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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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秘靈垈- |
영어공식명칭 | Biryeongdaenaru Ferry |
이칭/별칭 | 금대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전구간 | 비령대나루 - 경기도 가평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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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경유 구간 | 비령대나루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
성격 | 나루터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비령대에 있는 나루터.
[개설]
비령대나루는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와 강을 두고 맞닿은 비령대마을에 있는데, 춘천으로 넘어가는 나루였다.
[명칭 유래]
비령대(秘靈垈)는 예전에 마을 주민들이 명당자리라고 하여 땅을 빌어 집을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빌어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즉, ‘비령대’는 빌어터의 한자식 표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옛날 신령이 하늘에서 죄를 짓고 내려와 은인자중하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구전도 있다.
[건립 경위]
1871년(고종 8) 편찬된 『가평군읍지』에는 가평군의 진도(津渡) 중에 하나로 금대진(金垈津)을 소개하고 있는데, 비령대나루가 이곳으로 비정된다.
[변천]
비령대나루는 조선 후기까지 가평군에서 운영하던 진선(津船) 1척이 있었다. 금대리에는 남사창(南社倉)이 운영되었고, 50여 호가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금대리 앞을 흐르는 북한강은 ‘금대강(金垈江)’으로도 불렸는데, 이 나루는 주로 농산물과 생필품 교환·운송을 위해 이용되었다.
금대리는 19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남면에 속한 6개의 리 중에서 농경지가 제일 많은 곳이어서 전답이 즐비하였고 유일하게 곡물창고가 운영되었다. 또 청평댐 건설 이전에는 사금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육로가 발달하기 이전에 이런 곡물과 사금 등의 생산물은 비령대나루를 통해 외지와 교류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금대리의 중심마을로 특산품인 고추, 옥수수, 강낭콩 등이 많이 생산되고, 아랫말·윗말로 나누어져 있다.
[현황]
비령대나루는 청평호의 담수로 인해 호수가 금대리를 감싸고 있는데, 지금은 이용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금대리와 춘천시 방하리 사이에 있는 농경지 경작을 위해 농업용 동력선 1대가 운영되었다.
가평과 강원도 홍천군 마곡을 운항하는 노선이 있는데, 달전리 안반지를 출발하여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슬어니, 가평읍 금대리 비령대, 가평읍 복장리 복장포, 춘천시 남면 관천리 본말, 설악면 미사리 물미, 춘천시 남면 관천리 함바지, 설악면 미사리 미사, 춘천시 남면 박암리, 홍천군 서면 마곡리 떼내, 춘천시 남면 가정리 골안터, 춘천시 남면 가정리 가정, 춘천시 남면 가정리 황골을 거쳐 홍천군 서면 마곡리 말골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