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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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寢具 |
영어음역 | chimgu |
영어의미역 | bedclothe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최혜정 |
[정의]
강릉 지방에서 사용했던 이부자리와 베개.
[개설]
우리 조상들은 식사는 아무데서나 하더라도 잠은 가려서 자라고 했을 정도로 침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었다. 더구나 침구는 어느 일정한 문화 수준에 도달해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다.
예부터 딸을 시집보낼 때 금침 12채를 계절별로 구분해서 장만했고 회갑(回甲), 칠순(七旬), 팔순(八旬) 때도 금침을 장만했으며 죽어서도 관 속에 천금, 지요, 대렴금, 소렴금을 마련하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침구는 생명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중요한 생활사이다.
[연원]
1960년대 이전의 강릉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하여 문화 교류가 어려웠기에 영동 지역의 독자적인 금침 문화를 이루어 왔다. 강릉은 추운 고장으로 목화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솜과 무명을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강릉의 건어물(미역, 멸치, 다시마) 등 특산물을 가지고 충청도까지 행상을 하여 목화를 얻어다 가정에서 필요한 무명을 직조하여 사용했다. 광목, 옥양목, 죽서양목이 들어오고 마직물을 팔아서 목면직물이나 솜과 교환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강릉 지역의 금침에는 담요와 이불, 솜요, 천의, 솜이불, 누비이불, 겹이불, 사이불, 베개 등이 있다. 담요는 목면 또는 비단을 덮어서 만들고 속에는 두텁게 솜을 넣기 때문에 폭이 90㎝ 정도이고 길이는 150~180㎝ 정도이다.
이불은 담요보다 면을 덜 촘촘하게 넣는데 폭이 크게는 약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불이 얇은 것은 온돌을 사용하는 관계로 여름철에는 마 또는 단을 이용하고 상류 가정에서는 비단을 사용하기도 하며 하류 가정에서는 침구가 없는 경우도 많다. 과거 이불의 색상은 남자용으로 고동색, 남색, 감색, 자색, 여자용은 연두색, 붉은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대로 내려오면서 다홍색, 하늘색, 노란색 등 밝은 색 계통이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색동이 주류를 이루었다.
베개는 나무로 만든 목침(주로 남자들이 사용), 비단베개, 수를 놓은 베개 등을 사용했는데 자신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여 미신적인 신앙을 나타내는 문양을 많이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사상인 유교, 불교, 도교적인 문양이 다수 나타나는데 장수를 기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이불은 삼복더위 때 덮는 금침으로 주로 모시를 이용하였다. 물을 곱게 다듬어서 모시홑청을 시쳐 사용했고 부유층에서는 숙고사, 생고사, 왜사, 준주관사, 순인과 같은 광사로 만들었다.
[현황]
현재 금침 유물은 선교장(船橋莊)의 성기희(成耆姬) 여사가 강릉 인근 지역의 것을 수집하여 놓은 것이 많이 있다. 명주로 만든 침구와 다양한 문양의 퇴침베개, 보자기, 횟대보 등이 있으나 연대와 소장자는 미상이다. 추론하건대 선교장에서 직접 쓰던 유물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