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과 가북면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 일제 강점기 거창군 가조면, 가북면을 활동 범위로 하여 조직된 가조청년회는 야학과 공동 노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문맹 타파와 경제적 실력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설립 취지서가 전하지 않아 가조청년회의 설립 목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그 활동으로 짐작해 보면, 혁신적 청년 운동을 지향한 단체라기보다, 야...
-
일제 강점기 거창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 또는 민족 차별적인 식민 교육에 반대하여 등교를 거부한 운동. 일제 시대 거창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 휴학은 학교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그 배경에는 민족 차별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 항일 민족 운동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동맹 휴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대 한국 학생들은 일...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조직된 한글 신문 기자들의 모임. 거창 기자단은 거창군 내 『조선 일보』·『동아 일보』·『중외 일보』 등 한글 신문[이른바 민족지]의 지국·분국 기자들로 구성된 단체로, 표면적 설립 목적은 언론인을 포함한 언론의 권위 신장과 동업자 간 친목 도모였다. 그러나 그 주도자들이 신간회 거창 지회의 주역들이었다는 점에서 민족 운동, 사회 운동 차...
-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거창군에 거창 공립 농업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벌였던 주민 운동. 1920년대 말까지 거창군에는 중등학교가 없어 보통학교 졸업생들의 진학률이 대단히 저조했고, 타 지역으로 유학을 해야 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이에 지역민들은 1928년 거창 실업 보습 학교 창립 기성회를 조직하여 1929년 2년제 거창 공립 농업 보습 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곧 2년제...
-
1945년 12월에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결성된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의 거창 지역 농민 운동 조직. 거창 농민 조합은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산하의 대중 조직으로 결성되어 거창 지역 농민들의 토지 문제와 신국가 건설 등에 대한 요구 사항을 대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직후 토지 개혁과 소작료 3·7제 실시, 양곡 수집령 반대 등의 당면한 문제를 거창 지역...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었던 소년 운동 단체. 거창 소년회는 1927년 거창 청년회의 지원 아래 설립되어, 소년 조선 지사 운영, 소녀부 병설 등 의욕적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로부터 집회 금지 등의 탄압을 받으면서 1930년 거창 소년 동맹으로 전환되어 지역 사회에서 더욱 확고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소년층은 새...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에 설립된 거창 청년회의 회관. 거창 청년 회관은 1926년에 건축되어 일제 강점기 거창 지역 사회 운동에 구심점 역할을 했다. 거창 청년회의 설립 목표인 “정신적·물질적 신생활 자각”을 실현하기 위한 장으로 설립되었다. 1920년 설립된 거창 청년회는 기존의 아림 청년회를 계승한 것이다. 1925년 8월 집행 위원회를...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 설립되었던 조선 형평사의 지역 조직. 거창 형평사는 1923년 조선 형평사 본사와 함께 설립되어, 1926년 6월 창립 축하식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조선 형평사는 1923년 4월 진주에서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결성된 사회 운동 단체이다. 그 설립 취지문에는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
-
1919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항일 기독교 민족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경남전도대 거창지회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고운서가 설립한 단체이다. 겉으로는 개신교의 전도 활동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항일 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기독교를 전도하면서 동시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조직했다. 1919년 9월에 경상남도...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군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학교 설립 운동. 경상남도 거창군에 1909년 개교한 원명 학교는 새로운 신학문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이다. 원명 학교의 뿌리는 1907년 향교에 세워진 소학교로 거창 지역에서 최초로 근대 교육을 표방한 학교였다. 일제의 식민 통치 기관인 조선 총독부는 1910년에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전국 각지에...
-
1951년 4월 5일 한국군이 거창 지역 민간인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 파견한 합동 조사단을 공비가 한 것처럼 꾸며 습격한 사건.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거창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국회에서 합동 조사단을 파견하자, 이 사건을 덮기 위해 한국군이 북한의 공비로 가장해서 합동 조사단을 피습했다. 1951년 3월 29일 국...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정치인. 김동영(金東英)[1936.12.23~1991.8.19]은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거창 농림 고등학교를 거쳐 동국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 동성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제9대, 제10대, 제12대, 제13대에 걸쳐 국회 의원을 지냈다. 민주 자유당 원내 총무와...
-
거창의 향토 문화재 보존, 향토지 편찬, 거창 박물관 설립에 기여한 의사이자 향토 문화인. 김태순(金泰淳)[1926~2008]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김태순은 1926년 9월 28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서변리 284번지에서 태어났다. 1939년 3월 거창 심상 소학교, 1943년 3월 진주 공립 중학교, 1949년 6월 세브란스 의과 대학을...
-
1933년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에 발생한 대홍수. 1933년의 대홍수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일어난 유사 이래 최대의 홍수였으며, 사망자 8명, 가옥 파괴 300여 호, 피해액 30여만 원에 달하였다. 이때의 수해로 군민들은 시민대회를 열어 당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다. 그 결과 1936년부터 영호강 사방 공사가 시작되었다. 경상남도 서북부의 내륙 산간에 자리...
-
1946년 2월에 결성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거창 지역 지부. 거창 지역의 인민 위원회, 농민 조합, 청년 동맹 등의 좌익 세력이 1946년 이후 미군정의 탄압으로 약화되자,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국민회 소속 인물을 국회 의원과 지방 의회 의원에 당선시키는 등 거창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국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 독립...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었던 군수의 지방 통치를 도왔던 자문 기구. 일제 강점기 때 지방 행정의 자문 기구로 경상남도 거창군 안에 면 협의회가 설치되었다. 면 협의회원 가운데 2/3는 거창 군수가 임명권을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1/3은 선거를 통해 선출이 되었다. 거창군 내의 각 면에서는 열 명 안팎의 면 협의회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이 선거는 거창 군민이 모두...
-
1915년 경상남도 거창군에 호주 선교부가 교육과 전도를 위해 설립한 여학교. 호주 선교부가 본격적으로 거창에 지부를 설립하고 활동을 한 것은 1915년부터의 일이다. 호주 선교부는 거창에 1913년에 명덕 유치원과 1915년에 명덕 학교를 설립했다. 사립 학교의 교육에 대한 조선 총독부의 간섭이 심해지자 외국인 선교사들은 학교를 폐쇄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
-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회화, 서예, 현대 미술, 조형 등 미술과 관련한 포괄적인 예술 활동. 거창 지역의 미술은 거창 지역 예술인들의 활동과 모임을 통해서 발전해 왔으며, 1991년부터 한국 미술 협회 본부로부터 지부가 승인되었다. 그 이후 거창의 지역 예술 활동이 한층 활발해졌다. 현재 거창 지역 미술은 지역 예술인 양성 활동 및 다양한 전시회를 선보이고...
-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있었던, 거창 청년회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학교. 남녀 아동의 교육을 목표로 하였으며, 특히 노동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거창 청년회에서는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925년 거창 청년 회관에 노동 야학을 열었다. 이 야학을 통해 80여 명의 가난한 학생들이 보통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청년회...
-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1960년 3·15 부정 선거부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전까지 전개된 사회 변혁 운동. 1960년 4월혁명 시기 거창군민들의 사회 변혁 움직임은 먼저 1951년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울분을 표출하고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집단 행동으로 나타났다. 거창 지역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은 기성 정치 체제를 반대하는 시위를 전개하였고,...
-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1951년 봄 거창 경찰서가 과거 공비 출신들을 조직해 빨치산 토벌 활동을 벌인 일종의 우익 유격대. 1951년 봄 당시 거창 경찰서 사찰 주임이었던 경위 유봉순이 창설하였다. 사찰 유격대 대원들은 빨치산 출신으로 조직되었는데, 이 중에는 빨치산에 납치되어 강제로 빨치산 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사찰 유격대는 누구보다도 공비들의 생태와 이...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정치인. 서한두(徐漢斗)[1917.4.27~1977.11.24]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해방 후 대동 청년단 거창읍 단부 단장, 대한 청년단 거창군 단부 단장, 국민회 거창군 지부장을 지내고 1952년 초대 거창읍 의회 의원, 1958년 제4대 국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서한두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거창 공립 농업...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의 소유권을 둘러싼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문중 간 분쟁. 수승대(搜勝臺)는 조선 중종 때 요수(樂水) 신권(愼權)이 은거하며 강학하던 곳이다. 이황이 그 이름을 고쳐 준 이래 이황·신권·임훈의 시가 나란히 새겨져 탐승객에게 화제가 되었다. 이에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간 수승대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 한 차례 안의 현감...
-
국회 의원과 경상남도 도지사, 국토 통일원 장관을 역임한 거창군 위천면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정치인. 신도성(慎道晟)[1918~1999]은 거창군 위천면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제국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연희 전문학교 교수, 서울 대학교 정치과 주임 교수, 이화 여자 대학교 정치 외교학과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을 지냈다. 1954년 거창에서 제3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
-
제2대 국회 의원과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거창 출신 정치인. 신중목(愼重穆)[1902~1982]은 일제 강점기 거창군 서기, 거창읍 협의원을 지냈고, 해방 후 거창 군수,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 민선 경상남도 의원, 제2대 국회 의원, 국민회 경남 본부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대 제7대 농림부 장관, 자유당 재정부장, 1960년대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
1952년 초대 경상남도 도의원과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을 지낸 거창 출신 정치인. 신중하(慎重夏)[1918~1991]는 거창에서 태어나 홍익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2년 초대 경상남도 도의원, 민주당 거창군당 위원장,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 1970년 민주 통일당 정치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신중하는 1918년 5월 5일 거창군에서 태어...
-
해방 직후에 거창군 인민 위원장을 지낸 독립 운동가. 일제 강점기에는 3·1 운동을 벌이고, 신간회와 농민 조합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후에는 1945년부터 1946년까지 거창군 인민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신학업(申學業)[1901~1975]은 1901년 12월 16일 경상남도 울산군 언양면 서부리 15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7년 언양 공립 보통 학교...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설립된 청년 단체. 1921년 창립된 위천 금원 청년회는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 세 면의 연합 청년회로, 1923년 정태균 등이 중심이 되어 임원을 개선하고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 3면의 연합 청년회인 위천 금원 청년회는 설립 당시의 취지서가 전해지지 않아 그 설립 목적을 상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
한국 전쟁 기간 중 잔류한 인민군과 빨치산 토벌을 위해 특별히 창설되어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등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부대. 육군 제11사단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패배한 인민군 및 빨치산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이다. 1950년 최덕신을 사단장으로 한 11사단은 예하에 세 개 연대를 배속받아 전라북도 남원에 사단 본부, 경상남도 진주에 9연대,...
-
1951년 겨울 경상남도 거창군 각 면의 지서 단위로 조직된 지역 방위를 위한 의용 경찰대. 1951년 겨울 경상남도 거창군 각 면의 청장년들이 아무런 보수 없이 자기 고장을 지키기 위해 의용 경찰대로 조직되었다. 거창 인근 산간 지대로 공비의 출몰과 습격이 빈번하였지만 군과 경찰 병력만으로는 토벌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각 지서마다 의용 경찰대를 조직해 돌과 나무로 성채...
-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만(李相滿)[1898~1938]은 1898년 7월 5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64번지에서 태어났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했던 이상만은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 주비단(軍事籌備團)의 단원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군사 주비단은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의 임시 정...
-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유동(林有棟)[1900~1950]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아버지는 임필희(林苾熙)이다. 임유동은 1900년 11월 18일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北上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날 당시 서울의 중동 학교에 다니던 임유동은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중국에 망명하여 베이징(北京)의 국립 사범 대학(國立師...
-
조선 후기 이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개설되었던 5일장.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창 지역에 개설되었던 장시는 거창 읍내 장시, 양무당 장시, 고현 장시, 가조 장시, 고제 장시, 웅양 장시, 율원 장시, 북상 장시, 마리 장시, 신원 장시, 가북 장시, 하성 장시, 창남 장시 등 총 13개가 사료로 확인된다.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1770년까지 거창에는...
-
경상남도 거창에서 선구적인 기독교 전인 교육을 실천한 교육자. 전영창(全永昌)[1917~1976]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유신 체제에 반대한 교육자이다. 전영창은 1917년 12월 26일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1594번지에서 태어나 안성 초등학교와 전주 신흥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3월 신흥 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때 중추원 참의와 미군정기 때 전라북도 도지사를 지낸 행정 관료. 정연기(鄭然基)는 1891년 5월 2일 거창에서 태어났다. 1908년 11월 광남 학교 일어과, 1911년 3월 관립 한성 외국어학교 일어과를 졸업했다. 그해 조선 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914년 7월 도쿄 제국 대학 농과 대학 임학과를...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출신의 행정 관료. 정종철(鄭種哲)[1906.5.24~1976.1.3]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태어났다.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일본 교토[京都] 동산 중학, 경성 법학 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진주부청 재무과장, 진주부윤과 부산부윤을 거쳤다. 1960년 서울특별시 부시장, 경상남도 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정종철의...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평의회원 및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교육가 겸 관료. 조선 후기 척화신으로 이름이 높은 초계 정씨 정온의 후손이다. 정태균은 1884년 3월 25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조경모 참봉을 시작으로 1902년 공릉 참봉을 거쳐 1905년 정3품 통정대부에 올랐고...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 유지들의 친목 모임. 제창회는 공식적인 행정 기구는 아니지만 거창군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 지역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의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25년 8월에 거창면 협의실에서 월례회를 개최하여 거창군의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제창회는 거창군의 지역 유지들이 거창 지역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의결하기...
-
근현대 시기 거창의 농촌 계몽과 향토 문화재 보존에 기여한 선각자. 최남식(崔南植)[1920~2007]은 1920년 1월 1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거창에 정착하였다. 양정 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 김교신의 영향을 받아 재학 중 브나로드 운동에 참가했고,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의 정신에 따라 농촌 계몽 운동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다. 졸...
-
경상남도 거창군 월천면 동변리에서 태어난 정치인 겸 교육자. 표현태는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월천면 면협 의원과 월천면장을 지냈다. 해방 후 조선 민족 청년단 거창군 단부 단장과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거창 지부 간부를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 의원 선거 때 거창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거창 대성 상업 고등학교 초대 교장, 거창 상업 고등학교 이사...
-
1949년 7월 6일 경상남도 거창군 수도산 일대에서 활동하는 남조선 노동당 무장 조직 야산대가 국회 의원 표현태의 본가를 습격한 사건. 표현태 본가 피습 사건은 1949년 7월 6일 밤 경상남도 거창군 수도산 일대에서 활동하는 야산대(野山隊)[미군정 시기에 남조선 노동당이 만든 무장 조직]가 거창군 월천면 표현태 국회 의원의 본가를 습격하여 그 가족들을...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내에서, 혹은 거창 출신 인물에 의해 타 지역에서 발생한 학생들의 항일 민족 운동. 일제 강점기 학생 운동은 항일 민족 운동의 한 갈래로, 합법적 결사 운동, 문화 계몽 운동, 동맹 휴학, 비밀 결사, 가두시위 등 다양한 양상을 띠며 발전하였다. 학생 운동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린 것은 1920년대의 동맹 휴학 운동인데, 대체로 학원 내의 사소한 문제로...
-
특산물 해따지 사과와 함께 마을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이름난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의 자연 마을. 경상남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의 원봉계 마을은 2015년 문화 체육 관광부 주최 생활 문화 공동체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성공적 마을 만들기의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300년 전통의 원봉계 마을과 한국 전쟁 난민 정책 사업으로 탄생한 내당 마을은 비록 이질적으...
-
2011년 3월 충혼탑 현충 시설, 호국 무공 수훈자 전공비, 6·25 전쟁, 베트남의 참전 기념비 등을 수용하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조성한 호국공원. 호국공원은 기존의 거창 성황단 자리에 일제가 거창 신사를 지어 강제로 참배하게 하자, 거창읍 교회 목사 주남선을 중심으로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이 일어났던 현장이다. 1959년 6·25 전쟁 참전자 충혼탑으로...
-
일제 강점기 거창에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을 벌였던 해방 직후 거창 경찰서장. 황창석(黃昌錫)[?~?]은 거창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웅변에 능한 농촌 계몽 사상가로서 거창 청년 운동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1927년 4월 30일 오후 9시 거창 청년 회관에서 개최된 동아 일보 사옥 낙성 기념 동아 일보 거창 지국 현상 웅변 대회에서 “민중아, 농촌으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