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초등학교
-
경상북도 청송군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양식의 주택. 고택은 옛 조상들이 거주하던 오래된 집을 의미한다. 청송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고택은 주로 청송군 파천면에 있으며, 덕천리 하덕천마을과 중평리 중평마을에 다수 보존되어 있다. 덕천리의 고택들은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건립되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50호인 청송 송소 고택은 조선시대 부잣집의 전형을 잘 간...
-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은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와 역사 및 시설. 청송군의 교육기관으로는 조선시대에 청송향교(靑松鄕敎)와 진보향교(眞寶鄕敎)를 비롯하여 봉람서원(鳳覽書院), 병암서원(屛巖書院), 송학서원(松鶴書院), 사양서원(泗陽書院), 백호서당(栢湖書堂), 만취서당(晩翠書堂), 부강서당(鳧江書堂)...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설립된 신교육에 관련된 조직이나 단체.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교육은 유교 교육이었다. 1876년(고종 13)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의해 개항(開港)과 함께 근대 서구 문물을 수용하면서 이를 교육에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을 신교육운동이라 하는데, 188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된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89...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당리는 안덕면의 중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명당1리, 명당2리, 명당3리 등 세 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장터, 쇠진, 안마, 노하, 당밑, 명당곡, 댕댕이 등이 있다. 풍수지리상의 명당(明堂)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송군 현내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현내면 명...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유적. 명당리 고분군(明堂里古墳群)은 명당리 일대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분포하는 2개의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명당리 고분군1[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산41|명당리 산42]은 안덕초등학교 서쪽 구릉 가운데 곡간부를 끼고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높이 290~330m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분포하고...
-
경상북도 청송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안덕면은 청송군의 서부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부남면, 남동쪽으로 현동면, 남서쪽으로 현서면, 북서쪽으로는 안동시 길안면, 북쪽으로 파천면과 접한다. 명당리를 비롯한 12개의 법정리와 21개 행정리로 구성되고 있다. 안덕면을 흐르는 길안천(吉安川)과 남부에 있는 마을 덕재·덕성에서 한 글자씩 따서 안덕(安德)이...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안덕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라를 사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충효인]’, ‘새롭게 생각하며 탐구하는 어린이[창의인]’, ‘소질 계발로 꿈을 가꾸는 어린이[도덕인]’,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이다. 교훈은 ‘꿈, 사랑, 정직’이다. 안덕초등학교는 1935년 4월 1일에 안덕공립보통학교...
-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의 공포에 이어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 관제(官制)가 실시되었다.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였던 청송 지역은 1895년 23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안동부(安東府) 청송군(靑松郡)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道制)에 따라 경상북...
-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는 갑오개혁(甲午改革)[1894~1896] 때 설립된 한성사범학교 부속 소학교가 그 시작이다. 1895년 8월 1일에 ‘소학교령’이 시행되면서 한성(漢城)에 8개의 관립 소학교를 비롯하여 각 도에 약 100여 개의 공립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에 청송군에서는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으로 1909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명당리에 있는 함안조씨 방호공파 종택은 1659년(효종 10)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건립한 고택이다. 함안조씨 방호공파 파조(派祖)인 조준도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로 정묘호란 때 창의사(倡義使)로 활동하였으며, 관직은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