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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묘갈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1367
한자 李君墓碣銘
영어공식명칭 Epitaph of Leegu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73년 - 「이군묘갈명」조긍섭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33년 - 「이군묘갈명」조긍섭 사망
배경 지역 「이군묘갈명」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지도보기
성격 비지류|묘갈문
작가 조긍섭

[정의]

근대시기 학자인 조긍섭이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묘소가 있는 이규일을 위해 지은 묘갈문.

[개설]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이다. 타고난 성품이 매우 영특하여 일가의 학문을 이루었다. 시문에도 법도가 있어 당시 영남 사림에서 거목으로 지목되었다. 한말 지식인 가운데에 황현(黃玹)·김택영(金澤榮)·이건창(李建昌) 등과 교유했다. 그들을 뛰어난 인물로 칭찬했던 점으로 보아 유학자로서의 보수적 경향만을 고집하지 않는 학자였다.

[구성]

「이군묘갈명」은 서문(序文)과 명(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의 서두에는 묘갈명을 짓게 된 동기와 이규일 집안의 선대(先代)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어서 효성스럽고 우애가 돈독했던 이규일의 성품에 대해서 칭송하고, 이규일의 가계(家系)를 설명하면서 서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명은 4행시로 단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용]

「이군묘갈명」은 이종기(李鍾紀) 부친의 묘갈명으로 이종기가 부친 이규일의 유사(遺事)를 손수 적어와 순후한 뜻으로 부탁하여 짓게 되었다. 이종기 부친 이규일의 집안은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경주[지금 경상북도 경주시]에 물러와 살다가 후에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여 거주하게 되었다. 이종기가 어릴 때 부친 이규일이 세상을 떠나 성장하면서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고, 동생을 돌봄에도 우애를 다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6세에 질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수성면(壽城面) 효목동(孝睦洞)[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못가 오좌(午坐) 언덕에 안장하였다.

[특징]

「이군묘갈명」은 짧은 묘지명에 부자(父子)의 세대를 아울러 표현되어 있으며 문장 표현이 간결하다.

[의의와 평가]

보통의 명(銘)은 네 글자로 행을 맞추기 마련인데, 「이군묘갈명」의 명은 첫 행을 세자로 구성하고, 나머지 3개 행은 네 자로 구성하였다. 이는 젊은 나이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이규일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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