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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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半夜月- 安心洞- 由來 |
영어공식명칭 | The Origin of the Banyawol and Ansim-d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반야월과 안심동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
김광순, 『한국구비문학』(국학자료원, 2001)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대구지명유래총람』(대구광역시,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인터뷰(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주민 이재원, 64세, 남, 1990. 5. 5.)
1) 반야월(半夜月)
후삼국시대 때 고려 왕건은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크게 패하고 도망을 갔다. 신기동 일대를 지나갈 때 날은 반야(半夜)[한밤중]였고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그래서 반야월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한편, 조선 숙종이 민정 순시와 대동법 시행을 확인하기 위해 현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돈지봉 아래 작은 고을에 들러 밤늦게까지 촌로[시골에 사는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한 촌로가 숙종에게 마을 이름을 붙여 달라고 부탁을 했고, 숙종은 밤하늘의 반달을 보고 반야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2) 안심(安心)
왕건이 파군재 부근에서 후백제군에게 크게 패한 뒤 환성산 줄기의 초례봉 쪽으로 피신해 도망을 갔다. 왕건은 도망을 가다가 날이 밝자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그 곳에서 안심(安心)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반야월과 안심동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후삼국시대 때 고려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패배해 후백제 견훤군에게 쫓겼던 사건에서 유래한 지명유래담과 숙종의 암행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