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字)는 정여(正汝).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강성군(江成君) 최세건(崔世楗)의 12세손이다. 정성을 다해 어버이를 섬겼으며,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넣어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최심하(崔心河)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지극한 효성으로 중학교관(中學敎官)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