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석준이고 형은 강중구(姜重求)이다. 특히 근현대 시기 진주 강씨 집안은 김천 지역에서 의사 집안으로 유명하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강영구(姜英求) 모두 의사로, 이들은 김천 지역에서 인술을 베푸는 집안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형 강중구는 김천문화원장과 한국문화원연합회장을 지내면서 김천 문화의 장을 연 인물이다. 또...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이자 초대 김천문화원장. 강중구(姜重求)[1920~1979]는 본관은 진주(晉州)로, 1920년 4월 29일 김천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뒤 김천에서 선업을 이어받아 인선의원을 경영하였으며, 1952년에는 인선병원장이 되었다. 1952년 김천에서 처음으로 열린 문화 운동 시민 집회를 주도하였으며, 초대...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수필가. 김기환(金基煥)[1930~1969]은 호는 도양(島陽)이며, 호탕한 성격으로 술을 좋아하며 기인적인 활동을 한 천재 수필가이다. 1962년 『현대문학』에 작품 「돌풀」을 발표한 이래 주로 사변적인 수필을 썼다. 1969년 섣달 그믐날 밤, 술에 만취하여 개천에 빠져서 요절하였다. 작품집으로 『돌풀』 4집이 있으며, 대표적 시는...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업가. 김동환(金東煥)은 1928년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밤실마을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학전문학교[약칭 대구의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조선대학교를 수료하였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여 한일건설산업 대표, 대신토건 대표, 한국건설협회 이사, 대신전연 대표 등을 맡아, 건설업과 전자공업계 회사를 성공적으로...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국문학자이자 교수.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호는 청계(淸溪)·청계학인(淸溪學人)이다. 아버지는 김상두이며,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사엽(金思燁)[1914~1992]은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김천초등학교[제16회]와 대구고등보통학교[현 대구광역시 소재 경북중학교·경북고등학교]를 거쳐 1938년에...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사업가. 김세영(金洗榮)[1920~2010]은 호는 세심(洗心)이며, 본관은 함녕(咸寧)이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9년 김천중학교를 제4회로 졸업하였다.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소재 함태탄광을 경영하였다. 그 뒤 대한석탄협회 및 대한광업회 이사와 가야산업주식회사 및 근해상선주...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생활한 사회학자이자 교수. 김채윤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월천초등학교를 수학하였고, 1943년부터 1945년까지 거창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부터 1952년까지 김천중학교[현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사회학과를 다녔다. 1937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철기(金哲基)[1901~1989]는 1901년 6월 25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덕가리에서 태어났다. 1918년 상주시 함창보통학교, 1921년 대구보통교원양성소를 졸업하였다. 1921년부터 1935년까지 김천보통학교, 1935년부터 1937년까지 포항 곡강보통학교,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상주 화동보통학교, 193...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이자 교육자. 김태수(金兌洙)는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와 대구의학전문학교[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김천시 용두동에 김외과의원을 개원하였다. 1956년 6월 1일 경상북도 김천의료원 원장 및 부설 김천간호고등기술학교 제2대 교장을 겸직하였다. 1975년 7월 10일 김천간호전문학교 신축 부지로 약 1만 3...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기업인. 나계찬(羅季燦)[1926~2004]은 1933년 3월부터 1939년 2월까지 아천보통공립학교[현 아천초등학교]를 다녔다. 1946년 1월 1일부터 1961년 12월 31일까지 김천경찰서에서 근무하였고, 1965년 1월 1일부터 1986년 12월 31일까지 대한교통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통일...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시조 시인. 배병창(裵秉昌)[1927~1976]은 호는 수운(秀雲)이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김천 지역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8·15광복 이후 고향 김천에서 정완영·여석기(呂石基)·김상갑(金相甲) 등과 1947년 8월에 설립된 시문학구락부[오동시문학구락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시문학구락부는 김천중학교 동창 또는...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효자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성산. 자는 응문(膺文), 호는 긍석(肯石). 배덕회의 아들로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배선규(裵善圭)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가 몸져눕자 친히 20여 년간을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그러나 효험이 없자 대덕산으로 들어가 간절히 기도해 산삼 한 뿌리를 캐어 다려서 부모를 살렸다. 그러나 부모가...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성옥환(成玉煥)[1917~2005]은 호는 일직(壹直)이며,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2년 4월 5일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38년 4월 1일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다. 1941년 12월 8일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 고원(雇員)이 되었다. 1943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관방조사과, 1944...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치과 의사이자 제2대 김천문화원장. 송재성(宋在星)[1913~1999]은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강진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27년 3월 25일 충청북도의 상촌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 5월 15일 치과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뒤 1942년 6월 1일 송치과의원을 개업하였다. 1952년 4월 10일부터 1960년 3월...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양갑석(楊甲錫)[1924~1977]은 호는 소봉(少峯)이며,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와 일본 동경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야하다 철공소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45년 우수 근무자로 장교 적영장을 받고 임관 직전 광복이 되어 귀국하였다. 1945년 9월 김천중학교 물리·수학 교사로...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정치가. 할아버지는 유성남[요셉, 1858~1936]이고, 할머니는 서분준[아나다시아, 1861~1942]이며, 아버지는 유병직[바오로, 1884~1922]이고, 어머니는 김주익[마리아, 1883~1916]이다. 부인은 문정숙[도미딜라, 1922~ ]이다. 유창국(劉昌國)[1917~2009]은 호는 백파(白波)이며, 세례명은 야곱이다....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아동문학가. 호는 사슴이다. 아버지는 윤덕용(尹德用)와 어머니 정금주(鄭金珠) 사이에서 2남 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사섭(尹史燮)[1930~2006]은 27~30세인 1957년부터 1960년까지 김천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린 김천화우회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8~35세인 1958년부터 1965년까지 대구아...
-
개항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 이병재(李秉宰)는 김천초등학교의 전신 광흥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병재와 네 명의 유지들은 1907년 10월경 청소년들을 모아 광흥보통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하였다. 또한 1907년 3월 김천황금성당 아릭스 신부와 같이 황금동 76번지에 성의학당을 개설하고 학생을 모집하여 한문, 일본어, 산수 등을 가르쳤다....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목사. 아버지는 이성춘이고, 어머니는 서팔임이며, 부인은 김정숙이다.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고, 손자·손녀는 18명이다. 이수천(李守天)[1918~2010]은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읍 습례동 속칭 식량골에서 태어났다. 1939년 10월 장래원 영수 가정교회를 통하여 기독교에 귀의한 뒤 순교 정신으로 전도 활동을 하였다. 1...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가.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가 최송설당 등 조선인에 의해 설립되자, 김천 경제를 좌우하던 일본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대일본부인회 김천분회장 이와다(岩田)는 김천, 상주, 선산 등지의 대일본부인회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답지 않은 한국 여인이 학교를 세웠으니, 우리는 하루에 1전씩 모아 버젓하게 고등여학교...
-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모필장. 이팔개(李八介)[1914~2008]는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에서 태어났으며, 김천시 용두동에 있던 ‘이진희 필방’에서 붓 만드는 기술을 18세부터 3년간 익혔다. 이진희 필방에서 기술을 익힌 뒤 붓으로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품고 전국에서 붓 제작 장소로 유명한 부산의 ‘대신당 필방’으로 가서 2년 6개월간 배웠다. 그...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업가. 이한기(李漢驥)[1894~1955]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덕포동[현 감문면 곡송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 1월 덕남서당(德南書堂)에서 수학한 뒤 1910년 3월 개령 개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3월 취성의숙 중학부 제2년을 수료하였다. 1912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1913년 12월 구국기술...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한 군인.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李應俊)[1891~1985]의 사위이다. 스승은 김철기이다. 이형근(李亨根)은 1920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김천에서 보냈으며, 김천초등학교[제22회]를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하다가 태평양 전쟁...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사회사업가. 본관은 죽산. 자는 치윤, 호는 죽정(竹汀). 전두면의 셋째 아들로 김천시 대광동에서 태어났다. 전재원(全在源)은 학덕을 겸비하였다. 묘광지에 작원정을 건립하여 시인 묵객의 유상소(遊賞所)를 마련하였으며, 영모재를 중수하였다. 또한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김산문묘의 수리를 주창하였다. 개령서부초등학교와 개령중학교 설립에...
-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언론인. 최석채(崔錫采)[1917~1991]는 호는 몽향(夢鄕)이며,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김천초등학교[제19회]를 졸업하였다. 1935년 일본 애지현 벽남상업을 나와, 1942년 동경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일본에서 보통문관 시험에 합격하였다. 해방 후 『건국공론』 편집부장, 『경북신문』 편집국 차장, 『부녀일보』 편집...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사회사업가이자 한의사. 본관은 장수(長水). 아버지는 황재구이며, 장남으로 태어났다. 황인택(黃仁澤)[1888~1961]은 지금의 김천시 지례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한학을 배워 지례에서 한의원을 개설하였다. 빈민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 주고, 산모에게 쌀과 미역을 빠짐없이 보내 주었다. 1930년부터 3년간 가뭄이 들자, 면에 사는 어려운...
-
개항기 김천 출신의 광흥보통학교 졸업자. 김천초등학교 전신 광흥보통학교가 1907년 5월 2년제로 2년간 운영하다가, 1909년에 경상북도로부터 승인을 받아 4년제 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황찬주(黃儧周)는 1909년부터 광흥보통학교를 다녔으므로, 2년제 1회 졸업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