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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480
영어공식명칭 Lunar New Year's Day
이칭/별칭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목진호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음력 정월 초하루에 행해지는 세시 풍속.

[개설]

설날은 음력으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첫 번째 날로서, ‘한 살 더 먹는 날’이라는 뜻을 가졌다. 신라에서는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왕과 신하가 모여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를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서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종묘에서 임금이 큰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설빔·세장(歲粧)과 예복을 입고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 뒤, 어른에게 세배를 올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을 강제로 막았으며 해방 이후에도 양력설을 3일간 공휴일로 유지했다. 1985년에서야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 정월초하루를 공휴일로 삼았다. 그 이후에 ‘민속의 날’ 명칭을 다시 ‘설날’로 바꾸어 현재에 이른다.

[지역 사례]

1997년 조사 당시 가평읍 두밀리의 신태균[남, 78세]·오세연[여, 82세]에 의하면, 정초 설날이 되면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집안과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다고 한다.

2001년 조사 때 가평군 설악면의 최정학[남, 76세], 김용해[남, 75세]는 설날에는 노인들과 이웃집 어르신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렸고, 떡국을 대접받고 세배 돈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귤이 귀했는데, 돈 있는 집에서만 귤을 주었기 때문에 빼놓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상면의 정갑령[남, 90세]은 설날 새벽에 떡국, 고사리나물, 숙주나물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냈고, 아침을 먹고 나면 가족끼리 음식을 준비해서 성묘를 갔다고 한다. 가평군 북면의 김호걸[남, 79세], 박찬호[남, 70세]도 떡국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가서 음식을 놓고 성묘를 했다고 한다. 또한 설빔을 입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면 세뱃돈이나 선물, 또는 덕담을 주셨다고 한다.

2004년-2005년 조사에 의하면, 태봉리의 김경수[가명, 1944년 생], 이정미[가명, 1937년 생)]의 경우 정월 초하루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3일 전부터 준비해서 가래떡, 고깃국, 부침개, 고기찜, 나물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제령리신영희[가명, 1922년 생]에 의하면, 집집마다 떡국차례를 지냈다고 한다. 떡은 보통 흰떡, 쑥 넣은 조찰떡, 찰떡 등 세 가지를 만들어 먹었고 만두는 메밀피 안에 고기, 숙주, 김치, 당면을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놀이로는 널뛰기와 윷놀이를 많이 했고 남자들은 화투놀이를 했는데, ‘비죵’, ‘샛별’, ‘봉추’ 등의 담배내기를 주로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도대리의 김평곤[가명, 1937년 생]은 설날 아침 온 식구가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하는데, 이 때 마련하는 음식은 떡국, 만둣국, 동태전,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 무나물, 산적 등이라고 한다. 오정미[가명, 1946년 생]는 예전에는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만두를 빚었지만, 요즈음은 집집마다 따로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그는 설날 5일 전 만두를 빚었으며, 설날 아침 시댁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금대리의 장인환[가명, 1920년 생]은 설날 3일 전부터 설 준비를 시작해서 술을 빚고, 두부를 만들 때는 설날 7일 전에 준비했다고 한다. 1994년 집을 개조한 뒤부터 술이나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설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나서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린 후에야 떡국을 먹고 성묘를 갔다고 한다.

복장리의 하춘하[1926년 생]에 따르면, 설날에는 큰댁에 모여 설을 지냈는데 10일 전쯤 가평에서 장을 봐 왔다고 한다. 설날에 쓰는 음식으로는 흰떡과 인절미, 부침개, 탕국, 만두, 식혜를 만들었으며 돼지고기는 산적을 만드는 데 썼다고 한다. 그런데 설날 때 세배는 제사지내기 직전에 했으며, 제사 지내고 아침을 먹은 뒤 산소에 갔다고 한다. 산소는 마을 뒷산에 있었는데, 잣나무 밭에 있었다고 한다.

화악리의 박찬진[가명, 1924년 생], 양옥자[가명, 1937년 생]는 설날을 앞두고 묵동이나 춘천에 가서 장을 봤다고 한다. 장에 가서는 돼지고기와 사과, 배, 곶감, 대추 등을 샀으며, 떡은 묵동시장에 있는 방앗간에서 인절미와 가래떡을 사왔다고 한다. 만두에는 돼지고기, 숙주, 무나물, 잡채, 김치를 속으로 넣었고, 부침개에는 파, 다시마, 실고추, 김치가 들어갔다고 한다. 예전에는 설날에 쓰는 술을 ‘엿술’이라고 해서 집에서 담갔지만, 1980년 이전에는 주로 막걸리를 사용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와 청주를 쓴다고 하였다. 특히 설날 아침 8시경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은 뒤, 세배를 하는데 아들, 며느리, 손자 순으로 했다고 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아들은 산소에 가고 며느리는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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