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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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戊祥 |
영어공식명칭 | Sang Musa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상무상(尙戊祥)[1908~?]은 1926년 6·10 만세 운동 이후 대구 고등 보통 학교 학생들이 사회 과학 서클을 결성하기 위한 움직임 끝에 사상 강좌회를 비밀리에 개최하였다. 이 사상 강좌회의 강사는 신간회 대구 지회 회원들이었다. 1927년 12월 사상 강좌회 학생들과 함께 마르크스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비밀 결사 신우 동맹(新友同盟)을 결성하였다. 신우 동맹은 회원이 증가하자 동시에 발각의 위험성이 커진다고 생각한 끝에 야체이카[공산당 조직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러시아어] 조직 방식을 채택하는 동시에 비밀 결사의 명칭을 혁우 동맹(赫友同盟)으로 바꾸었다. 1928년 2월 혁우 동맹이 다시 적우 동맹(赤友同盟)으로 변경되었는데, 6개 그룹 중 1개 그룹에 소속되었다. 1928년 9월 이덕주(李德周)·김영수(金永壽) 등과 함께 새로이 학생 비밀 결사 우리 동맹을 결성하고 정치 문화부 위원이 되었다.
1928년 대구 고등 보통 학교 동맹 휴학 투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동맹 등 학생 비밀 결사 조직이 일제 관헌에 발각되어 관련 학생 40여 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1930년 3월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해방 후인 1945년 10월 말에 대구 달성 연합 농민 조합 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위원장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말 전국 농민 조합 경상북도 연맹의 결성에 참여하고 상임 위원이 되었다. 1945년 12월에 열린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결성 대회에 대구 대표로 참석하였다. 1946년 4월 민주주의 민족 전선 달성군 지부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