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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손계진사호도장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22
한자 書孫季進四晧圖障子
영어공식명칭 Writting Down In Son-Gyejin's Sahodo Jangja
이칭/별칭 「손계진의 사호도 장자에 쓰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3년 - 「서손계진사호도장자」 저자 정경세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08년연표보기 - 「서손계진사호도장자」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3년 - 「서손계진사호도장자」 저자 정경세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99년 - 『우복집』 중간
배경 지역 봉산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12길 70[상동 340-1]지도보기
성격 서발류|발문
작가 정경세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경세가 대구의 봉산서원에 제향된 손린의 사호도 장자 뒤에 부쳐 1608년에 쓴 발문.

[개설]

「서손계진사호도장자(書孫季進四晧圖障子)」의 저자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우복(愚伏)이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의 문인이다.

손린(孫遴)[1566~1628]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계진(季進)이고, 호는 문탄(聞灘)이다. 김우옹(金宇顒)[1540~1603]과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과 종질 사이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봉산서원(鳳山書院)에 제향되었다. 봉산서원손린을 기리기 위하여 1766년 건립된 서원이다. 1871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6년 복원하였다.

「사호도(四皓圖)」는 진(秦)나라 말기 난리를 피하여 은거한 덕망 있는 네 노인을 그려 넣은 「상산사호도(商山四皓圖)」가 그 시초이다.

「서손계진사호도장자」의 이칭은 「손계진의 사호도 장자에 쓰다」이다.

[구성]

「서손계진사호도장자」손린의 발문 요청과 정경세의 답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서손계진사호도장자」는 손씨 집안에 전하여 내려오는 「사호도」에 대한 발문이다. 손린은 집안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사호도」가 대대손손 전하여지길 바라여 배접을 맞겨 작은 장자(障子)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경세에게 장자 뒤에 발문을 적어 주기를 청하고 있다. 정경세손린의 요청에 효자의 마음이라 칭송하고 선비의 출처에 신중을 기하여 줄 것을 바라며 「사호도」 장자 위에 발문을 적어 주었다.

[특징]

「서손계진사호도장자」는 발문을 쓰게 된 계기와 의미가 문답의 형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손계진사호도장자」손린의 은거 지향과 정경세의 출처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현재 손씨 집안의 「사호도」 전래 유무는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후진양성에 힘썼던 일직손씨 집안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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