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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94
한자 禹洪基
영어공식명칭 Woo Hong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세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경연표보기 - 우홍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우홍기 흥업단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1년 4월 - 우홍기 밀양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23년 10월 16일 - 우홍기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 처분으로 석방
출생지 고례리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경상북도 - 경상북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흥업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우홍기(禹洪基)[?~?]는 1881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한문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흥업단(興業團) 특파원 이만준(李萬俊)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에서 군정서 부속 독립운동 단체 흥업단이 결성되었다. 흥업단은 무장 독립전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20년 11월 단장 김호(金虎)[일명 김호익(金虎翼)]와 외교부장 김성규(金星奎)는 이만준에게 20만 원의 자금 조달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만준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한교공회(韓僑公會) 회장 손경헌(孫庚憲)으로부터 경상북도와 충청도 사정에 밝은 김인제(金仁濟)·최성기(崔聖基)·황문익(黃文益) 등 3명을 소개받은 뒤 관련 서류와 무기를 소지하고 1920년 말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만준 등은 대구와 밀양·양산 등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영남 지역 인사들을 대상으로 동지 포섭과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우홍기는 1921년 이만준과 손종헌(孫綜憲)의 권유로 흥업단에 가입하였고, 4월에 이만준 등과 함께 밀양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구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데 적극 협력하였다. 1922년 1월 하순에는 대구에 있던 양한위(梁漢緯)의 집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의 부호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계획을 협의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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