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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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慶熙 |
영어공식명칭 | Lee Gyeonghui |
이칭/별칭 | 군선,군미,지오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05년 대구 사립 협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만주와 국내에서 조선노동공제회, 신간회 운동 등 비타협적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선(君善), 군미(君美), 호는 지오(池吾). 아버지는 이병두(李柄斗)이다.
[활동 사항]
이경희(李慶熙)[1880~1949]는 1880년 6월 11일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 서변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대구의 협성 학교와 안동의 협동 학교(協同學校)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08년부터는 신민회와 대동 청년당에서 활동하였다. 그 뒤 서간도로 망명하고, 망명지인 서간도에서 결혼하였다. 3·1 운동 이후 국내로 귀국한 뒤 1921년 3월 13일 조선 노동 공제회 정기 총회에서 대표 61명 중 1명으로 선출되었다.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3년 3월 중순경 이른바 ‘황옥(黃鈺) 폭탄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 사건으로 1923년 8월 중순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7년 신간회 경성 본부 총무 간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7년 6월 말 무렵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 등과 신간회 대구 지회를 설립하기 위해 몇 차례의 예비 모임을 가졌다. 1927년 9월 3일 조양 회관에서 신간회 대구 지회 설립 대회가 열렸다. 신간회 대구 지회 설립 대회 준비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신간회 대구 지회 초대 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11월 밀양 청년회(密陽靑年會)를 지원하다가 밀양 경찰서에 의해서 검속 당하였다. 해방 후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 부윤을 역임하였다.
[묘소]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묘소가 위치해 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