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까지 경기도 가평군을 포함해 한반도 전역에서 전개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서울 북동부에 위치한 가평군은 휴전선에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의 북단 지역처럼 6·25전쟁 격전지가 많다. 가평군에서 펼쳐진 전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춘천-가평 전투로 1950년 6월 25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군 제6사단 예하 제7·19연대가 북한군 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휴전이 되기까지 가평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 당시 가평 지역은 북방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 중 하나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방어지역이었다. 일찍이 가평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각 세력이 각축하던 곳이었고, 이러한 전략적 특성은 6·25전쟁 당시 서울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을 추모하는 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초기에 한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였으나, 같은 해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어 유엔군과 함께 북진하였다.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탈환하였고 원산도 점령하였다. 하지만 중국군이 10월 19일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다시...
6·25전쟁 때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반공 결사대. 1950년 6월 26일 가평군 목동에 있던 국군 10중대가 금곡으로 후퇴한 이후 가평 주민들은 반공 활동을 하고자 하였다. 1950년 7월 10일 강원도 춘천군 남면 방하리 문의골에 몸을 피하였던 청년 중 김종학·신동규·신하균·이승균·유경태·장호석·유경수·정삼득·함우진·이정용 등은 7월 16일 수칙을 정한 뒤 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에 있는 6·25전쟁 때 학살당한 가평 주민들을 위한 위령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3일만에 서울을 점령당한 한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까지 남하하였다. 같은 해 9월 15일 개시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되면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한국군은 반격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미 해병대와 한국군은 서울을 탈환하기 위하여 동...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가평군의 역사. 가평군에는 선사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먼저 구석기 시대의 경우, 청평면 고성리에서 찍개와 긁개 등 10여 점의 뗀석기가 채집된 바 있는데, 북한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석영제 찍개류의 전형적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어지는 신석기 시대의 경우도 역시 북한강 유역 신석기 문화 생활권에 포함되어 있었...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연방 4개국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북한군은 6월 27일 서울을 점령하였으며 빠른 속도로 남진하였다.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 유엔군은 9월 26일에 서울에 진입하여 9월 28일 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6·25전쟁 때 벌어진 용문산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장기화 되었다. 1951년 3월 서울이 재수복 된 이후 4월부터 유엔군은 서울 북상에 김포반도-행주-구파발-창동-용문산-홍천-한계령-설악산-속초를 무명선(無名線, noname line)으로 칭하고 절대적 방어선으로 설정하였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는 6·25전쟁 때 참전한 캐나다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캐나다는 본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한반도 분쟁에 참전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과 함께 영연방 및 나토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파병하였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캐나다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희생을 치렀다. 가평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