸담고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에 헌신한 혁명가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겪고 나온 후 청년운동에 진력하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에 가입하고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의열단(義烈團)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일시 가담하였고, 청년동맹회...
-
일제강점기 청송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 권영만(權寧萬)[1877~1950]은 일찍이 의병에 참여하였고, 1915년 음력 1월 결성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후원하는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주비단(籌備團)의 결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임시정부의 주비...
-
일제강점기 및 현대 청송 출신의 행정가. 김만천(金萬千)[1894~1975]은 일찍이 서울에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를 졸업하고 면서기, 일제 경찰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 1927년 이후 안덕면 면장으로 근무하며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신국가 건설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의 발전...
-
청송 출신 교육자이자 정치인. 김봉조(金鳳祚)[1905~1983]는 경상북도 청송군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이다. 제헌국회의원 및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字)는 치훈(致勳), 호는 송강(松崗).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의 후손이다. 김봉조는 청송 화목공립보통학교, 대구 계성중학교, 평양 숭실전문학교 농과(農科),...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인(南錫仁)[1878~190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였고, 1906년에는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팔(禹八), 이명은 남우팔(南又八). 1878년(고종 18)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도평리(道坪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의병이 전국적으로...
-
1915년 7월 대구에서 결성되고 경상북도 청송 출신 권영만(權寧萬)이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1910년대 민족운동을 대표하는 비밀결사 단체로 군자금 모집과 관공서 습격 및 친일 부호 처단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청송 출신으로는 권영만이 본부 요원으로서 경주의 세금 우편마차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광복회의 창립 목적은 조직...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모계리에 있는 대한예수장로회 경안노회 소속의 교회. 현서면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1916년에 설립되었다. 도동교회는 1916년 3월 1일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의 도동교회는 신도들에 의해 교회의 모체가 되는 예배 모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를 모체로 1920년 대구 선교지부의 중...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청송성당 소속의 공소. 도평공소는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안동교구 소속의 성당으로 1965년에 설립되었다. 청송 외곽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인간의 죄를 속죄하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본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추봉악[말지나] 자매가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滿洲)로 망명한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인물들의 활동. 만주 망명은 일제 침략에 의한 민족 수난기에 만주 지역으로 나가 구국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 출신 인물로는 박영산(朴榮山)과 남우락(南佑洛)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만주는 압록강(鴨綠江) 및 두만강(豆滿江)을 경계로 중국 동북 지방의 랴오닝성[遼寧省], 지...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민인호(閔仁鎬)[1854~1925]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척후장(斥候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일(文一), 호는 낙산(樂山). 1854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민치벽(閔致璧)과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세종 때 청송군 안덕현 현내면 당저(棠...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무여(武汝). 1927년 8월 2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828번지에서 아버지 박해진(朴海振)과 어머니 김시목(金時睦)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박동열(朴東烈)[1927~2008]은 1935년 4월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의 임하공립보통학교(臨河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춘식(朴春植)[1928~1987]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농림학교 제10기 재학 중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박춘식은 1928년 1월 16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농림학교 제10기 학생으로 입학하여 1944년 10월 말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에 있는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지. 백자리 순교지는 신유박해 때 다른 지역 신자들이 피난해 와서 정착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초기 천주교 신자의 순교 유적지 중 하나이다. 모래실 순교지라고도 한다. 백자리 순교지가 있는 모래실은 원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서울과 충청도에서 많은 신자가 피난을 와서 신자들끼리...
-
1950년 6.25전쟁 중 경상북도 청송군 보현산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과 북한군 간의 전투. 보현산(普賢山)[1,124m]은 청송군 현서면과 영천군 화북면의 경계에 있는 울창한 삼림의 높고 험준한 산이다. 보현산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좌익 무장 유격대[빨치산]가 근거지를 두고 활발히 활동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49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
경상북도 청송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족 종교 성격의 신흥 종교 단체인 성덕교의 교화원. 성덕도는 김옥재가 1952년 5월 대구에서 창시한 민족 종교이다. 인간의 천성을 회복하여 도덕 사회를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창시되었으며, 천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성 반성’을 실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사상인 유·불·선(儒佛仙)을 독립된 별개의 사상...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있는 현대의 사당. 세덕사(世德祠)는 1980년에 건립한 청송읍 송생리에 세거(世居)하는 평해황씨(平海黃氏) 가문의 사당이다. 세덕사를 가려면, 청송읍사무소에서 중앙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40m 이동한 후, 사거리에서 ‘주왕산·대구·포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청운삼거리까지 약 4.4㎞를 이동한 후, 청운삼거리에서 ‘...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있는 개항기의 사당. 송벽사(松碧祠)는 황학(黃㶅)[1758~1804]을 배향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황학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학중(學中), 호는 만취동(晩翠洞)이다. 황학은 청송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로 일생을 마쳤다. 시문집으로 『만취동일고(晩醉洞逸稿)』가 있다. 송벽사를 가...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송(靑松). 창씨명은 청전훈(靑田勳). 192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상만(沈相万)과 어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6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헌춘(金憲春)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1942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의 파천국민학교(巴川國民學校)를 졸업하고, 1942년 4...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항일 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가 일으킨 항일운동.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는 1933년 4월에 설립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유일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하고 전쟁에 동원될 군인을 양성...
-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언론과 출판 활동. 청송 지역의 언론 매체로는 지역의 현황을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청송영양신문』과 청송인터넷방송이 있다. 전통 시대 청송군 지역의 출판 활동은 지역 유림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지금은 관공서를 중심으로 각종 소식지나 문화 관련 잡지가 출판되고 있다. 청송 지역 자체 언론으로는 2013년 창간한 『청송영...
-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청송군에는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이 발견되었기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고구려의 영역이었으며, 이 시기 고분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신라 계열이다. 통일신라시대 칠파화현(七巴火縣)은 진보현(眞寶縣), 조람현(助攬顯)은 진안현(眞安縣), 청기현(靑己縣)은 적선현(積善縣), 이화혜현(伊火兮縣)...
-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에는 예로부터 약수로 널리 알려진 달기약수탕이 있다. 달기약수는 조선 고종 때 금부도사를 지냈던 청송의진의 우익장 권성하(權成夏)가 발견하였다. 권성하가 부곡리에 터를 잡고 거주할 때 수로 공사를 하면서 바위틈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달기약수는 철분이 함유된 탄산수인데, 지하에 스며든 빗물이 마그마에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탄산수가 되어 지...
-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청송백자는 해주백자, 회령자기, 양구백자와 함께 조선시대 4대 지방요(地方窯) 중 하나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문경사기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며 활발히 생산되었다. 일본으로까지 유명세를 떨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청송백자, 그 500년의 역사 속을 들여다보았다. 청송 지역의 가마터 지표조사 결과 16세기부터 백자의 제작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창씨명은 송강동행(松岡東幸). 1927년 11월 20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면 월막동에서 아버지 윤자기(尹滋琦)와 어머니 영해박씨(寧海朴氏) 박근이(朴根伊)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버지 윤자영(尹滋瑛)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지도부 일원이었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滿洲總局)과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윤효업(尹孝業)[1849~1901]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하면서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와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에 파견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원(百源). 1849년 8월 22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234에서 아버지 윤종칠(尹宗七)과 어머니 송생윤씨(松生尹氏...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세기(李世紀)[1882~1911]는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1906년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였으며,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잡힌 뒤부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909년 7월 일본군에게 잡혀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1년...
-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의백(宜伯), 호는 계변(溪邊). 아버지는 강예습독관(講隷習讀官)을 지낸 이영무(李英茂)이다. 형 이응인(李應仁)이 무과 급제 후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응의(李應義)[1569~?]는 경상도 진보현 상리(上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거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가담하...
-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의 공포에 이어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 관제(官制)가 실시되었다.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였던 청송 지역은 1895년 23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안동부(安東府) 청송군(靑松郡)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道制)에 따라 경상북...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임용상(林龍相)[1877~1954]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합류하여 활동하다가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이후 청도, 청송,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잡혀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출옥 후 의열단(義烈團)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광규(趙光奎)[1851~1927]는 1896년 3월 청송의진의 참모로 선임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명서(明瑞), 호는 간은(磵隱). 1851년 9월 5일 청송군 청송면 송생리에서 아버지 조성종(趙性宗)과 어머니 전의이씨(全義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질이 총명하여 재주와 학식으로 문명을 떨쳤다. 정절공(貞節公...
-
1920년부터 1922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군자금 모집 활동. 중국 만주(滿洲) 서간도(西間島)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고자 1920년 9월경 경상북도 김천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이 1922년 12월 일제 경찰에 발각될 때까지 경상북도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는데, 그...
-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초월적 존재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신앙 행위의 총칭.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이나 유물, 또는 관습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청송군에서의 종교는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의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부족국가시대에는 주술사인 샤먼을 통한 토속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이후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외래 종교인 불교와 유교가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지역민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 동서울 방면의 고속버스, 4곳 방면의 시외버스, 11곳 방면의 시내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진보시외버스터미널은 진보면사무소 정문에서 진안동2길을 따라 약 72m 직진한 뒤, 우회전하고 나서 진보로를 따라 약 190m 이동...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생활 체육 공원. 청송군생활체육공원은 지역 내 다양한 체육대회 개최 및 주민들의 체육 생활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7년 12월에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설립된 공원이다. 청송군생활체육공원은 8,000여 명의 진보면민과 청송교도소 등 각급 기관 단체에 체육 공간을 제공하고,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하기 위해...
-
경상북도 청송군의 체육 활동, 체육 대회 및 시설을 담당하는 기관. 청송군체육회는 2016년 기존의 청송군체육회와 청송군생활체육회가 통합되어 설립되었다. 모든 군민에게 생활 체육의 활동 기회를 마련해 주고, 나아가서 군민의 체력 증진과 지역 주민의 화합 및 동호인 활성화로 체육 저변 확대를 도모하여 건전하고 활기찬 사회 기반 조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
-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격년마다 10월에 개최하는 전통문화 축제. 청송문화제는 청송군 지역 주민들의 화합과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격년제로 10월에 청송문화원이 주관하여 개최하는 행사이다. 1981년 5월 16일에 창립된 송심회가 그해 11월 14일 제1회 송심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매년 송심회에서 청송문화제를 개최하다가 1986년 12월 23일에 청...
-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 동호인 단체. 청송사진연구회는 청송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 동호회로 2009년에 설립되었다. 회원들의 사진 촬영 활동 외에도 청송군 명승지, 장수 사진, 다문화 가정 등을 대상으로 한 촬영 활동도 함께 전개하고 있다. 청송군 내 사진 동호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역 사회의 문화 창달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설립...
-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영덕에 파견한 의병 부대. 청송의진은 창의(倡義) 이후 흥해, 영덕(盈德)[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과 척후(斥候)를 파견하거나 사통(私通)을 주고받으며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 주둔 관군의 출병에 위협을 받고 있던 영덕의진(盈德義陣)의 요청으로 군사를 파견하여 출진소(出陣所)를 설치하고 후원하였다....
-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는 신지(申祉)[1424~1517]가 청송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안덕면 복리, 진보면 합강리, 파천면 중평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평산신씨의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남도 곡성 사람으로 배현경(裴玄慶)·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과 더불...
-
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았지만, 곧바로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하지는 못하였다. 광복 직후 38도선을 경계로 이남 지역에는 미군, 이북 지역에는 소련군이 각각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한반도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함으로써 첨예한 이념 대결의 장이 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백정 출신의 주도로 전개된 사회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가 조직되어 1935년 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12년간 전개된 백정(白丁)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이다. 백정은 전통 사회에서 최하층 천민이었다.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백정들에 대한 사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