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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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恒春 |
영어공식명칭 | Lee Hangchun |
이칭/별칭 | 자구(子久),구계(龜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출생 시기/일시 | 17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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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71년![]() |
거주|이주지 | 이항춘 거주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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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강학지 | 이항춘 수학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 |
묘소|단소 | 이항춘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성 |
본관 | 영천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문인 학자.
이항춘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자구(子久), 호는 구계(龜溪)이며,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이극천(李極天),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정수기(鄭秀基)의 딸이다. 부인은 달성서씨(達城徐氏)로, 서선(徐渲)의 딸이다.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길룡(吉龍)·익룡(翼龍)이며, 딸은 권응진(權應軫)에게 시집갔다.
이항춘은 1702년(숙종 28)에 태어났다. 오도(吾道)[유학의 도]에 뜻을 두고 달성[지금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의 한천(寒泉)[한천서원]에 나아가 수학했다. 이항춘은 부모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잘 보내며 효를 극진하게 행하여 섭섭함이 없게 하는 것이 학문의 요체로 인식하고 이를 가학으로 삼았다. 궁벽한 곳에 몽희재(夢羲齋)를 지어 생활하였고, 만년에는 대암(臺巖)[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대암동]에 터를 마련하여 구계서당(龜溪書堂)을 세웠다. 1771(영조 47)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70세였다.
이항춘의 묘소는 수북면(守北面) 승현(蠅峴)[팔현, 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