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영화공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50
한자 十月映畵工場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0월 1일연표보기 - 10월영화공장 창립
개칭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 - 10월영화공장에서 조선문화영화사로 개칭
성격 예술 단체

[정의]

1945년 10월 1일 창립되어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연극 단체.

[개설]

10월영화공장의 창립 위원으로는 김해성, 이우모, 최성각, 김원옥, 정선택, 김정두 등이 있다.

[설립 목적]

10월영화공장은 일본제국주의 영화 정책의 잔재를 청산하고 혁명적 근로대중을 계급적·문화적으로 계몽하고 선전할 무기로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즉, 대중의 계몽과 민중의 생활 향상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변천]

10월영화공장은 1945년 10월 1일 창립되었다. 10월영화공장은 1925년에 설립된 대구무대협회에서 1929년에 설립된 대구가두극장을 거쳐 대구 지역 영화·연극 운동의 맥을 이었다. 10월영화공장은 설립 1년 만에 조선문화영화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0월영화공장은 이동 극단을 조직하여 각 지역의 공장, 병원, 농촌 등을 순회하며 민중의 계몽에 앞장 섰다. 또 10월영화공장 부설 연기자 양성소를 발족함으로써 사회 건설의 예술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10월영화공장에서 제작한 「10월영화뉴스」는 노동자·농민 계층의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만들어졌으며, 노동자·농민 계층의 생활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10월 영화극장은 10월 항쟁 전후로 활동 양상이 달라졌는데, 뉴스 제작에서 문화영화 분야로 관심을 옮겨 집중하였다. 10월영화공장에서는 「고도경주」[문화], 「사(싸)우는 열차」[경제], 「전국럭비경기대회」[체육]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의의와 평가]

10월영화공장은 해방 후 국가 건설기에 민족·국가·민중·향토의 정체성을 심고, 정치·경제·문화 등의 담론을 전파한 매체로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특히 대구무대협회대구가두극장을 이어 대구의 문화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에서도 향토사적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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