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대왕(正祖大王)이 지은 시. 「정조대왕어제시」는 신라 공신 박제상(朴堤上)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경양사(鏡陽祠)에 보관되어 있다. 「정조대왕어제시」가 언제부터 경양사에 보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양사는 강릉박씨 종중에 의해 1900년 초에 건립되었으므로 그 이후가 될 것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잡혀간 신라 눌지왕의 두 동생을 충성과 절개로써...
-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김주원이 787년에 당시 북빈경(北濱京)이었던 강릉으로 옮겨 명주 지역 9군(郡) 25현(縣)을 관장하는 명주군왕에 책봉된 이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세습하면서 형성되었다. 김주원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무열왕계의 직계인 김주...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에 걸쳐 있는 고대 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는 전설과 발해의 대씨(大氏)가 쌓았다 하여 대공산성(大公山城)이라 불리운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보현사가 있어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전설로 전해 오는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대씨가...
-
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또는 제48대 경문왕(景文王) 김응렴(金膺廉)의 아들이라고 한다. 왕비는 강씨부인이고, 아들은 청광보살(淸光菩薩)과 신광보살(神光菩薩)이다. 궁예는 신라 하대 왕의 서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의 여러 징조가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유모가 잘...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청학동 소금강 지역에 있는 고대 산성. 금강산성은 해발 714m의 소금강산을 정점으로 하여 노인봉(老人峰) 쪽으로 피동 부근의 남쪽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이 위치한 이 지역은 1970년 11월 18일 명승 제1호로,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학동 소금강’ 지역으로 금강산성은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
신라 하대의 귀족이자 대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9대손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파진찬 김정여(金貞茹)이다. 딸은 문성왕의 왕비이다. 828년(흥덕왕 3)에 고성군태수(固城郡太守)가 되고 이어 중원소경(中原小京) 대윤(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을 남겨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836...
-
신라시대의 장군이자 대신. 김유신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러한 업적으로 인하여 그와 관련된 신이(神異)한 이야기들이 설화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또한 사후에 신격화(神格化)되어 민간과 무속에서도 산신 또는 서낭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유신은 강릉 단오제(端午祭)와 관련하여 숭배되고 있다. 대관령산신당(大關嶺山神堂)에서는 김유...
-
신라 하대의 왕족. 태종무열왕의 8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 아버지는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이다. 김장여(金璋如)와 형제간이고, 아들은 김양(金陽)이다. 관등은 파진찬(波珍湌)에 이르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양전(金陽傳)에 의하면 김주원·김종기·김정여가 대대로 장상(將相)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도 시중(侍中)을 비롯한 관직을 역임...
-
신라 하대의 재상.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7대 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이고, 아우는 김헌창(金憲昌)이다. 아들은 김정여(金貞茹)·김장여(金璋如)이며, 손자로는 김양(金陽)과 김흔(金昕)이 있다. 관등은 소판(蘇判)의 관등으로서 집사부(執事部)의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김주원은 신라 하대에 무열왕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785년 선덕...
-
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
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
-
신라의 북방 경계가 되는 하천. 신라는 니하(泥河)를 경계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발해와 경계를 이루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신당서(新唐書)』에 니하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니하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두 기록의 니하를 같은 지역으로 볼 것인가 또는 다른 지역으로 볼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 초기 지금의 강릉(江陵) 지역을 일컫던 지명. 강릉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313년(미천왕 14)에 하서량[河西良·阿慧羅]라고 하였다. 이후 신라에 포함되어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로 파견되어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복속하였다. 639년(선덕여왕 8)에는 하슬라주로 북소경(北...
-
신라 하대 강릉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었던 독자적인 세력. 김주원(金周元)이 명주군왕(溟州郡王)의 봉작(封爵)과 식읍(食邑)을 기반으로 하였던 일종의 제후국(諸侯國)이다. 김주원은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
-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고대의 토성. 보통 방내리성(坊內里城)으로 불리는 토성으로 고허성(稿虛城), 교허성(校虛城)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고현성(古縣城)의 성격을 갖는 성곽이며 또한 인근에 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후에 교허성(校虛城)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허성(稿虛城)’이라기 보다는 ‘교허성(校虛城)’으로 불리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성(城...
-
강릉 지역의 옛 명칭. 신라의 국가 발전과정에서 동북방면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강릉 지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512년(지증왕 13)에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였으며, 639년(선덕여왕 8)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다가, 658년(태종무열왕 5)에 에는 소경을 폐지하고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전국...
-
강원도 강릉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특별행정구역. 신라시대에는 지방제도로서 주군제도와는 별도로 특수행정구역으로 왕경을 모방한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주군이 군정적 거점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소경은 주로 정치적·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주군을 견제·감시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의 지방통치조직은 삼국통일에 따른 영토...
-
신라시대 동북쪽 변경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군사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인 658년(무열왕 5)에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 지역이 말갈(靺鞨)과 맞닿아 있어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설치되었던 북소경(北小京)을 폐지하여 주(州)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실직(悉直)[지금의 삼척]으로 북진을 삼았다...
-
경주의 간문역에서 천정군(泉井郡)[함경도 덕원]까지의 신라 교통로.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함경도 지역과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 초기의 교통로는 울산 지역을 거쳐 해로로 가거나 낙동강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신라는 내륙 교통로를 확보하고 이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56년(아달라왕 3)에 오늘날 문...
-
통일신라 말기 고려 초기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 신라 하대 불교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선종의 유행이다. 선종은 불교 경전(經典)에 의하여 학파를 구별하는 교종(敎宗)과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문자에 의거하지 않고 선(禪)을 통하여 불성(佛性)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종은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중앙집권적인...
-
신라시대 영랑(永郞)·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詳) 등 네 국선(國仙).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서 진흥왕대에 제정된 화랑도(花郞徒)는 15~18세 사이의 청소년으로 조직되어 보통 3년 정도 수련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는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으며, 산천을 찾아 노닐고 즐겨 멀리 이르지...
-
강원도 강릉시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화랑 설원랑(薛原郞)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화랑도는 수련 중에 “산천을 찾아 노닐었는데, 먼 곳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遊娛山水 無遠不至)”고 하였다. 산천은 젊은 화랑 무리의 수련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이들은 수련 기간 동안 경주 부근의 남산을 비롯하여 금강산, 지리산 혹은 최근에 알려진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계곡과 같은...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
강릉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1915년에 ‘예국토성지(濊國土城址)’라고도 불리는 강릉토성지(江陵土城址)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총연장 2,800m, 누(壘)는 0.5~12m이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예국토성지’는 조선시대에 폐기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예국의 소군장(小君長)인 후(侯)가 거처하는 성읍(城邑)으로...
-
강릉 지역에 있었던 예국시대의 고대 성곽. 예국고성(濊國古城)은 강릉이 동예의 중심이었던 고대에 축조되었던 성곽으로 추정하며 명칭은 고대 부족국가의 명칭 ‘예(濊)’ 또는 ‘동예(東濊)’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릉(江陵)은 본시 예(濊)의 고도(古都)로 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하였으며 고구려의 하서량(何西良)이었다가 후에 신라에...
-
북해통·염지통·동해통·해남통·북요통 등 5개의 신라시대 주요도로. 신라는 통일 이후 지방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9주의 주치(州治)나 소경(小京)으로 통하는 5개의 간선도로인 오통(五通)을 두었다. 오통 가운데 북해통(北海通)은 북소경(北小京)[강릉]과 북진(北鎭)[삼척] 등과 같은 이름에서 보면 동해안을 따라서 북상하...
-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련단체. 화랑의 전신. 원시 공동체사회 이후 신라에는 연령별 청소년 단체가 있었다. 촌락 또는 씨족 단위로 조직된 이 단체를 통해 청소년들은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익히고 예절과 무술을 연마하였다. 신라가 주변의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해 마침내 6세기 전반 무렵 경상도 일원을 차지하는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문물 제도를 정비하게 되자, 이러한 새로운...
-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 대까지 활약한 대표적인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일명 태종(苔宗). 내물왕의 4대손이다. 505년(지증왕 6) 신라에서는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悉直州)[지금의 삼척]가 설치되었는데, 이때 이사부는 실직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그리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지금의 강릉]의 군주가...
-
강릉의 옛 지명. 강릉 지방은 본래 예(濊)의 옛 땅이었다는 이른바 ‘강릉예국설(江陵濊國說)’에 대한 최초의 사료(史料)는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한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 제4, 지리2]의 기록이다. 강릉만을 국한하여 예국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B.C. 1세기경에서 A.D. 3세기경의 강릉 지역에는 거수(渠帥)를 지배자로 하...
-
강릉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명주(溟州)[현재의 강릉]는 본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인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라고 하여 이 지역이 고구려의 지명으로 하서량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이 지역은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소멸시킨 후에는 임둔(臨屯)에, 그리고 그 후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에...
-
통일신라시대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하서변수당은 통일신라시대 변경을 지키던 삼변수당(三邊守幢)의 하나이다. 삼변수당은 690년(신문왕 10)에 한산변(漢山邊)[지금의 廣州 지방]·우수변(牛首邊)[지금의 春川 지방]·하서변(河西邊)[지금의 강릉 지방]의 세 곳에 설치하였다. 하서변수당은 신라의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河西州) 관내 요새지에 설치된 것으...
-
강원도 강릉 지역에 배치되었던 신라시대의 지방군대조직인 육정(六停)의 하나. 육정(六停)은 신라시대 각 지방의 주(州)에 배치하였던 6개의 군단(軍團)을 말한다. 육정 중에서 제일 먼저 설치한 군단은 대당(大幢)으로, 544년(진흥왕 5)에 편성하여 경주 부근에 배치하였으며, 옷깃의 색깔은 자백(紫白)이었다. 다음으로 552년에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지방에 배치했던 상주...
-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삼국통일 직후에 완성된 9주(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해당된다. 주치(州治)는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지방행정제도를 9주·5소경(小京)으로 새롭게 편성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아래에는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管 : 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
-
강릉에 설치하였던 신라시대의 군부대. 활을 쏘는 부대로 한산주궁척(漢山州弓尺)과 더불어 이른바 이궁(二弓)의 하나이다. 한산주궁척은 경기도 광주(廣州) 지방에 두었고, 하서주궁척은 598년(진평왕 20)에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하였다....
-
통일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만보당(萬步幢)은 통일신라시대 구주(九州)에 조직적으로 배치된 부대로, 주마다 각기 두 개씩 있었다. 하서주만보당(河西州萬步幢)은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만보당은 각기 금(衿)의 빛깔이 달랐는데, 사벌주(沙伐州)는 청황(靑黃)·청자(靑紫), 삽량주(歃良州)는 적청(赤靑)·적백(赤白), 청주(菁州)는 적황(赤黃)·적록(赤綠)...
-
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신라시대 지방의 다섯 고을에 설치한 오주서(五州誓)의 하나로, 672년(문무왕 12)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오주서는 청주서(菁州誓)[지금의 진주], 완산주서(完山州誓)[지금의 전주], 한산주서(漢山州誓)[지금의 廣州], 우수주서(牛首州誓)[지금의 춘천], 하서주서(河西州誓)[지금의 강릉]의 다섯 부대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에 설치한 주(州)의 이름이다. 하슬라주는 신라의 동북지방의 군사중심지이며 북방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고구려·백제·가야를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州)의 설치와 폐지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하슬라가 언제 신라에 속하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
신라말·고려초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세력. 신라말 진골귀족 내부 정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귀족이나 6두품 계통, 지방의 토착세력인 촌주, 해상 세력, 지방군사 세력에서 기원하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스스로 장군이나 성주를 자처하였다. 호족은 대토지를 지배하고 있고,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