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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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用武夷棹歌韻賦雲林九曲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30년 -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 저자 우성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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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05년 -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 저자 우성규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미상 - 『경재집』 간행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우성규 |
[정의]
근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우성규가 금호강을 아홉 굽이로 나누어 경치를 읊은 한시.
[개설]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用武夷棹歌韻賦雲林九曲)」의 저자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경도(景陶)이다. 현풍현감(玄風縣監), 영덕현감(盈德縣令), 예안현감(禮安縣監), 단양군수(丹陽郡守) 등을 역임하였고, 사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문집으로 『경재집(景齋集)』이 있다.
운림구곡(雲林九曲)은 금호강(琴湖江)이 낙동강(洛東江)에 합류하는 사문진교(沙門津橋)와 칠곡 사수동의 사양정사(泗陽精舍) 사이에 설정된 구곡원림(九曲園林)이다. 운림(雲林)은 운림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사양정사 일대를 이른다.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은 우성규가 주희(朱熹)[1130~1200]의 「무이도가(武夷櫂歌)」의 운을 차운하여 지은 작품이다.
[구성]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은 칠언절구(七言絕句) 총 열 수이다. 총론 한 수와 구곡(九曲)을 읊은 시 아홉 수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의 총론 한 수는 우성규가 경영한 운림구곡의 뱃놀이 전체를 읊은 작품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 대한 추숭과 우성규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의 경치를 읊은 첫 번째 수는 제1곡 ‘용산(龍山)’을 읊은 시이다. 용산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지점이며, 현재 사문진교가 놓여 있는 곳이다. 용산의 아침 안개와 저녁노을을 읊었다.
두 번째 수는 제2곡 ‘어대(魚臺)’를 읊은 시이다. 어대는 금호강과 진천천(辰泉川)이 합류하는 곳이다. 봄빛 받은 어대의 푸른 봉우리와 잔잔한 물결 너머 보이는 봄 경치를 읊었다.
세 번째 수는 제3곡 ‘송정(松亭)’을 읊은 시이다. 송정은 어대에서 북쪽으로 1.5㎞ 올라간 지점으로 추측된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솔가지의 모습과 꿋꿋한 소나무의 기상을 읊었다.
네 번째 수는 제4곡 ‘오곡(梧谷)’을 읊은 시이다. 오곡은 송정에서 북서쪽으로 1.5㎞ 올라간 지점이며 달성습지 끝자락의 오동나무가 있는 굽이를 가리킨다. 달 뜬 저녁 금호강 가에 외롭게 우뚝 선 오동나무와 그 옆의 바위를 읊었다.
다섯 번째 수는 제5곡 ‘강정(江亭)’을 읊은 시이다. 강정은 부강정(浮江亭)을 말한다. 부강정은 원래 다사면 죽곡리 강정마을에 있었다. 부강정은 과거 금호강 뱃놀이의 거점이 되는 곳이었다. 부강정에서 풍류를 읊었던 선비들의 모습을 읊었다.
여섯 번째 수는 제6곡 ‘연재(淵齋)’를 읊은 시이다. 연재는 이락서당(伊洛書堂)을 가리킨다. 이락서당의 현판을 보며 느낀 소회와 한가로움을 읊었다.
일곱 번째 수는 제7곡 ‘선사(仙槎)’를 읊은 시이다. 선사는 이락서당에서 위로 금호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천산(馬川山) 아래에 있던 나루터였다. 과거 최치원(崔致遠)[857~?]이 벼루를 씻었던 난가대(爛柯臺) 주변이다. 선사가 있었던 여울을 돌며 과거 선사를 지나쳐 간 최치원을 떠올리며 시를 읊었다.
여덟 번째 수는 제8곡 ‘봉암(鳳巖)’을 읊은 시이다. 봉암은 와룡대교를 마주 보고 있는 바위산을 말한다. 물결이 휘어 도는 높고 묘한 봉암의 아침 경치를 읊었다.
아홉 번째 수는 제9곡 ‘사양서당(泗陽書堂)’을 읊은 시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금호강 근처로 추측된다. 사양서당은 정구가 강학 활동에 힘쓰며 만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나, 정구 사후에 자취가 없어졌다. 우성규는 제8곡 봉암을 출발하여 올라가다가 멀리 보이는 사양서당을 바라보며 평소 존경하였던 정구의 자취를 시로 읊었다.
[특징]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은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되는 곳에서부터 금호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구곡을 설정하고 시를 읊었다. 우성규는 정구의 사양정사가 있었던 사수(泗水) 지역을 도(道)의 원두로 삼고, 사양정사를 지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각 굽이의 경물을 통하여 학문과 도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였다.
[의의와 평가]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은 구도(求道)를 위한 우성규의 내면적 성찰이 구곡의 경치에 빗대어 표현된 작품이다. 우성규는 운림구곡을 노래하며 자연 경치를 묘사하는 시어(詩語)에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지남(指南)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을 통하여 우성규에게 운림구곡 경영은 학문의 길과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탐색이자 학문의 본령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