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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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慶三 |
영어공식명칭 | Kim Gyeongs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5월 25일 - 김경삼 조선형평사 경북지사 설립 주도하고 지사장 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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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24년 - 김경삼 조선형평사 중앙집행위원 선임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사회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조선형평사 경북지사 지사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형평운동가.
[개설]
김경삼(金慶三)[?~?]은 1923년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 경북지사 설립을 주도하고 대구 지역의 형평운동(衡平運動)을 이끌었다.
[활동 사항]
김경삼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피혁상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진주에서 열린 ‘조선형평사 창립대회’에 참석하였으며, 5월 25일에는 대구에서 조선형평사 경북지사 설립을 주도하고 창립총회에서 지사장으로 선출되었다. 6월 10일에는 대구에서 조선형평사 경북지사 발회식이 개최됨으로써 경북 지역에서도 백정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형평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24년 6월 조선형평사 경북지사는 대구 교외의 고산골에서 50명의 사원이 참가한 가운데 조선형평사 경북지사의 설립 1주년 기념대회를 열고 회관 건축 문제와 도수장 관리권 확보 등을 주요 의제로 채택하였다.
이 무렵 조선형평사는 분열 양상을 보이는데, 이때 김경삼은 서울의 형평사혁신동맹을 지지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어 김경삼은 1924년 대전에서 개최된 형평통합대회의 사회를 맡았으며, 조선형평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통합대회 후 김경삼은 일본 수평사와의 상호 협력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선형평사를 일본 수평사에 합병하는 대가로 1만 원을 수수하였다는 오해를 받아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1925년 2월 김경삼은 대구에서 ‘조선형평사 경북지사 임시총회’를 개최하였다. 임시총회에서는 조선형평사 경북지사 회관 건립, 관공리의 형평사원 차별 대우 철폐, 형평청년회 조직, 형평강습원 설치, 반형평운동자 처치,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형평사원 처치 등이 결의되었다. 6월에는 대구노동회관에서 ‘조선형평사 경북지방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김경삼이 경과보고를 진행하였다. 6월의 조선형평사 경북지방대회에서는 차별에 관한 건, 도수(屠獸)에 관한 건, 건피장에 관한 건, 교육에 관한 건, 지사 위치에 관한 건 등이 결의되었다. 이어서 7월에도 조선형평사 경북지방대회를 개최하고 차별, 교육, 청년회 조직, 세금, 생산물 공동 수출 등에 관한 사안을 논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