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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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竺寺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92-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허인섭 |
건립 시기/일시 | 673년 - 옥천암 의상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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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398년 - 천축사 사액 태조 내림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398년 - 천축사 태조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474년 - 천축사 성종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12년 - 천축사 경학 중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16년 - 천축사 불량답 15두락 김연화 희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63년 - 천축사 칠성 탱화·독성 탱화·산신 탱화 긍순 조성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95년 - 천축사 후불탱화·신중탱화·지장 탱화 성암 조성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1년 - 천축사 관음 탱화 보허 축전 봉안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1년 - 천축사 길 김용태 확장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 천축사 무문관 신축 |
중수|중창 시기/일시 | 2003년 - 천축사 대웅전·독성각·산신각·요사채 현공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1월 5일 -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1월 5일 -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3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5월 23일 - 천축사 목조 석가 삼존불상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347호 지정 |
최초 건립지 | 천축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
현 소재지 | 천축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549 |
성격 | 사찰 |
창건자 | 의상 대사 |
전화 | 02-954-1474 |
홈페이지 | 천축사(http://www.cheonchuksa.kr)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천축사(天竺寺)는 673년(문무왕 13)에 의상 대사가 절을 지어 옥천암(玉泉庵)이라 하였으며, 고려 명종 때에는 근처에 영국사(寧國寺)가 창건되고 그 부속 암자로 맥을 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398년(태조 7)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1474년(성종 5) 성종의 명으로 천축사가 중창되고, 명종 때에는 문정 왕후(文貞王后)가 화류 용상(樺榴龍床)을 하사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다. 1812년(순조 12)에 승려 경학(敬學)이 절을 중창하였다. 1816년(순조 16)에 신도 김연화(金蓮花)가 불량답(佛糧沓) 15두락을 절에 희사하였으며, 이후에도 불량답 희사 등 시주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19세기 말에 다시 천축사가 중수·중창되었다. 1863년에 주지 긍순(肯順)이 칠성 탱화·독성 탱화·산신 탱화를 조성하였고, 1895년에 화주 성암 응부(星巖應夫)가 명성 왕후(明聖王后) 및 상궁 박씨 등의 시주를 얻어 후불탱화·신중탱화·지장 탱화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삼신불 탱화와 신중탱화만이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1911년에 화주 보허 축전(寶虛竺典)이 관음 탱화를 봉안하였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가 천축사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였다. 1964년에 무문관(無門關)을 신축하였고, 승려 현공(玄公)이 2003년부터 대웅전과 독성각·산신각, 요사채를 중수하고 공양간을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천축사의 기도와 법회는 관음 재일, 초하루, 초이틀, 초삼일, 약사 재일, 지장 재일 등에 열리고 있다. 관음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독성각·산신각·요사·범종각 등이 있고, 참선 도량인 무문관이 있다. 대웅전은 ㄷ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로 1812년(순조 12)에 지어졌다. 그 후 몇 차례 중수되었는데 현재 절의 중심 건물로서 법당과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석가 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후불화로 삼세불화와 지장 탱화,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신중탱화는 다소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 시주자 명단에 상궁의 이름들이 보인다.
원통전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여기에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존으로 모셨고, 천수 천안 관음보살 탱화와 칠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독성각과 산신각은 각각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독성 탱화와 산신 탱화가 있다.
절의 동북쪽으로 70m쯤 올라가면 3층의 석조 건물인 무문관이 있다. 무문관은 참선 수행처이다. 부처의 설산 6년 고행을 본받아 한 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 문을 봉쇄한 채 면벽 수행하며, 방문 밖의 출입은 일체 금지된다.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야 하는 등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격하다.
천축사는 깎아지른 듯한 만장봉(萬丈峰)을 배경으로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찰이다. 가람 소나무·단풍나무·유목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어 마치 닭이 계란을 품은 것 같은 포근한 정경을 연출한다. 천축사에 오르는 길도 평탄하며, 여름이면 울창한 수풀이, 가을이면 단풍나무가, 겨울이면 설경이 암벽 곳곳에 펼쳐져 좋은 경치를 자랑한다.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
1991년 12월 5일 천축사는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문화재청의 관리하에 보존되고 있다.
[관련 문화재]
2009년 11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2호와 제293호로 지정된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天竺寺毘盧舍那三神佛圖),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天竺寺毘盧舍那三神掛佛圖)와 2013년 5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347호로 지정된 천축사 목조 석가 삼존불상이 있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는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慶船堂) 응석(應碩)이 편수(片手)를 맡아 환감(幻鑑)·혜조(慧照)·경림(璟林)·탄인(呑仁)·창오(昌悟) 등이 제작하였다.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 왕후를 위하여 시주한 불화이다. 가로가 긴 화면이 상하로 구분되어 상단에는 삼신불을, 하단에는 보살들을 배열한 구도로서 독특한 도상을 보여 준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화면에 손상이 없고, 화기가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채색도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괘불로서 규모가 크지 않고 연대도 오래되지 않았으나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양식 등이 19세기 서울과 경기 지방 괘불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하운당(河雲堂) 유경(有鏡)의 남아 있는 작품이 희귀하여, 그의 독특한 불화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관련 문물]
전래되는 유물 가운데 문정 왕후가 헌납한 화류수 목조 용상(樺榴樹木彫龍床)이 주목을 끄는데, 이것은 대웅전 안에 불탑(佛榻)으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천축사에는 240여년이 된 둘레 4m, 높이 20m의 은행나무가 있어 1981년 10월 27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2009년 여름의 모진 비바람으로 쓰러져 죽었으며, 이에 7월 15일 서울특별시 지정 보호수에서 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