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 서원의 중건에 힘쓴 한학자. 본관은 함열(咸悅). 아버지는 양주군 해등 촌장(海等村長)을 지낸 남궁희(南宮熺)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부인은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슬하에 남궁전과 남궁수, 남궁련(南宮鍊)을 두었다. 도봉 서원은 1573년(선조 6)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1696년(숙종 22)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봉경(奉卿), 호는 죽촌(竹村).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박문충(朴文沖)이고 할아버지는 예조참판을 역임하고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된 박진원(朴震元)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박계영(朴啓榮)으로, 유명남(柳命男)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를 배필로 맞이하여 박진규(...
개항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다스렸던 양주 목사. 이유인(李裕寅)은 1888년(고종 25) 파주 목사 재임 시 전무위원(電務委員)이 되어 기해 전선(畿海電線) 가설에 공을 세웠다. 1890년에 양주 목사가 되었으며, 양주 목사 재임 시절 조 대비(趙大妃)의 능묘 공사를 끝낸 공으로 경기 감사와 함께 품계가 승격되었다. 1891년 12월 한성부 판윤으로 부임하였고, 1894년 함경남...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발생한 구 소사의 치사 사건을 1차 조사한 양주 군수.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김복이(金福伊)가 구(具) 소사(召史)[소사는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말]를 구타하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 시대에 인명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역의 수령이 1차로 조사하고, 이후 인근 지역 수령이 2차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