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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60
한자 韓圭錫
영어공식명칭 Han Gyuseok
이칭/별칭 백허(白虛)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연표보기 - 한규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월 - 한규석 대구청년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0년 5월 27일 - 한규석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부 발기회 참석
활동 시기/일시 1923년 6월 - 한규석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대구지방부 집행위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4년 4월 1일 - 한규석 배영학원 개원
몰년 시기/일시 1936년 6월 21일연표보기 - 한규석 사망
출생지 대명동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사합동맹 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개설]

한규석(韓圭錫)[1888-1936]은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구청년회 가입을 시작으로 청년운동·노동운동·교육운동·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백허(白虛)이다.

[활동 사항]

한규석은 1920년 1월에 결성된 대구청년회에 참가하였다. 대구청년회는 남선 개발과 사회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문화운동의 실행 기관을 전망하였고, 5월 문사극(文士劇)을 개최하고 다수의 기부금을 조성하였다. 한규석은 5월 27일 대구 은사공관에서 열린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부 발기회에 참석하여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1년 5월 29일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의 경주분회 창립총회에 김하정(金夏鼎)과 함께 대구지회 대표로 참석하였고, 6월 23일에는 경영난을 겪는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를 정상화하기 위한 후원회 조직에 참여하여 간사로 선임되었다. 8월에는 조선일보 경북지국의 총무 겸 기자가 되어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규석은 사립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역 유지들과 협의하여 배영학원(培英學院)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이에 1921년에 인가신청을 당국에 제출한 뒤 1922년 1월 8일부로 인가를 얻었다. 배영학원은 1924년 4월 1일 개원식을 열었는데, 한규석은 배영학원의 원장이 되어 개원식 때 개원사와 연혁 보고를 하였다. 배영학원의 학생은 고등과와 초등과를 합해 모두 50명 정도였다.

한규석은 1923년 6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대구지방부의 집행위원 겸 회금보관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3월 21일에는 대중 해방의 선구를 표방한 사합동맹(四合同盟) 창립에 참여하고 위원이 되었다. 한규석대구농촌사(大邱農村社)의 이사로 활동하며 1926년 10월 전국 농촌 경제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조사하였다. 한규석은 1936년 6월 21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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