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 후반 대구에서 「국가보안법」 제3차 개정안에 반대하며 벌인 민주주의 운동. 이승만 정권 말기 여당인 자유당은 1958년 8월 11일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였다. 야당은 강력히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자 자유당은 1958년 12월 24일 300명의 무장 경관을 동원하여 저항하는 야당 의원들을 국회에서 폭력으로 몰아내고 대공 사...
-
1913년 3월 대구에서 신흥 지식인들이 독립을 전망하며 결성한 사회단체. 강유원간친회는 1913년 3월 홍주일이 윤창기 등과 함께 해외 유학생 출신 인물과 국내 학생과의 규합을 위하여 결성한 사회단체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관제(金觀濟)[1886~1951]는 1886년 6월 18일 지금의 경산남도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에서 태어났다.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민족계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대구에 한약방을 열고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건국동맹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김광제(金光濟)[1866~1920]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병순(金炳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석빈(金錫斌)[?~?]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열(金在烈)[1884~1948]은 1884년 5월 20일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호는 백농(栢儂)이다....
-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7·29선거는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이다. 4·19혁명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내각책임제 개헌을 통하여 민의원과 참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였다....
-
1925년 대구의 유지들이 농촌 계발을 위하여 설립한 농업 단체. 대구농촌사(大邱農村社)는 1925년 7월 대구의 서상일(徐相日), 서만달(徐萬達), 정운해(鄭雲海) 등이 몰락하여 가는 농촌 상황을 조사 연구하여 농업을 개량하고 발달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농업 단체였다....
-
1923년 대구 지역에서 전개된 경제 자립 운동.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났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은 일제 식민지 경제구조 아래에서 민족경제가 크게 위축되어 조선인의 경제생활에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조선 민족의 경제자립을 위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192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23년 1월 9일에는 서울에서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준비위원...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조선총독부 인가의 경상북도 지역 미곡거래소. 대구미곡거래소는 경상북도 지역의 쌀 실물거래 및 선물거래를 할 수 있도록 설립된 미곡 유통기구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 거주하던 미곡상들의 동업조합. 대구미곡상조합은 대구에 거주하는 미곡상들이 친목도모, 이윤추구 등을 위하여 만든 동업조합이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조선인 상공업의 진흥을 목적으로 결성된 상공인 단체. 대구상공협회(大邱商工協會)는 대구의 조선인 상공업자들이 일본 상공인들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는 것에 대항하여 조선인 상공업의 발전과 단결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의 미곡상들이 미곡취인소 설립을 위하여 개최한 시민대회. 대구시민대회(大邱市民大會)는 대구의 미곡상들이 1923년 2월 22일 결성한 ‘취인소설립기성동맹회(取引所設立旣成同盟會)’가 1923년 3월 7일 대구좌(大邱座)에서 미곡취인소 설립인가 획득을 목적으로 개최한 대회였다....
-
1948년 5월 10일 대구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실시된 최초의 근대 선거.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 통일 근대 국민 국가의 건설을 이루기 위한 국제적 절차로서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국에 의하여 유엔[UN]으로 이관된 뒤 단독선거[단선]에 의한 단독정부[단정] 수립이 가시화되었다.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총...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대구 주조업자들의 이익단체. 대구주조조합(大邱酒造組合)은 1916년 무렵 결성된 것으로 보이며, 조합원 자격의 변화로 1928년 8월 다시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대구주조조합이 처음 결성되었을 때는 소량의 술을 제조하여 파는 음식점들도 회원 자격이 주어졌으나 1928년 다시 결성된 대구주조조합의 회원 자격은 대량생산을 하는 양조업자에게만 주어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신사회 건설과 수양의 최고 기관을 표방하며 창립한 청년운동 단체. 대구청년회(大邱靑年會)는 1920년 1월 신학문을 수학한 신흥 청년 지식인층과 신흥 경제인 및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대구 최초의 청년운동 단체이다. 1920년대 전반에는 문화 운동의 최고 기관을 표방하였고, 1920년대 후반에는 청년운동의 전 조선적 운동으로의 전환을 표방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의 포목상들이 포목의 위탁판매를 위하여 결성한 이익단체. 대구 지역 포목상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대구포목상조합(大邱布木商組合)은 자금 융통 및 위탁판매를 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또한 조선인 포목 상권을 회복하고 확장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1952년 8월 5일 대구에서 실시하였던 정·부통령 선거.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의원들이 60% 이상 당선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의 간접선거에 의한 재선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대통령직선제를 위한 개헌을 시도하는 한편, 지지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임시 수도 부산에서 1951년 12월 17일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
1946년 대구에서 반탁운동을 위하여 결성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경북 조직.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大韓獨立促成國民會 慶尙北道支部)는 1946년 2월 이승만(李承晩)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로 발족한 것을 계기로 대구에서도 1946년 3월 조선독립경북촉진회와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경북...
-
1946년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대구 지역 조직. 1946년 2월 8일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탁치반대조선국민총동원위원회가 결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결성된 것을 계기로 대구에서도 1946년 3월에 조선독립경북촉진회와 탁치반대조선국민총동원위원회 경북본부가 합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가 발족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대구에서도 1946년 5월 17일에 대한독립...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성호(都性浩)[?~?]는 1902년부터 1906년 사이 경상북도관찰부 관할인 낙육재(樂育齋)에서 공부한 유생 출신이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정호(都正浩)[?~?]는 대한제국의 외획 제도로 운영된 경남봉쇄원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다....
-
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북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행정 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북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경상북도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경상북도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
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상북도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대구부 행정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상북도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구부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
1945년 11월 대구에 파견된 미군정청의 특사.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3일 서상일(徐相日)[1886~1962]과 최윤동(崔允東)[1897~1965] 두 사람을 대구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미군정청 특사는 1945년 11월 5일 경북군정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사의 임무에 대하여 밝혔다. 그 내용은 군정 당국의 방침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경북 도민의 요구와 희망 사항...
-
1945년 대구의 우익 정치세력이 조선독립경북촉진회를 강화하기 위하여 개최한 회의. 민족통일대표자회의(民族統一代表者會議)는 1945년 11월 20일 학생동맹경북본부, 영남민보단, 경북기독교노회, 대구치과의사회, 경북불교협회, 경북상공대책위원회, 경북불교부인회, 대구의생회, 대구영화협회 등 대구의 각 단체 대표자 6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회의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이자 서예가. 박기돈(朴基墩)[1873~1947]은 18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서예가이자 경제인으로서 활동하며 교육운동·사회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박민동(朴民東)[1874~?]은 1874년에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승동(朴承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정동(朴晶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상렴(裵相濂)[1892~?]은 1892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상연(裵相淵)[1889~?]은 188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재건 달성친목회와 관계를 맺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
1960년 6월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대중당의 경북 조직. 사회대중당경북도당(社會大衆黨慶北道黨)은 1960년 6월 15일 대구 구 국립극장에서 박기출·이동화와 대의원 825명 중 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결성 대회에서 이동화는 사회대중당을 “민주사회주의의 당이며, 노동자·농민·인텔리·중소 상공업자 등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독...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기하(徐基夏)[?~?]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병규(徐炳奎)[?~?]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봉기(徐鳳綺)[1847~?]는 18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한협회 대구지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대구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서상일(徐相日)[1886~1962]은 개항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몽운동, 비밀결사, 언론활동, 경제활동, 자치운동, 한국민주당 활동, 제헌국회 의원, 야당통합운동, 진보당과 사회대중당 및 혁신정당 활동 등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다양한 행적을 남긴 인물이다....
-
1950년대 대구 출신 서상일이 추진한 정치운동. 서상일은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 이후 민주국민당을 대신할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민주대동신당운동을 펼쳤다. ‘서상일의 민주대동신당운동론’의 핵심은 ‘민주·정의·반공산’에 있다. 서상일은 ‘민주·정의·반공산’ 기치 아래 민주대동의 범주를 비반동 민주 세력까지 포함하여 설정하였다. 즉, 자유당을 제외하고, 조봉암까지...
-
1950년대 중반 대구 출신 서상일이 제기한 한국의 정치 논리. 서상일은 자신의 정치노선이 민주사회주의임을 강조하였다. 민주사회주의는 1950년대 중반 한국 정치의 지향으로 일반화된 정치 논리였다. 하지만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는 논자마다 서로 달랐다. 서상일은 1914년 제2인터내셔널에 대하여 합법적 의회 투쟁에 기반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한국...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한(徐相漢)[1901~1967]은 1901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20년 영친왕 이은(李垠)의 혼례일에 폭탄 투척을 계획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흥균(徐興均)[?~?]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1950년대 야당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한국에서 대통령 선출을 위한 직접선거는 1952년에 이루어졌다. 그 뒤 1950년대에는 1956년, 1960년에 각각 선거가 있었다. 국회의원선거는 1948년, 1950년, 1954년, 1958년, 1960년에 치러졌다. 지방선거는 1954년, 1956년, 1960년에 시의원 선거, 1956년 1958년, 1960년 시장...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경동(禹涇東)[1876~1960]은 1876년 9월 2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우경동(禹經東)으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승기(禹升基)[1875~1948]는 1875년 4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찬기(禹瓚基)[1861~1921]는 1861년 9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호는 성암(誠菴)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유상보(柳尙輔)[?~?]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금연상채회(禁烟償債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윤영섭(尹瑛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창기(尹昌基)[1888~1927]는1888년 2월 1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 및 강유원간친회(講遊園懇親會) 등에 가입하여 항일 비밀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병두(李柄斗)[?~?]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 이선장(李善長)[1903~1985]는 1903년 10월 12일 지금이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서 태어났다. 신간회 대구지회에 가입하고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조선건국동맹 경북지부 결성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순상(李舜相)[1886~?]은 1886년 마산부 표정[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장우(李章雨)[1871~1944]는 1871년 9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하서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후 대구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친일반민족행위를 이어 갔다. 창씨명은 이와무라 쇼우[岩村章雨]이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이현주(李玄澍)[?~?]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고,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장상철(張相轍)[1870~1930]은 1870년 10월 17일 대구부 덕산정 131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금연상채회와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으나 이후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적을 이어 갔다....
-
1913년 1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달성친목회는 1909년 정운일·최병규·이근우 등이 친목을 도모하고 실업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결성한 계몽운동 단체였다. 달성친목회는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이후 달성친목회 회원 윤상태·서상일·이시영 등이 1913년 1 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시회(詩會)를...
-
일제강점기 재건 달성친목회 밀고인. 정진영(鄭震泳)은 1873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 대구로 이주하여 지금의 중구 남성로에서 약종상을 경영하던 중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였다. 1919년 중순 대구경찰서 형사 박준영(朴埈永)에게 재건 달성친목회를 밀고하였다. 정진영은 법정에서 자신이 밀고한 계기에 대하여 “많은 부호와 그 밖의 양민이 그들의 동지가...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석하(曺錫河)[1883~1955]는 1883년 2월 2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학단(學丹)이다....
-
1945년 11월 7일 대구 지역에서 발족한 우익 중심의 정치단체. 조선독립경북촉진회는 1945년 11월 7일 대구향교에서 여섯 개 정당 대표들이 모여 결성한 우익 중심의 정치단체이다. 1945년 10월 17일에 미군정이 건국준비 경북치안유지회를 해산시키면서부터 결성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때 우익은 1945년 10월 30일에 국민통일회로 집결되었다가 이튿날 11월 1일에 다시 경...
-
1923년 2월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대구 조직.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조선 통치 정책이 문화통치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화통치라는 것은 일제가 자신들의 악랄한 식민지 정책을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위장 수단일 뿐, 실질적으로는 탄압과 감시, 민족문화 말살, 경제적 수탈 강화를 위한 고도화된 식민 통치 방식이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문화운동의 중심 기관을 표방하며 설립된 사회운동단체. 조양동우회는 ‘생계(生計) 확립을 위하여 적극 투쟁함’, ‘생권(生權) 확보를 위하여 일치단결함’, ‘생영(生榮) 발양을 위하여 문화를 창조함’ 등의 강령 실행을 목적으로 삼았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대림(崔大林)[?~?]은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에서 활동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시교(崔時敎)는 1908년 대구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에 가입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최종륜(崔鍾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추교정(秋敎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다....
-
1914년 대구에서 서상일이 설립한 잡화 상회. 태궁상점은 근대적 이윤 추구를 위하여 설립된 잡화 상회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
1961년 2월 26일에 대구역 광장에서 통일사회당경북도당준비위원회가 개최한 강연회. 1961년 2월 1일에 통일사회당경북도당 결성준비대회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사회대중당 출신의 대구대학 교수 양호민과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 교수 홍형의를 비롯하여 사대당 출신 경북도의원 유성환과 최일 두 사람도 함께하였다. 통일사회당은 스스로 정당의 성격을 ‘민주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지향...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편동현(片東鉉)[1886-?]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
1946년 11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경상북도 지부. 한국민주당 경북지부(韓國民主黨慶北支部)는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
-
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지부. 한국민주당 대구지부(韓國民主黨 大邱支部)는 대구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
-
대구 출신의 정치가인 서상일이 1931년 3월에 완성한 조선 사회운동에 대한 방법론과 전망을 담은 책. 『합법운동과 비합법운동에 관한 사견』은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 정치가인 서상일(徐相日)[1887~1962]이 1931년 3월에 조선 사회운동에 대한 방법론과 전망에 대하여 쓴 책이다....
-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전개된 혁신당과 사회대중당과의 통합 기구. 혁신당·사회대중당통합준비위원회 경북위원회는 혁신당과 사회대중당 당의 통합 교섭을 추진할 목적으로 만든 기구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 홍주일(洪宙一)[1875~1927]은 187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호는 해동(海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