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에 선행을 펼쳐 마을을 구한 산계리 선각자들의 사적을 기록한 사적비. 1780년을 전후하여 산계리에는 기존의 전세(田稅)에 산삼 공납이 추가되었고 설상가상 심한 흉작으로 지역민이 마을을 떠나는 유리(流離) 현상이 심하게 되자, 고진창(高鎭昌), 우광택(禹光澤), 전삼박(全三泊) 등 14명이 상계(上啓)하여 관가로부터 경공(京貢)의 산삼을 감량 받았다. 그리고 어려움을 해결...
-
옥계면 현내리에 있는 김천(金遷)의 효자 비각. 1259년(고종 40) 몽고군에게 잡혀 간 어머니를 모셔온 아들의 효행을 기려 국가에서 내린 정려이다. 옥계면 현내 3리에 있다. 효자비와 비각의 형태로 있다. 마을 입구에 효자리비가 세워져 있다....
-
배문주(裵文周)의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효부비(孝婦碑). 김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강릉시 옥계면 현내 2리 193번지 도로변에 있다. 효부각(孝婦閣)이라 이름 지어진 비각 안에 받침돌 위에 높이 80㎝, 두께 10.8㎝, 너비 38㎝의 몸돌을 세웠다. 비 전면에는 “학생배공문주지처효부김해김씨지려(學生裵公文周之妻 孝婦金海金氏之閭)”가...
-
눌암(訥庵) 박계립(朴啓立)을 기리기 위한 재실. 박계립은 김제 흥복동(興福洞)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장성하여서는 성리학에 심취하였다. 1632년(인조 10)에 호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삼척의 소달산(所達山)으로 들어와 양친을 봉양하면서 농사에 전념하였다. 1658년(효종 9)에 강릉시 옥계면 북동리로 이주하여 항상 목은 이색(李穡)[1328...
-
조선시대 사일거사(四一居士) 심래조(沈來祖)가 지은 정자. 봉황이 많이 날아오르는 곳이라 하여 봉래정이라고 하였다. 심래조가 무릉도원을 찾던 중 황지미골이 무릉도원과 비슷하다 하여 냇가 바위에 방도계(訪桃溪)라는 글씨를 새겼다. 또한 개울 건너에는 봉래정을 짓고 그곳에서 소일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상계리에 터가 있다. 봉래정은 현재 없어졌고...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절골 안에 있는 산계사의 옛터. 산계령 아래에 세워졌으므로 지명을 따서 산계암이라 하였고, 이 암자 이름으로 인해 산계사지가 된 것이다.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 삼계암(山溪菴)의 옛 터라고 전할 뿐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사찰의 형태는 알 수 없고 현재의 절터로 보아 그리 큰 사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도괴된 석탑재를...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는 액막이 행사. 마을의 재앙을 막는 방어기재로 보통 솟대와 장승을 세우는데, 강릉시 옥계면 지역에서는 살대를 세운다. 살대와 솟대는 마을 수호와 풍요기원의 기능은 유사하나 형태는 다르다. 솟대는 긴 대에 오리만 올려놓았으나 살대는 다양한 가농작(假農作)을 만들어 걸고 어둠을 밝히는 등을 달거나 팔랑개비로 장식을...
-
조선시대 한학자 고명극(高明極)이 지은 정자가 있던 터. 고명극은 지금의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 고재열 집터에 수월정(水月亭)을 짓고 찾아온 선비들과 글을 읽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했던 고명극은 서하순(徐夏淳), 유진학(兪鎭學)과 함께 3학사(三學士), 또는 3효자(三孝子 )라고 불렸다. 수월정은 현재 없어지고 터만 남아...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787번지에 있는 비각. 1780년 전후로 하여 산계리에는 기존의 전세(田稅)에 산삼(山蔘) 공납이 추가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심한 흉작으로 동민들의 유리(流離) 현상이 심해졌다. 고진창(高鎭昌), 우광택(禹光澤), 전삼박(全三泊) 등 14명이 상계(上啓)하여 관가로부터 경공(京貢)의 산삼을 감량 받았다. 그리고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먼저 50양씩...
-
음력 3월3일 봄놀이를 하면서 먹는 음식. 강릉시 인근 야산에서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인 삼짇날 여러 군데에 가서 화전을 지져먹는다. 태장봉 일대와 옥계 밤재 일대 장수봉은 진달래꽃이 만발하므로 이웃끼리 음식을 장만하여 낙풍 장수봉과 남양 오리골산과 옥녀봉, 산계 반암 등지에 올라간다. 화전은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 둥글게 지져 만든...
-
효부인 정곤(鄭鵾)의 처 강릉최씨의 정려. 최씨의 행동은 집안의 명예인 동시에 고을의 자랑이었으므로 후손들에게 훌륭한 조상을 기리고 또한 그 효성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강릉시 옥계면 현내2리 869번지 성재(城村)에 있다. 정렬각(旌烈閣)이라 이름 지어진 비각 안에 받침돌 위에 높이 110㎝, 두께 14㎝, 너비 35㎝의 몸돌을 세웠다. 전면비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