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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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良孝公安孟聃-貞懿公主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15년 - 안맹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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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15년 - 정의공주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62년 - 안맹담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466년 -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 건립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77년 - 정의공주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477년 - 정의공주 묘표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11월 18일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 |
성격 | 묘역 |
관련 인물 | 안맹담(安孟聃)[1415~1462]|정의공주(貞懿公主)[1415~1477] |
관리자 | 서울특별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안맹담과 그의 부인인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의 묘.
[개설]
안맹담(安孟聃)[1415~1462]은 본관이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이다. 1428년(세종 10)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결혼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연창군(延昌君)·연창위(延昌尉)로 개봉(改封)되었으며,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462년 사망하였고, 양효(良孝)의 시호가 내려졌다. 안맹담은 초서(草書)에 능하였고,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하였으며 음률(音律)·약물(藥物)에도 밝았다. 정의공주는 세종과 소헌 왕후 심씨 사이에서 1415년에 8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총명하고 민첩하여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1477년(성종 8) 별세하여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
안맹담과 정의공주는 4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 안여달(安如獺)은 소위장군 행호분위 부호군(昭威將軍行虎賁衛副護軍)이고, 차남 안온천(安溫泉)은 조산대부 제용감 부 정(朝散大夫濟用監副正)인데 거상 중에 세상을 떠났고, 셋째 안상계(安桑鷄)는 통덕랑 종친부 전부(通德郞宗親府典簿)이고, 넷째 안빈세(安貧世)는 선략장군 용양위 부호군 겸 선전관(宣略將軍龍驤衛副護軍兼宣傳官)이다. 사위는 절충장군 용양위 대호군 세자좌익위(折衝將軍龍驤衛大護軍世子左翊衛) 정광조(鄭光祖)와 통정대부 병조 참지(通政大夫兵曹參知) 한치례(韓致禮)이다.
[위치]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번지 도봉산 시루봉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묘역의 뒤로 올라가면 양효공의 딸 정경부인 안씨의 묘와 덕종 비 소혜 왕후 한씨의 오라비이자 안맹담의 사위인 서릉 부원군 한치례의 묘가 있다. 또한 안맹담의 차남 안온천, 셋째 아들 안상계, 안상계의 아들 안방형, 안맹담의 증손 안백균 등의 묘가 모여 있다. 또한 인근에는 안맹담의 동생인 안중담과 안맹담의 장남 안여달의 묘가 있다. 묘역의 남쪽 방학로 건너편에는 서울 연산군 묘가 있다.
[형태]
묘는 쌍분으로 정면에서 좌측은 안맹담의 묘이고, 우측은 정의공주의 묘이다. 묘역에는 혼유석(魂遊石), 석등, 문인석 4기와 묘표, 신도비가 갖추어져 있다. 안맹담 묘표는 총 높이 165㎝, 개석 55.5×10×40.5㎝, 대석 69.5×37.5×23㎝이다. 정의공주 묘표는 총 높이 165㎝, 개석 55.5×10×41㎝, 대석 75×45×23㎝이다. 신도비는 거대한 화강석 귀부(龜趺) 위에 대리석으로 된 이수를 갖춘 통비(通碑)로, 비의 한가운데에 여의주를 놓고 쌍룡(雙龍)을 틀어 조각한 이수와 거대한 귀부의 거북 조각이 매우 정교하다. 비신은 높이 187㎝, 폭 104㎝, 두께 26㎝이다.
[금석문]
안맹담의 묘표의 앞면에는 ‘수록대부 연창위 시 양효 공 안맹담 지묘(綏祿大夫延昌尉諡良孝公安孟聃之墓)’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기록이 없다. 정의공주 묘표의 앞면에는 ‘정의공주 지묘(貞懿公主之墓)’라고 적혀 있으며, 뒷면에는 ‘성화 십삼 년 이 월 십일 일 졸 삼월 초오 일 장(成化十三年二月十一日卒 三月初五日葬)’이라는 명문이 있어 1477년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 비제는 ‘유명 조선국 부마 수록대부 □창위 시 양효 공 □□신도비명 병서’라 되어 있다. 또 ‘성화 병술 입(成化丙戌立)’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1466년(세조 12)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영중추 하동 부원군 정인지(鄭麟趾)가 지었고, 전액과 글씨는 양효공 안맹담의 넷째 아들인 안빈세(安貧世)가 썼다. 그러나 비면이 심하게 마멸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현황]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은 담장이 둘러쳐 있고 철문으로 잠겨 관리되고 있다. 묘역은 매우 정갈하게 잘 보존 관리되어 있다. 혼유석, 석등, 문인석과 신도비 등은 조선 전기 사대부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1982년 11월 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