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권업모범장의 출장소. 권업모범장은 일제 통감부가 일본식 농법을 한국에 이식 및 보급하여 한국의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자 설치한 농사 시험 기관이다. 통감부는 1906년 4월 27일 「통감부권업모범장관제」[칙령 제69호]를 발포하고 권업모범장을 전국적으로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1906년 6월 15일 경기도 수원에 설치한 권업모범장을 시작으로 1908년...
-
1876년 개항에서 1945년 광복까지 대구의 역사. 대구는 개항 이후 전통적 조선 사회에서 시민사회에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여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대구 사회는 개항 이후 서구 근대가 파급되는 과정에서 전통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
1876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 개항기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는 자주적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변혁운동은 1910년 한일병합을 계기로 식민지 민족운동으로 전환되었다. 근대 시기 동구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립하지 않았다.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의 지방행정구역은 많은 변동을 거친다. 즉 달성군에 속하기도 하고 현...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김광제(金光濟)[1866~1920]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영화인. 김도산(金陶山)[1891~1922]은 1891년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영근(永根)이다. 김도산은 신파극의 선구자로 불리는 임성구와 함께 1911년 대한민국 최초의 신파 극단 혁신단을 창립하였다. 김도산은 혁신단에서 「불효천벌」, 「육혈포강도」 등을 공연하였다. 특히 김도산이 공연한 「육혈포강도」는 기록상 대구 연극 공...
-
근대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돈부(敦夫), 호는 만송(晩松). 10대조 김치동(金致東)이 임진왜란을 피해 대구도호부 하남면(河南面)[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 마천산(馬川山) 아래에 처음 정착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광호(金光浩), 할아버지는 김지인(金至仁)이다. 아버지는 숭선전 참봉(崇善殿參奉)을 지낸 김달민(金達玟), 어머니는 엄덕호(嚴德浩)의...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남리에 있는 근대의 절터. 남리 절터는 문헌 기록이나 유물 자료, 구전 자료 등 절터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사찰 이름이나 개창 시기, 폐사 시기 등 어떤 상황도 알 수 없다. 다만 출토 유물과 유적의 형태를 보아 과거에 절터였던 것은 확실하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소액의 농업 자금을 제공한 지방금융조합. 1907년 5월 30일에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설립에 관한 건」의 공포에 따라 지방 소농민의 금융 이용을 돕고 농업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금융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방침에 따라 1908년에 달성금융조합이 설립되어 농민, 중소 상공인, 시민을 조합원으로 삼아 소액의 농업 자금을 제공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치안 행정기관.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는 일제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일원의 치안 행정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대구일본거류민단의 소방 단체. 대구소방조(大邱消防組)는 대구일본거류민단이 거류지(居留地)의 화재 방지 및 진압을 위하여 조직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에 있었던 1900년대 건립된 달성서씨 문중의 재실. 대구 숙천동 원모재는 조선 후기 대구의 유학자인 서사선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달성서씨 인물인 서사선은 조선 후기 대구의 유학자이다. 서사선은 자가 정보(精甫), 호가 동고(東皐)이다. 사촌형인 낙재 서사원과 한강 정구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유일(遺逸)로 예빈시참봉에 올랐다. 서사선...
-
개항기 대구에 일제가 어음의 유통 저지 목적으로 설치한 금융기관. 일제는 1905년 화폐 정리 사업 직후 금융제도를 은행의 신설보다는 창고 및 어음 지급보증 등 전통적인 금융 기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일제는 1905년 9월 「수형조합 조례」 및 「약속수형 조례」를 공포하고, 한국의 전래 어음의 유통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어음조합을 설치하였다. 대구어음조합[이칭 대구수형조...
-
개항기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대구 방문 기념으로 내린 은사금과 지역 인사의 기부금으로 대구 공중의 이용 장소로 지은 건물. 대구 은사관은 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남순(南巡)할 때 대구를 방문하여 대한협회 대구지회에 하사한 2,000원을 기초로 지역 인사의 기부를 받아 건립한 건물이었다. 대구 은사관은 대한협회 대구지회의 회관으로 사용되다 대한협회 대구지회가 해산된 뒤...
-
1907년 4월 대구에 설치된 임업 관련기관. 대한제국 정부는 1905년 전국에 걸쳐 산림조사를 하였다. 산림 정비가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하천 정비가 이루어지고, 도로 개보수와 광업·수산업의 발달이 쉬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6년 일본의 산림 전문가를 초빙하여 임업 관련 업무를 맡겼다. 1907년에는 수원, 평양, 대구 3곳에 수묘양성소(樹苗養成所)를 설치하...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 있는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건립한 경상북도 최초의 기독교회. 대구제일교회는 1933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에서 세운 경상북도 최초의 기독교 교회이다. 처음에는 남성정교회로 설립되었으며 교세가 확장되어 ‘제일교회’로 개명된 종교시설이다....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기상 및 기후 관측 기관. 대구측후소(大邱測候所)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기상 및 기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
근대 유학자인 채병달이 대구광역시 화암산에 올라 연경서원의 유허지를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연경화암(登硏經畫巖)」의 저자 채병달(蔡炳達)[1879~195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중삼(仲三)이고, 호는 우당(愚堂)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美垈洞) 출신이며,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문인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며,...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두한필을 기리는 정려각. 두한필(杜漢協)은 순조 23년(1823)에 태어나 고종 30년(1893)에 세상을 떠났다. 두한필의 자는 영여(永汝), 호는 소남(小植), 본관은 두릉(杜陵)이다....
-
근대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휘(慶輝), 호는 후은(後隱).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문달규이다. 부인은 현풍 곽씨(玄風郭氏)와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며, 둘째 아들은 독립운동가인 문영박(文永樸)이다. 문영박은 임시 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태(朴炳兌)[?~?]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근대 달성 출신의 문인·학자. 본관은 밀양. 자는 한구(漢九), 호는 농은(農隱). 대제학 밀천군 박대양(朴大陽)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박효달(朴孝達)이다. 아들 겸수(兼搜) 박승익(朴承翼)은 타고난 성품이 올바르고 엄격하였으며, 예와 법률을 실천으로 보여 주는 가르침을 행하였다. 하북면(河北面)의 유방 처사(流芳處士)라고 칭하였으며, 『겸수사집(兼搜私集)』이 전한다....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계몽 운동가·관료. 박해령(朴海齡)[1857∼1920]은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2월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달성 광문사] 문회가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명칭을 대동 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꿀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자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동 광문회 회장을 비롯...
-
근대 달성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경수(慶秀), 호는 소계(小溪). 증조할아버지는 우우당(友于堂) 석구담(石龜潭), 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석철한(石轍漢)이다. 아버지는 지지당(知止堂) 석치규(石致奎),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
근대 개항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젊은 시절의 벗 윤지암을 우연히 만나 지어 준 한시. 「수윤지암(酬尹止巖)」은 이일우(李一雨)[1870~1936]가 젊은 시절의 벗 윤지암을 우연히 만나 지어 준 한시이다. 저자 이일우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신태휴(申泰休)[?~1932]는 개항기 대구에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이후 평안북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설립된 제직 실습 중심의 대구전습소 제조 공장. 일제는 대구·경북 지역 직물업을 독점·수탁하기 위하여 1906년에 대구산업전습소를 설치하였다. 여기에 전습 시설을 갖추고 족답기를 처음 도입하면서 경북 섬유공업 기술훈련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실습생으로 국비 훈련을 받았던 15명이 훗날 대구의 근대적 직물공업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인 신성섭이 대구 지역 명승지를 선별하여 경치를 읊은 한시. 「영대구팔경(詠大邱八景)」의 저자 신성섭(申聖燮)[1882~1959]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명숙(明淑)이고, 호는 학암(鶴菴)이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927]의 후손이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1869~1943]의 문하에서 학업을 익혔다. 저서로는 『학암집(鶴菴集)』이...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출신 독립운동가. 유근성(柳根成)[1884~1945]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 창사리[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유성대(柳成大)이다. 유근성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에서 흠치교[증산교]의 6인조에 입교하여 1924년경에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흠치교 교주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에...
-
대구 출신의 계몽운동가이자 친일 관료. 윤필오(尹弼五)[1860~1924]는 개항기 경상북도관찰부 주사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초반까지 영양군수·예안군수·비안군수를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제단 결성에 참여하고 대구교풍회(大邱矯風會) 회장을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친일파. 이근호(李根澔)[1861~1923]는 1861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자는 문옥(文玉), 호는 송은(松隱), 규재(奎齋)이다. 이근호의 동생은 이근택(李根澤), 이근상(李根湘)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병운(李柄運)[1858~193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덕칠(德七), 호는 긍재(兢齋)이다. 할아버지는 이석린(李錫麟)이고, 아버지는 이억상(李億祥)이다. 부인은 박해경(朴海暻)의 딸 순천박씨(順天朴氏)이다....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경제인. 이석진(李錫鎭)[1870~1932]은 한말·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했던 경제인이다. 카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쓴 『대구이야기(大邱物語)』에 의하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석진은 ‘풍채가 당당하고 성격이 온후하며 독실한 군자형’이었다고 한다. 카와이 아사오는 일찍이 대구에 들어와 『조선민보(朝鮮民報)』를 발행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자 경제인. 이종면(李宗勉)[1870~1932]은 대구에서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주식회사 대동사(大東社)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호는 오정(悟庭)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이충구(李忠九)[?~?]는 대한제국기 경무사, 중추원찬의, 경상북도관찰사를 역임한 관료이다. 1907년 3월 5일 경상북도관찰사[칙임관 3등]에 임명되어 대구에 부임하였다....
-
1910년 대구 지역에 설립된 근대식 의료기관. 자혜의원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관립 병원이다. 1909년 2월 청주와 전주를 시작으로 1910년 1월 함흥에 설립되었고, 1910년 9월에는 대구를 비롯하여 수원, 공주, 평양, 춘천, 진주, 경성, 의주, 해주, 광주 등으로 확대하여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전국 46곳에 자혜의원이 설립되었다....
-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에서 있던 출판사.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는 1907년 무렵부터 1930년대 초까지 대구 지역에서 목판 방각본(坊刻本) 및 납활자 서적을 출간하였던 출판사이다. 재전당서포의 발행인은 김기홍(金璂鴻)이었고, 인쇄인은 김기홍의 아들인 김경발과 이재수, 신효연 등이 있었다. 재전당서포는 대구 동상면 후동[현재 중구 포정동]에 있던 출판사이며 대구 광문...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일제강점기 친일 금융인. 정재학(鄭在學)[1858~1940]은 1858년 6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개항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의 친일 행보를 보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 자본가. 정해붕(鄭海鵬)[1871~1950]은 1871년 11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관료를 지냈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제인으로 활동하여 자제단 결성에 참여하고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보를 이어 갔다....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 학자. 채성원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규(士奎), 호는 공산(公山)이다. 시조는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이며, 중시조는 고려 말에 호조 전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채귀하(蔡貴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영국(蔡榮國), 할아버지는 채범곤(蔡範坤), 부친은 채세동(蔡世東),...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으로 활동한 유학자. 채헌식의 자는 정여(定汝), 호는 후담(後潭),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채농(蔡瀧)이고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추교정(秋敎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연극인. 홍해성(洪海星)[1893~1957]은 1894년 10월 1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홍주식(洪柱植)이다....
-
근대 대구 출신의 학자인 채성원이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화암경차노선생운(畵巖敬次老先生韻)」은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저자 채성원(蔡星源)[1870~193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사규(士奎), 호는 공산(公山)이다. 아버지는 채세동(蔡世東)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우찬(洪禹燦)...
-
일제강점기 유학자인 우하구가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의 화암과 연경서원을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 경차퇴도선생운(畫巖 敬次退陶先生韻)」의 저자 우하구(禹夏九)[1871~1948]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영서(永敍)이며, 호는 백괴(百愧)이다. 대구부 월배면 상인리(上仁里)[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우동(禹友東)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