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공공녹지로서 자연지(自然地)나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 공원은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공공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 시설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자연공원과 도시공원으로 나누고 있다. 자연공원은 자연의 풍경과 야생 상태를 보호하고, 인간의 옥외 레저의 장으로서 국가나 시·도·군이 지...
-
강원도 강릉시의 풍속·자연 풍광·음식·특산물 따위를 즐기기 위해 찾아보는 일. 현대적 의미의 관광은 일상생활을 떠나서 견문을 넓히고, 위락하고 경제적인 소비를 하며, 내일의 건전한 생활을 위한 형태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고 듣고 즐기는 차원의 관광에서, 관광지의 문화를 직접 만지며 참여하여 체험하면서 느끼는 차원의 관광 여행이 더욱 증대되고,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행해진 교육의 역사와 현황. 강릉은 유서 깊은 교육의 고장으로서 이미 고려 말경부터 향교가 설립되고 지역 내에 서당과 서원 등 유학 교육 기관이 많았다. 광복 후 정부 수립과 함께 교육 팽창 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강릉 교육은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1945년 해방 직후의 초등 교육은 일제 식민지 정부에서 물려받은 다수...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구정리의 ‘구정’은 마을에 거북이가 나온 우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 효자가 살았는데 효자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있었다. 병이 깊은 아버지는 고기를 먹고 싶어 했으나, 때가 겨울이라 고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효자가 집 앞 우물에 나와서 하늘에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니 우물에서 거북이가 나왔다. 그 거북이를 잡아...
-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도서·전자책·출판물·디지털 자료 등을 수집·보관하고 대중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시설. 도서관은 서적이나 그림 및 기타 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이를 시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시설로 공공성을 띠고 있다. 최근에는 도서관이 국회 도서관이나 국립 중앙 도서관, 도립·시립 도서관 등 국가나 도·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의...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속한 법정리. 서쪽은 송림리, 남쪽은 백일교, 북쪽은 영진리와 접해 있다. 방내리는 방내사(坊內寺)라는 절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원래 연곡현의 소재지로 현내리라고 하였다가 1916년에 교동리와 동덕리의 일부를 합하여 방내리로 고쳤다. 1955년 9월 1일 명주군 소속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
강원도 강릉시 각 지역의 마을별로 분포해 있는 소규모 도서관. 강릉시는 예전부터 영동 지역 교육 중심지로서 많은 교육 기관이 있었으며, 교육 도시라 불리었다. 또한 교육 도시의 명성답게 현재에도 교육 기관 이외에 강릉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역시 많이 분포해 있다. 현재 강릉시가 운영하는 도서관은 모두 20개 시설이 있다. 강릉시는 누구나 원하는 학습과 문화를...
-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조선 시대 광해군 때에 초당 허엽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을 때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좋은 현 안초당 연화지 자리인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16[초당동 475-3] 지역에 기거하였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 허난설헌과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허균이 태어났다. 마을이 번성하자 허엽 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이라...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의 행정리. 하시동리는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와 대동리[안인리], 서쪽으로는 상시동리, 남쪽으로는 대동리·모전리, 북쪽으로는 월호평동과 접해 있다. 원래는 절골[寺洞]이었으나, 이웃 마을 안인리에서 살던 완하당(玩荷堂) 박진해(朴震楷)가 이 마을에 이사를 와서 보니 마을에는 글을 읽는 선비들이 많이 사는데, ‘절골’이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속한 행정리. 하평리 동쪽으로는 사천진리, 서쪽으로는 판교리, 남쪽으로는 미노리와 사천천, 북쪽으로는 바다와 연곡면 동덕리와 접해 있다. 하평리는 원래 사천진 2리였다. 사천진리는 강릉군[현 강릉시] 지역으로 동해 바닷가에 부리가 되었으므로 불까라 하였는데, 조선조 때 사화 봉수(沙火烽燧)를 두었으므로 사화진이 되고, 또 사화면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