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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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江-顚覆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우용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과거 광주군 언주면]에서 1962년 9월 7일에 발생한 나룻배 전복 사건.
[개설]
1962년 9월 7일 한강을 건너던 나룻배가 전복되어 현재의 강남구에 해당하는 광주군 언주면(彦州面) 주민 30여명이 익사한 참변(慘變)이다.
[역사적 배경]
1965년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가 완공되기까지 한강 상의 교량은 1900년에 준공된 한강철교와 1917년에 준공된 한강인도교, 1936년에 준공된 광진교 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강남북 사이의 교통은 주로 나룻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당시 100만 명을 조금 넘던 서울특별시의 인구는 1963년 300만 명을 돌파하였다. 서울특별시 인구의 폭증에 따라 교외 지역의 인구와 경작 상황, 작물 판매 상황도 변화하였다. 한강 남안에 인접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주민들의 다수가 서울 시민을 위한 과수, 채소 등을 재배하였고, 이를 서울 시내에 판매하기 위해 자주 한강을 건너야 했다. 당시 한강 나룻배는 대개 목선(木船)이었고, 이를 모터보트로 미는 방식으로 운행하였다. 모터보트 영업자들은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바빠 모터보트를 제 때에 정비하지 않았으며 도선장 관리도 부실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가 1962년 9월 한남동 앞 한강 나룻배 전복 사고였다.
[경과]
1962년 9월 7일 오후 1시 30분 경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나루터에서 승객 60여 명을 태우고 대안(對岸)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신사리[현재의 강남구 신사동]로 건너가던 소형 나룻배가 나루터에서 350미터 정도 떨어진 강 복판에서 배를 밀던 모터보트와 분리되어 방향을 잃고 하류 쪽으로 흘러갔다. 잠시 흘러가던 나룻배는 한국삭도주식회사(韓國索道株式會社)가 설치해 놓은 케이블에 걸렸고, 승객들이 중심을 잡으려 애쓴 탓에 전복되어 버렸다.
[결과]
승객 전원이 물에 빠지자 경찰은 긴급 구조선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구조에 나섰으나 구조한 사람은 34명 뿐이었고, 익사자는 30명으로 추산되었는데, 거의 모두가 광주군 언주면 주민이었다. 이 사고로 한동안 한강 나룻배 운항이 금지되었으며, 한강 나룻배 운항 관리가 교통대책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의의와 평가]
서울특별시의 거대 도시화 과정에서 한강 남북안 사이의 교통 수요가 폭증했음에도, 전래의 나룻배 외에는 별다른 운송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1965년 제2한강교를 필두로 한강 교량 건설의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