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21 |
---|---|
한자 | 李啓承 |
영어공식명칭 | I Gyeseung |
이칭/별칭 | 이계승(李繼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이계승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출생지 | 이계승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
거주|이주지 | 이계승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
활동지 | 이계승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이계승(李啓承)은 가평군 북면 제령리 출신으로 종교는 천도교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생 이규붕(李圭鵬)과 장남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최종화(崔宗和) 등과 뜻을 모아 주민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격문을 인쇄해 거리에 붙이고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북면 이곡리의 최종화(崔宗和)와 친분이 있던 이계승은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제령리 담임자로 활동하였다. 이계승은 친구 정천수(鄭天洙)와 함께 비밀통문과 「독립선언서」를 돌려 주민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계승은 선두에 서서 북면 주민을 이끌고 가평읍까지 행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계승은 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직후 천도교에서 교단운영과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특성기금을 모금할 때 10원을 기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