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김천시 신음동에서 거문고바위와 부채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거문고바위와 부채바위 이야기」는 거문고를 닮은 거문고바위와 부채 모양을 한 부채바위에 대한 암석 유래담이자, 화적떼의 침입을 막고자 명당을 파손하여 마을이 가난해졌다는 일종의 풍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거문고바위와 부채바위」라는 제목으로 수...
-
경상북도 김천시 양금동에서 괘편암과 투갑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괘편암과 투갑연」은 채찍 모양이 새겨긴 괘편암(掛鞭岩)과 갑옷이 던져진 바다라는 투갑연(投甲淵)에 대한 암석 및 지명 유래담이자,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청백리 이약동(李約東)을 기렸다는 인물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이약동의 괘편투갑」이라는 제목으...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서 점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매계의 점괘」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의 점괘가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화로 실현되어 끝내 들어맞았다는 점복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매계의 점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분통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분통골 이야기」는 풍수의 말을 거역하여 서산 정씨 집안이 망했다는 풍수담이자 이 사실이 ‘분통이 터질’ 일이라서 ‘분통골’이라 불렸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분통골에 얽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
경상북도 김천시 용암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자산동] 사모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모바위 이야기」는 사모와 흡사한 바위가 있어서 고관대작과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는 암석 유래담이자 어리석은 역리가 명당을 파손하였다는 치우담(癡愚譚)이기도 하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사모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서 묘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일정씨 묘터 이야기」는 황씨와 영일정씨 두 집안이 명당 묘지 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명당 쟁취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황울산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에서 바위배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원룡장군수와 바위배기」는 신비한 우물물[원룡장군수]을 먹고 천하장사가 된 진동(陳童)이 메고 오던 큰 바위를 떨어뜨려서 땅에 박혔는데, 이곳이 아무도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가 있던 자리라 하여 ‘바위배기’라고 불렀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유천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천 이야기」는 형이 지극 정성으로 동생을 돌보며 길렀다는 우애담이자 하늘이 그 정성에 감응하여 상친사(尙親祠) 아래에서 샘물이 솟았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하늘이 점지한 젖샘」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앞부분에는 이주룡(李周龍)의 할아...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효자와 호랑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세간과 의호」는 효자 이세간(李世幹)을 도운 의로운 호랑이에 대한 동물담이다. 이세간은 1860년 사림에서 효행으로 천거하여 사헌부지평으로 증직된 인물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하늘이 아는 효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서 장수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수바위 이야기」는 땅에 발이 붙어 꼼짝 못하는 승려를 구하려고 충주 박씨 집안의 장사가 승려의 팔을 잡아당기며 힘을 주자 그곳에 박 장사의 나막신 발자국이 새겨졌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장수바위에 새겨진 발자국」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서 장지도의 제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지도의 제자」는 윤은보(尹殷保)가 스승이 돌아가시자 부친상과 동일하게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등 성심으로 제자의 도리를 다하였다는 인물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장지도의 제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서 정승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정승바위 이야기」는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김씨 부인의 욕심으로 인하여 연못에 소금을 뿌리고 정승바위를 깨뜨려 학을 쫓아냄으로써 명당을 파손하여 집안을 망하게 했다는 풍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정승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서 금강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직지사 금강문 이야기」는 헤어진 남편을 만나려고 전국의 사찰을 모조리 찾아다니다가 직지사에 쓰러져 죽은 부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금강문이 건립된 연유에 관한 연기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직지사 금강문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서 호랑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직지사 호랑이 꿈」은 호랑이를 못 살게 구는 황악산 직지사 아래에 살고 있는 호랑이 사냥꾼인 장생(張生)에게 벌을 내려서 그의 아들을 미치게 하였다는 호랑이의 응보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직지사 호랑이 꿈」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서 치마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치마바우 이야기」는 치마바위에 얽힌 오누이[남녀 쌍둥이] 사이에 근친결혼(近親結婚)을 해서 발생하였다는 재앙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치마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에서 반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탄동 반석의 꿈」은 풍수지리적으로 꿈을 해몽한 결과에 따라 터를 잡았으므로 자손이 번성하였다는 입향 시조 정씨와 임씨의 풍수담이자 인물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탄동 반석」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
-
경상북도 김천시 양금동에서 할미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할미바위 이야기」는 수호신 할미가 깃들어 있다는 암석 유래담이자, 할미바위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형은 남녀 신들의 신성한 결혼 장소였다는 김천 지형 유래담이다.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김천 지형설」이라는 제목으로 할미바위 인근의 김천 지형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취적봉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취적봉(吹笛峰) 또는 당고산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삼한[감문국] 시대 때 나라에 변란이 생겨 군사를 동원할 때 나팔을 불고 북을 치던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감문성과의 연관성은 알 수 없다. 감문국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231년 이찬 석우로를 대장군으로 하...
-
1996~1997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감천댐 건설 반대 운동. 1995년 시·군 통합 시의회에서 제적 의원 전원 참석에 28:1[당시 회의록에는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수자원공사에 댐 건설을 요청함에 따라 당시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위해 감천댐을 건설할 목표를 세웠다. 1996년 4월부터 1997년 4월...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기리는 조선 전기 제향 공간. 개령향교는 김천시 개령면사무소 옆 개령초등학교 우측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들어가면 감문산의 한쪽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다. 개령현감 정난원이 1473년(성종 4)에 현재 위치보다 400m가량 떨어진 동부리 동쪽 유동산(柳東山)[일명 관학산(観鶴山)] 밑 감천 변에 창건하...
-
조선 시대 김산군, 지례현, 개령현에 설치한 객사의 터. 객사(客舍)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館舍)이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였다. 김천 지역에는 조선 시대 김산군을 비롯해 지례현과 개령현에 각각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359번지에 설치하였던 김산군 객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미상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 있는, 이숭원을 기리기 위한 개항기의 사당. 이숭원(李崇元)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중인(仲仁)이다. 아버지는 세종 때 예조참판을 지낸 이보정(李補丁)이다. 좌참찬·형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고, 공손·검약·정직하였다. 중종 때 청백리에 뽑혔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경덕사(景德祠...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고소산성은 속문산성과 함께 신라 초기에 축성되었다. 문무동 마을 사람들은 속문산성을 숫성, 고소산성을 암성이라고 부른다. 옛날 장수 부부가 있어 숫성은 남편 장수가, 암성은 아내 장수가 하루아침에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고소산[성산]은 감문면 문무리와 어모면 구례리 사이에 있는 해발 3...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이숙기의 불천위(不遷位) 사당. 관락사(寬樂祠)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평정공(平靜公) 이말정(李末丁)의 넷째 아들이며,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사등훈(四等勳)을 받은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의 불천위 사당이다.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방초정(芳草亭)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가다 오른쪽...
-
고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교육. 1. 전근대 시기[고려·조선 시대] 고려 시대 이전에 김천 지역에 존재하였던 교육 기관은 현재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1123년(인종 4) 각 주(州)에 학(學)을 세워서 도(道)를 널리 가르치라는 조서를 내렸지만, 이 시기 김천 지역에 학교가 설립되었다는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김천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교육 기관이 설립되...
-
개항기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의 한 흐름으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운동. 대한제국 정부 시기인 1905~1910년에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실력 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이 식산흥업 운동과 교육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중 교육 운동은 정부와 민간의 합동으로 근대식 교육을 위한 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관립학교 및 사립학교의 설립이 크게 활발하...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의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들이 벌인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에 있는 9인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조선 후기의 사우. 구로재는 1820년(순조 20) 구로시사(九老詩社)를 만든 강이무(姜履武)·강체순(姜締淳)·이금성(李錦成)·이지배(李之培)·여학조(呂學祖)·이창익(李昌益)·김종태(金宗泰)·이장익(李章益)·이희(李僖) 등 아홉 명의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시작(詩作)으로 풍류를 즐기기 위...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 전승(口碑傳承)은 행위나 물질이 아니라 말로 전승되는 문화를 뜻하는데, 말로 전승되는 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비 문학이다. 구비 문학은 문자로 기록되는 기록 문학의 모태이면서 말이 존재하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구비 문학의 갈래로는 설화·민요·판소리·탈춤...
-
개항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외채 상환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 원을 갚아 자주권을 수호하려고 1907년에 시작된 운동이다. 1907년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 대한 외채가 1300만 원에 이르렀고, 국가 재정으로는 갚을 능력이 없었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경제 정책에 깊숙이 개입하여 차관을 늘려 한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켜 나가려 하였다. 이...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숙(熙叔).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만호 권흠이다. 동생으로 권응기가 있다. 권응성(權應聖)[?~1592]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우가 극진하고 지용이 출중하였다. 도량이 넓고 장부의 기상이 있어 독서하되 손오병서를 읽을 때는 “장부로 태어나 나라가...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형숙(亨叔), 호는 송학(松鶴). 안동 권씨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산군수 권세호(權世豪)이고, 아버지는 권당(權鏜)이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발한 할아버지 권세호가 벼슬을 버리고 한양에서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로 은거하였다. 권응시(...
-
명성재 는 원터마을 구성초등학교 뒤편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골짜기 아래쪽에서 보면 정면 3칸의 재실이 마치 아래를 노려보고 있듯이 서 있다. 명성재는 1727년(영조 3), 이곳 상원에서 태어나 79세까지 살다 간 이의조 선생이 만년에 선비들을 청하여 강론(講論)을 하고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등, 도의지락(道義之樂)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곳이라고 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김협으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덕승(金德升)[1637~1662]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구미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지례현감 조형은 영남에서 처음 보는 재주라 칭찬하였다고 한다. 15세에 「동국읍호부(東國邑號賦)」를 짓고, 16세에 「치격정중원문(馳檄定中原文)」을 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때 세워진 김득배의 제단비. 김득배(金得培)[1312~1362]는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국자(國滋), 호는 난계(蘭溪)이다. 불훤재(不諼齋) 신현(申賢)의 문하에서 포은 정몽주, 이우당 이경 등과 학문을 닦아 1330년(충숙왕 17)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쳤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이 침...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과 경상남도 삼천포를 잇기 위해 개설이 계획되었던 철도 노선. 김삼철도(金三鐵道)는 김천을 기점으로 하여 거창(居昌), 안의(安義), 함양(咸陽), 단성(丹城), 진주(晋州) 등 임업 지역을 종관하여 경상남도 삼천포를 연결하기 위해 개설이 계획되었던 철도 노선이며 그 궤도가 거창가도와 같았다. 김삼철도 개설 계획은 일제 강점기인 192...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성중, 호는 송헌(松軒). 김성대(金聲大)[1695~1747]는 1728년(영조 4) 무신란에 종제 김성진(金聲振), 김성옥과 더불어 원근의 창의(倡義) 병사를 모집하여 거창의 우두령을 사수하고 지금의 김천으로 진입하는 적을 막았다. 정세갑이 이끄는 금어군(禁禦軍)과 합세하여 황간을 넘어 영동, 옥천, 청주에 이...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에 조선 전기의 문신 김세강의 묘비. 김해가 본관인 김세강(金世綱)은 1450년(세종 32) 청도 운계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회석(徊碩), 자는 도정(道貞), 호는 송계(松溪)이다. 천성이 도량이 넓고 곧아 어려서도 함부로 장난을 하지 않았고 의젓하고 점잖았다. 일찍이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업하여 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김시창의 효절각. 김시창(金始昌)[1472~1558]은 해풍(海豊) 사람으로, 호는 남정(嵐亭)이다. 1472년(성종 3) 금릉군 대항면 대룡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지효하여 어머니를 모심이 지극하였고 그의 학문은 사림의 추앙을 받을 만큼 깊어 조광조의 추천으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어머니...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계온(季昷)·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는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낸 김숙자(金叔滋)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박홍신(朴弘信)의 딸이다. 김종직의 가문은 고려 말 선산의 토성이족(土姓吏族)에서 사족(士族)으로 성장하였으며, 아버지 대에 이르러 박홍신 가문과 혼인하면서 경...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서쪽 기슭의 갈항사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동탑의 기단 명문에 의하면 758년(경덕왕 17)에 조문황후(照文皇后)와 경신대왕(敬信大王)[원성왕]의 이모 모씨, 외숙인 영묘사(零妙寺)의 언적법사(言寂法師) 등 3인의 발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방초정은 1625년 이정복(李廷馥)이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 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정자에 올라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한 시가 붙어 있다. 방초정은 김천시 구성면 구성초등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다. 방초정은 1625년에 처음 건립했을 때에는 현재의 위치보...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사설 금융 기관. 김천 식산계는 1914년 무렵 각 지방에 금융 기관 설치가 성행할 때, 서울에서 내려 온 이윤용(李允用)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사설 금융 기관이다. 처음에는 계원을 모집하여 계금을 기금으로 대금 업무를 시작한 것이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어 예금 업무까지 겸하게 되어 금융 기관으로서 기능을 갖게 되었다. 1914년...
-
경상북도 김천시의 모필장(毛筆匠) 이팔개(李八介)가 만들었던 붓. 모필(毛筆)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 붓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짐승의 털을 추려 모아 원추형으로 만들어 죽관(竹管) 또는 목축(木軸)에 고정시킨 것이다. 붓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원전 3세기에 중국 진나라의 몽염이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문헌상으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확실치는 않다....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 있는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1686년(숙종 12)에 성리학의 대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허지에 세운 사당이다. 김천 율수재는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769번지 봉계마을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극락산 동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 황악산 중턱 직지사 경내에 위치한다. 직지사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 좌측의 계곡을 끼고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만세루(萬歲樓)와 일직선상에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당(禪堂)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2개의 3층탑이 놓여 있어 2탑식 중...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청암사 수도암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조성하였다는 설이 전해져 오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번지 청암사 수도암의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마주보고 위치해 있다. 수도산(修道山)의 남쪽 산허리에 위치하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조직된 가마니 제작 조합. 일제강점기 가마니의 제작은 농가의 중요한 부업의 하나였다. 1914년 이래 수산(授産) 산업으로서 경상북도가 방침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작을 장려하여 연차적으로 생산이 증가했으며 그 결과 1916년 김천군에서 김천가마니조합이 조직될 수 있었다. 김천가마니조합은 품질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생산품의 공동 검사와 함께...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샘물. 김천 과하천은 김천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유서깊은 샘이다. 1718년(숙종 44) 여이명(呂以鳴)이 저술한 『금릉지(金陵誌)』에 예부터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천(金泉)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초에 현재의 남산동 김천초등학교 일대에 역을 설치하고 이 샘 이름을 따서 역 이름을 금천역이라 했는데 역 주변에 역리(驛吏)가 거주...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축산 조합. 김천군 축산조합은 지역 축산 농가의 자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15년에 만든 축산 조합으로 현 김천축산업협동조합의 모체이다. 1907년 김천의 축산 농가들이 축우의 증식과 가축 위생의 향상을 꾀하기 위해 민간단체로 김산군 조합(金山郡組合)을 만들었으며 행정 구역의 통폐합이 이루어진 뒤 1915년에 이르러 김천군 축...
-
1914년부터 191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김천’이라는 이름은 고려 초 전국에 역을 설치하면서 이곳에 김천역이 설치됨으로써 비롯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김산군, 지례군, 개령군 세 개 군을 합쳐 김천군(金泉郡)이 되었다. 김천군 아래에 김천면, 금릉면 등 20개 면이 설치되었다. 김천면이 점차 도시 형태를 갖추면서 1917년 김천특별면으...
-
일제 강점기 일제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한 면정 자문 단체. 면 협의회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한국인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회유책으로 실시한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면정의 자문을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즉 3·1운동 이후 일제가 헌병 경찰제와 회사령을 폐지하고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독립 만세 운동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 의지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회유 조치의 하나로 등...
-
1945년 해방 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결성된 좌익 청년 운동 단체. 1945년 9월 5일 김천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전환한 후 김천인민위원회의 외곽 조직으로서 김천민주청동맹이 결성되었다. 김천민주청동맹은 김천군의 통일된 청년 운동 조직으로서 결성되었다. 김천민주청동맹의 위원장은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의 사회운동가이면서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김천그룹의...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절개를 지킨 정유한 처 영천이씨를 기리는 정려비. 영천이씨[1570~1597]는 봉계마을[현 신리]의 영일정씨선전공파 문중의 정유한(鄭維翰)[1568~1640]의 아내로 경상북도 영천의 찰방(察訪) 이대유(李大有)의 딸이다. 영천이씨의 남편 정유한은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인보(仁輔)이며 아버지는 정내신...
-
해방 이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되었던 민간 자치 담당 기구. 김천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무렵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변경되어 발족한 것이며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김천 지역의 자치를 담당한 민간 기구이다. 1945년 9월 초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가 김천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천인민위원회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위원회 부위원장이...
-
1917년부터 1931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별면. 1917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김천을 특별면으로 지정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인 면장 대신에 일본인 면장을 두게 되었다. 김천의 일본인 사회는 지방 출신 인물이 면장이 되기를 바랐으나, 기대와 달리 지방과 관련이 없는 스즈오카 세이이치[鈴岡正一]이 취임하였다. 면장의 상담역으로는 모리모토 오토지로[森本音次郞], 기...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준백(俊伯), 호는 눌암(訥菴). 이조판서 김불비(金不比)의 8세손이다. 김한영(金漢英)[1637~1712]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즐겨하였고 언행이 엄하고 무거워 어른들이 아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으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아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유운(遊雲), 호는 송정(松亭). 김해 김씨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예이다. 동생으로 김홍붕(金洪鵬)이 있는데, 호는 호은(湖隱)이다. 그리고 김홍기(金洪基), 김홍진(金洪振) 역시 김홍대의 동생이다. 김홍대(金洪大)[1599~1636]은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힘이 절륜하였고 말을 타고...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대구전매지국 김천 지역 출장소. 1921년 7월 조선전매령 실시와 동시에 대구 외 3곳에 전매지국이 설치되었다. 대구전매지국 김천출장소는 대구전매지국 관내에 4개의 출장소 중 한 곳으로 김천군 대화동에 설치되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대구전매지국의 관할 구역은 경상북도 8개 군[김천군, 상주군, 선산군, 문경군, 성주군, 칠곡군, 합천군,...
-
해방 이후 철도 파괴에 대한 경비를 위해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된 경찰대. 철도경찰대는 1946년 1월 25일 해방 이후 민족 대이동기에 처하여 운수력 부족으로 인한 혼란 사태 방지와 철도 파괴에 대한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김천(金泉)에서는 같은 해 3월 16일에 철도경찰 김천경찰서가 설치되어 서장과 수사관 3명 등이 부임하여 업무를 개시하였다. 1947년 3월 철...
-
통일 신라 시대 김천 지역의 청암사를 창건한 승려.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는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
-
1894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건 정부의 수탈과 탐학에 반대하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일으킨 운동. 김천 지방에 동학이 전파된 때는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시기였다. 1890년 11월 최시형은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용호동 김창섭의 집에 머물면서 내수통문을 각 읍에 포고하였다. 김천에서 농민군이 조직된 시기는 대체로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장악...
-
조선 후기 김천 출신 효녀. 득옥(得玉)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에서 태어났으며, 감천면 상기동 어느 집의 여종이었다. 득옥은 여든 살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느 해 큰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풀뿌리로 연명해야 하였다. 이때 득옥은 양식을 구걸하여 어머니를 봉양하고, 자신은 풀뿌리로 목숨을 버텼다. 영양실조로 기진맥진해진 어느 날 멀리 나가 양식을 구걸해 오던...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만취정은 1782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김해 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경현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만취정은 송정 김홍대가 정자를 세우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손자 김종해가 1638년(인조 16) 선조(先祖)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만취정은 정면 3...
-
원터마을은 불천위 제사와 향사, 묘사 등 한 해 동안 이러저러한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원터마을 연안이씨 종손 이철응[1945년생] 씨에 따르면, 과거에는 제사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같이 제사를 준비하고 음복도 같이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행사처럼 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월 초열흘날, 음력으로 시월 십일에 묘사를 지내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산소에...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 앞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의 도천사지(道川寺址)로 추정되는 곳에 파손되어 산재해 있던 3기의 석탑을 1974년 직지사로 옮겨 온 것으로 3기 가운데 1기는 현재 직지사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다. 탑의 양식 수법은 3기 모두 동일하다. 일제 강점기 때 도굴꾼들이...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비로전 앞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의 도천사지(道川寺址)로 추정되는 곳에 파손되어 산재해 있던 3기의 석탑을 1974년에 직지사로 옮겨 온 것으로 3기 가운데 1기는 현재 직지사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고 2기는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다. 탑의 양식 수법은 3기 모두 동일하다. 일제강점기...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녀 문랑·효랑 자매의 효각. 문랑·효랑 자매는 죽산 사람 박수하의 딸로 1709년(숙종 35)에 현풍 권력가인 청하 현감 박경여에게 선산을 빼앗겼다. 부호이자 권세가인 박경여가 박씨 선산에 자기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하였다. 이장을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박경여는 박수하 조부모의 묘를 파내고 묘를 이장한...
-
경상북도 김천시 다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미곡정사의 옥호(屋號)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 미곡정사의 ‘미(薇)’자인 이곳의 옛 지명인 미곡(米谷)의 ‘미(米)’자와 음이 같고,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채미정(採薇亭)에서 ‘미(薇)’자를 따서 전씨 선조들의 청풍고절(淸風高節)한 높은 기풍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미곡정사는...
-
경상북도 김천 지역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민속은 민중 사회에 전승되는 기층문화(基層文化) 혹은 잔존 문화(殘存文化)라고 할 수 있다. 민속을 잔존 문화라고 하는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속은 민중의 생활인 동시에 그 생활의 지속 또는 반복에서 이루어지는 공통의 습속을 말한다. 민속 문화는 전승되는 지역의 자연적 환경과...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중산리에 있는 개항기 박몽열의 처 문화유씨 충렬각. 박몽열(朴夢說)의 본관은 밀양, 영동 초강 출신의 충신이다. 박몽열은 무과를 거쳐 황간현감으로 있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자 “나라에 녹갑을 하게 되었다.” 하고 분연히 일어섰다.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가 패하여 자결을 생각하였으나 그렇게 죽는 것은 가치 없는 죽음임을 알았지만 적이 강요하...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용전리에 있었던 박상남의 처 팔거도씨 정려각. 팔거도씨 부인은 현령을 지낸 밀양인 박상남에게 시집을 갔다. 신혼 때 내외가 함께 자다 큰 호랑이가 나타나 남편 박상남을 업어가려 했다. 이를 보고 아내 도씨는 엉겁결에 호랑이의 허리를 잡고 늘어졌으나 호랑이는 남편을 놓아주지 않고 대문 밖까지 업고 나갔다. 호랑이를 잡고 늘어져 죽을힘을 다하...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시윤(施允), 호는 학촌(鶴村).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직(朴原直)이고, 할아버지는 박지(朴址)이며, 아버지는 영천부사를 역임한 박성건(朴成楗)이다. 어머니는 흥덕 장씨이고, 7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인은 박윤종(朴胤宗)이다. 박이룡(朴以龍)[1533~1593]은 어려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포(東圃). 아버지는 현감 배인범(裵仁範)이다. 외할아버지는 북일(北逸) 김익(金瀷)이다.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할머니 한양 조씨는 대장기(大將旗)가 마당에 서는 꿈을 꾸었는데, 태어났을 때 과연 장군의 골상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 있는 배흥립 삼대의 충절을 기려 세운 조선 후기 정려각. 열부 경주 김씨는 황주목사 김익의 딸로 성산인 현감 배인범의 처이다. 평소 자녀교육이 엄격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여자는 남편 따르기가 으뜸이고, 남자는 임금 따르기가 으뜸”이라 훈계하고 남편이 서울에서 병사하자 “이제 나는 너희 아버지 뒤를 따르려 하니 너희들은 충의롭게 살라.” 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원(水原). 아버지는 김천의 대표적 효자라 불리는 백시형(白時珩)이고, 형으로 백봉주(白鳳周)가 있다. 아들로 백상정(白尙淨)을 두었다. 이 집안은 3대에 걸쳐 효(孝)를 행하였다. 백봉양(白鳳陽)[1700~1758]은 지금의 김천시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9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 채소만 먹고 견뎌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어머...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백수권 처 임씨를 기리는 열녀비. 호조참의 수원 백씨 백수권(白守權)은 부인 임씨 사이에 2남 3녀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임종에 “우리 아이들이 다 어리니 그대는 부디 나를 따르지 마시오. 자식들을 잘 길러서 훌륭한 사람으로 이끄는 일 또한 장한 일이 아니겠소.”라고 하였다. 임씨 부인은 “어찌 마지막 부탁을 어기겠습니...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원(水原). 승선 백귀선의 9세손이다. 첫째 아들 백봉주(白鳳周)[1698~?]와 둘째 아들 백봉양(白鳳陽)[1700~1758], 손자인 백봉양의 아들 백상정(白尙淨)[1748~1817] 네 명이 3대에 걸쳐 효(孝)를 행하였다. 백시형(白時珩)[1664~1708]은 지금의 김천시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김산군의 군무를 맡아 보던 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는 방초정(芳草亭)은 연안이씨 문중 소유의 건물이다. 방초정은 원래 1625년(인조 3) 구성면 출신 유학자 이정복(李廷馥)이 지금의 위치보다 국도 쪽 가까이에 건립하였다. 이후 정자가 쇠락하자 1689년(숙종 15) 손자 이해(李垓)가 중건하였다. 이후 1727년(영조 3)에 다시 보수를 했으나 이듬해 무신란(戊申亂)에 파손되고...
-
김천에서 수도하다 입적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 후기의 고승이자 승병장. 자는 징원(澄圓), 호는 벽암(碧巖). 어머니는 조씨(曺氏)이다. 벽암대사(碧岩大師)[1575~1660]는 10세에 출가하여 설묵(雪默)의 제자가 되었으며, 14세에 보정(寶晶)에게서 구족계를 받은 후 불경을 공부하였다. 그 뒤 선수(善修)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따라 속리산, 덕유산, 가야산...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에 참여한 김천의 관군과 의병.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침공해 오자, 조정에서는 각 지방에 영을 내려 군사를 모았다. 김천 지방에서도 12월 19일 제색군(諸色軍)을 상주진관(尙州鎭管)에 주둔시키고 군기와 군량을 급송하였다. 김산군기감관 정은신, 김산군량감...
-
1950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집단 학살당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10월에 이승만 정부가 좌익 세력 척결을 위해 만든 단체로, 좌익의 사상 전환을 통해 생활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조직되었다. 이 연맹은 공산주의자는 물론 이에 가담했다가 형을 받았거나 기소 유예 처분을 받은 자와 자수한 사람 등을 가입시켜 사상을 전환시킬 목적으로 결성되...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울곡리에 있는, 이숭인을 기리기 위한 조선 전기의 사당. 보본사(報本祠)는 고려 말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삼은 (三隱)이라 하는데, 길재 대신 이숭인을 넣기도 한다]의 한 사람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을 불천위로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숭인은 고려 말의...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149년(고려 의종 3) 병마사 조진약(趙晋約)의 제창으로 고려에서 채택하였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보통 4㎞에서 16㎞마다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봉계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서당. 연일 정씨 선조의 선비 정신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향내 문중의 젊은이를 모아 교육하던 서당이다. 김천시에서 김천대학으로 가는 길[대학로]을 따라 가다 김천대학을 지나자마자 삼락동이 나오고 산을 끼고 돌면 예지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에 봉곡이 있으며 그곳에 봉암서당이 있다. 1...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연화지 가운데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봉황대는 김천시 교동 연화지 가운데 위치한 정자로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장소이다. 연화지는 조선 전기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된 저수지였다. 봉황대의 건립 연대는 미상이며 창건 시 읍취헌(揖翠軒)이라 했는데 김산군수 윤택이 봉황이 나는...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부항령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성터가 있는 이 산은 신라 영토로서, 삼국 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황악산(黃岳山)과 삼도봉(三道峰)을 잇는 연속된 준령의 연장선상의 하나이다. 평지와는 달리 백제가 패망할 때까지 신라와의 국경으로서 거의 변경이 없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산118-3번지 가목마을 서쪽 산 정상에...
-
1960~1961년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청사 이전을 둘러싸고 유촌리 주민과 사동리 주민 사이에 발생한 충돌 사건. 1959년 부항면의회는 김천시 부항면 유촌리에 있던 부항면 청사를 사동리로 이전하기 위한 안건을 의회에 상정하였다. 표결 결과 7대 4로 부결되자 당시 면의회 의장 김영범이 사사오입을 적용하여 가결을 선언하였다. 부당한 가결로 처리된 청사 이전에 관한 사항을 국회의...
-
경상북도 김천시 양금동 하로마을의 모암산에 있는 사모(紗帽) 모양의 바위. 사모바위는 하로마을 모암산(帽岩山) 동남쪽 정상에 있는 사모 모양의 바위로서 주민들이 와서 소원 성취를 비는 민간 신앙 유적이다. 사모바위와 관련하여 2가지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바로 「사모바위 이야기」와 「할미바위 이야기」이다. 참고로 할미바위는 김천에서 거창으로 가는 국도를...
-
1960년 4월 19일을 전후로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 운동. 대구의 2·28민주 운동에 이어 마산의 3·15부정선거 반대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갈 때, 김천에서도 4·19혁명 이전부터 김천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산발적이나마 학생들이 시위를 준비하기 시작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기 일쑤였다. 4·19혁명직후 김천고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시내...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는, 배흥립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 배흥립(裵興立) 장군은 1546년 김천시 조마면에서 출생하여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조방장(助防將)에 임명되어 선봉장으로 활약하였다. 칠천도(漆川島) 싸움에서는 단선으로 적을 막았고, 한산도 9전 9첩 때와 행주(幸州)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선봉에...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서 태어난 효자 3대를 통칭하는 상징어. 삼세효(三世孝)는 박수(朴壽), 박수의 손자 박상태(朴尙泰), 증손 박천일(朴天一) 등 삼세(三世)에 걸쳐 나온 효자를 일컫는다. 박수는 순천 박씨 수종의 후예로 지례현 출신이며 자는 수옥이요, 호는 용강(龍崗)이다. 그의 손자 박상태는 호가 무명재(無名齋)이다. 박수의 증손 박천일은 호가 천류정이다....
-
1919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에 의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세계사적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였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이 있었다. 이런 국내외적...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에 있는 토석 혼축의 성터. 김천 지례 사람들에 의하면 당초 지례면 상부리에 도곡리(道谷里)로 돌아가는 길 오른쪽 해발 140m의 끝 봉우리에 성이 있었다가 뒤에 지례면 교리 지금의 지례중고등학교 뒷산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해발 160m의 산봉우리에서 50m쯤 내려온 산 동북쪽 둘레에는 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있는데...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3리에 있는, 이세간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 남강(南岡) 이세간(李世幹)은 본관이 농서(隴西)로, 1664년에 태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웠을 때에는 겨울에 살구꽃이 피어 약으로 썼고, 아버지가 돌아가 시묘살이를 할 때에는 눈보라 치는 엄동에 호랑이가 와 감싸 주어 동사를 면하고, 3년간의 시묘를 호랑이...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 형태의 민간 서사를 가리키는 말로, 통상 그 갈래를 신화(神話), 전설(傳說), 민담(民譚)으로 삼분하고 있다. 1. 신화 신화는 일반 민중에 의해서 전승되는 집단적 창작물이며, 그 내용은 민족적이고 민중적이어서 한 민족의 생활과 풍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는 민족 단...
-
1949년 경상북도 김천시와 김천군이 분할되기 직전 김천군에서 섬유 작물 증산을 위해 수립한 계획안. 섬유작물은 의료 자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관건을 갖추고 있으나 해방 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증산 의욕이 저하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경지 면적이 크게 줄고, 수확량이 격감하게 되었다. 이에 군내 의료 수급 사정이 극도로 핍박함에 따라 자급자족 상태를 확립하여 민생 문제 해결에 기여해...
-
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천 지역에 현존하는 성지들은 대부분이 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축조되었다. 취적봉 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송북리 백운산[옛날에는 속문산이라 일컬어졌음]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9, 김산군(金山郡) 성곽조(城郭條)에 “속문산성 석축주위이천사백오십오척 고칠척 내유이천이지 유군창(俗門山城 石築周圍二千四百五十五尺 高七尺 內有二泉二池 有軍倉)”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 시대에 속문산성은 어모현에 속했다....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송북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송북동 성북곡 선돌은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선돌은 대부분이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
조선 전기 김천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성경, 호는 남촌(南村). 쌍천당 송유(宋愉)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송충기(宋忠己)이다. 송천상(宋天祥)[1556~1626]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태어나 등곡(藤谷)[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으로 옮겨 살았다. 임진왜란 때 지례향교(知禮鄕校)가 불에 타자 오성(五聖)의 위판(位版)과 공부자(孔夫子)의 영...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거리에 있는 김숙련(金淑蓮)을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승유재는 김숙련(金淑蓮)을 추모하여 1849년(헌종 15)에 그의 후손 김치규(金致奎)와 김치일(金致一)이 건립한 사당이다. 단옹(短翁) 이공(李公)이 상량문(上樑文)을 짓고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현판을 지어 쓰고,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이 기문(記文)을...
-
조선 시대 김천 지역의 효부. 심기(沈箕) 처 정씨(鄭氏)는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정손(鄭遜)이고 처녀 시절부터 후덕한 덕을 갖추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개령에 살던 선비 심기와 혼인하였다. 정씨는 시부모를 친부모 섬기듯이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부창(浮脹)으로 수년간 몸져눕자, 하루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다. 어느 날 밤 정씨를...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 있는 최익대(崔益大)의 영정을 모신 일제 강점기 사당.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바깥새레 남쪽 끝에 위치한다. 1800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의 임경업(林慶業) 장군 사당에 있던 최익대의 초상화를 이곳으로 옮겨 놓았으며, 1924년 사당을 건립하여 최익대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여재문(如在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대...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 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우(聖遇), 호는 감호(鑑湖). 아버지는 여응구(呂應龜)이다. 여대로(呂大老)[1552~1619]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문하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을 이루려는 뜻이 남달랐다. 아버지는 늘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을 빛낼 자식”이라고 격려하였다. 8세에 모친상을 당...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여대로의 창의비. 여대로(呂大老)는 성산여씨 여응구(呂應龜)의 아들로 1552년(명종 7)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감호(鑑湖)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고향에서 집안의 노복과 마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 곽재우(郭再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명세(鳴世), 호는 수봉(壽峰).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저징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이명(呂以鳴)[1650~1737]은 김천시 교동에 있던 양사당(養士堂) 창건을 주도하여 김천 지역의 유학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와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병. 여중룡(呂中龍)은 185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무현, 호는 남은(南隱)이다. 여중룡은 40세 때인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허위(許蔿), 강심형(姜心馨), 조동석(趙東奭) 등과 함께 김산향교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부항면 대야리에서 이를 제지하려는 관군과 싸우다 지고 말...
-
개항기 김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견재, 호는 이은(二隱)이다. 성산 여씨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석희이다. 여채룡(呂彩龍)은 1866년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금평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바르고 지기가 곧았으며, 여진룡(呂震龍)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혀 문장이 좋았다고 전한다. 을사...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6월 27일 서울까지 진격해 온 북한 인민군은 이후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7월 31일에는 김천 근교까지 내려왔다. 이날 인민군 선봉대는 무주에서 산을 타고 구성면 송죽동 궁장으로 넘어와 이곳을 지키고 있던 충청북도 경찰과 미군을 습격하였다. 김천 지역에 대피령이 내려진 것은 8월 1일로, 이날 시내 각 기관과 일부...
-
원터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방초정(芳草亭)이다. 또한 방초정 바로 앞에는 최씨담(崔氏潭)이라 불리는 못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이정복 처 화순최씨 정려각’이 자리하고 있다. 화순최씨는 방초정공(芳草亭公) 이정복(李廷馥)의 부인으로, 원터마을에는 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화순최씨는 관...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이언의(李彦儀)를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영모재는 이언의(李彦儀)를 추모하기 위해 성주 이씨(星州李氏) 문중에서 1841년(헌종 7)에 건립한 사당이다. 이언의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인조(仁祖)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청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참전하였다가 경...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여권 처 성주이씨의 효열각. 성주이씨(星州李氏) 부인은 함양인 오여권에게 시집가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남편이 병들자 백방으로 간호하는 한편 자기 목숨을 대신해 달라고 하느님에게 빌었으나 보람 없이 사망하자 삼종지예(三從之禮)의 부도를 좇아 스스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성주이씨는 병자호란 때 백의종군하다가...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용두동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단양(丹陽). 안정공(安靖公) 우홍강(禹洪康)[1357~1423]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우익선(禹益善)이다. 우상학(禹象學)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빈농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후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감문면 빈민들의 호구세를 대신 내주었고, 사재를 털어 감문면의 구야평과 하포평의 제방을 쌓았다. 또한 금오산 약...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양효위사(兩孝爲師) 윤은보와 서즐의 정려각. 고려가 망한 후 지례에 낙향해 제자들을 가르치던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에게는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와 남계(南渓) 서즐(徐騭)이라는 각별한 두 제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늘 “우리를 낳은 분은 우리 부모이지만, 우리를 세상에 사람답게 길러준 분은 선생님이시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강양(江陽). 자는 여앙. 연안군(延安君) 이숙기의 7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윤서이다. 아들 이영진(李榮鎭)도 김천 지역에서 효자로 이름이 났다. 이구(李坵)[1598~1664]는 1627년(인조5)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에 입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으며 천품이 총명하며 지기가 고결하고 고상하였다,...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으로 우거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겸보(謙甫), 호는 우봉(牛峰). 증조할아버지는 이집(李集),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고,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동생으로 이극감(李克堪)·이극돈(李克墩)·이극균(李克均)이 있다. 이극배(李克培)[1421~1495]는 1447년(세종 2...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풍기(豊基). 아버지는 진희태(秦喜泰)이다. 남편은 연안 이씨 이기영(李丌永)이다. 이기영 처 진씨(秦氏)[1912~1934]는 18세에 연안 이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시부모님을 모시는 데 극진하였고, 동기간 우애가 깊어 온 집안의 복으로 여겨졌다. 남편이 병들자 하늘에 자기 목숨과 바꾸어 주기를 빌었으나, 차도가 없어 대구에...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이거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아버지는 사헌부장령과 보주지사(甫州知事)를 역임하고 병조판서에 증직된 이백겸(李伯謙)이고, 어머니는 온양 방씨이다. 부인은 곡산 한씨로 장인은 경상도관찰사와 의정부좌찬성을 역임한 한옹(韓擁)이다. 정경부인 곡산 한씨와의 사이에 5남 1녀를 두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관직에 나아갔다. 장남 이숙황(李...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정약, 호는 이원재(二願齋). 아버지는 이수함이다. 이병중(李秉中)[1762~1848]은 명성당 이의조(李宜朝)와 당대 석학인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나,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오로지 중용학 공부에 힘썼다. 예학에도 밝아 『경예문답(經禮問答)』과 『예의해집(禮疑解輯)』 등의 저서가 있다. 승정원좌승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소헌(素軒).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흥선이다. 동생으로 이상필(李尙苾)이 있으며, 형제가 모두 김천 지역에서 효행을 행하였다. 이상익(李尙益)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동생 이상필과 함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경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 집...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자형이고, 호는 아헌(雅軒).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흥선이다. 형으로 이상익(李尙益)이 있으며, 형제가 모두 김천 지역에서 효행을 행하였다. 이상필(李尙苾)은 형 이상익과 함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경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 집 밖에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영은(嶺隱).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이다. 아들로 효자인 이숙봉, 손자로 이용재·이용손을 두었다. 아들 이숙봉은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고 피를 입에 넣어 주어 어머니를 살렸으며, 어머니가 작고한 후 시묘할 때 호랑이가 보호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손자 이용재·이용손도 여름날 어머니 김씨의 종기 난 자리...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명필가. 본관은 성산(星山). 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후, 두문불출하여 절의를 지킨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성동(李星東)[1662~1702]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에서 태어났다. 벼슬은 통사랑에 이르렀으며, 문장뿐 아니라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특히 서도에 능하여 개령객사(開寧客舍)에 ‘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정, 호는 악계(樂溪). 할아버지는 이명원(李命元)이다. 이수빈(李璲彬)은 영조 때 사람으로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언행이 정직하고 효성과 우애가 하늘로부터 타고난 듯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효제(孝悌)가 뛰어났다. 부인 곽씨와 더불어 부모를 정성으로 섬겼는데,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의원이 병을 낫게...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양오, 호는 진암(進庵). 형으로 이수암이 있다. 이수호(李遂浩)[1744~1796]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족숙인 명성당 이의조(李宜朝)와 당대 석학인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예학과 경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이수호가 저술한 역서 『소학증해(小學增解)』는 간행된 후 널리 반포되었으며, 학자들의 교...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희보(姬輔).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말정(李末丁)으로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동생으로 이숙형·이숙규·이숙기(李淑琦)·이숙함(李淑瑊)이 있다. 형제들이 모두 문장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는데 이숙황·이숙형·이숙규·이숙함은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숙기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숙황(李淑璜)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용. 증조할아버지는 이창하이다. 이안신(李安臣)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기개와 도량이 탁월하였으며 성품도 관대하고 어질어 권선을 낙(樂)으로 삼았다. 흉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우리만 배불리 먹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라면서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사람들을 도왔다. 1832~1...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효녀. 이약동 현손녀는 본관이 벽진(碧珍)으로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에서 태어났다. 식견이 놀랍도록 뛰어났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집안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어느 날 밤, 화적 떼가 그녀의 집을 쳐들어와 불을 지르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도적에 맞아 항거하던 부모는 도적의 칼에 맞아 숨을 거두었고, 그녀는 마루 밑에 숨어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화범(華範), 호는 송호(松湖). 이영보(李英普)[1768~1821]는 지금의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질박하고 부모를 모시는 데 효성을 다하였다. 10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하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어른 못지않았다. 이 때문에 문상 온 사람들이 그를 더욱 갸륵하게 여겼다 한다. 그리고...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영보의 효자각. 이영보(李英普)는 전서공(典書公) 이존인(李存仁)의 후예로 벽진 이씨 집안에서 1712년(영조 44)에 태어났다. 자는 화범(華範), 호는 송호(松湖)로, 천성이 절박하고 부모를 모심에 삼가고 조심하여 효성을 다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 섬기기를 지극히 하여 마을에서는 그가 사는 마을 한송정...
-
조선 시대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양(江陽). 자는 화중(華重), 호는 설곡(雪谷). 아버지는 이구(李坵)이다. 이영진(李榮鎭)(1629〜1698)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병들어 목숨이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 아버지가 작고한 후에는 예제(禮制)에 소홀함이 없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맹종(孟宗), 호는 경호(鏡湖)·명성당(明誠堂). 아버지는 이윤적(李胤積)이다. 이의조(李宜朝)[1727~1805]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방초정(芳草亭)을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후진 양성에도 전력하였다. 부친의 유명을 따라 13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선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대유, 호는 용호(龍湖). 이숭인(李崇仁)의 후예이다. 이의형(李宜亨)[1800~?]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에서 태어났다. 용호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향리와 도에서 학문이 뛰어나다고 추천하여 동몽교관에 제수되었다. 『학설(學說)』 2권, 『잡록(雜錄)』 15권 및 일...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호원(浩遠), 호는 초당(草堂). 증조할아버지는 이구령이다. 이장원(李長源)[1560~1649]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7~8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의 여막(廬幕)에서 기거하는 3년간 흰죽만 먹으면서 시묘를 하였을 만큼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또한 예절이 어른보다 나은 바가 있었다고 한다....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순최씨의 정려각. 화순최씨는 화순 사람 최율(崔律)과 상산 김씨(商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연안 사람 이정복과 혼인했으나 신행 전에 임진왜란을 만났다. 적이 들이닥치자 죽더라도 시가(媤家)에서 죽겠다고 하고 감천면 하로에서 가족과 함께 구성 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상좌원에 있는 시가에 들리니 이미...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여, 호는 해재(海齋). 아버지는 이유(李遊)이다. 집안이 대를 이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사세 학행, 사세 유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유도 형 이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잠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 대에 학행으로 안음현 훈도에 제수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 이지남[자 성지, 호...
-
조선 후기 김천의 향토지를 저술한 문인.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자형(子亨), 호는 허주자(虛舟子). 이선동(李善仝)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명필이다.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1658~1721]는 여이명(呂以鳴)과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의 향토지인 『금릉승람(金陵勝覽)』을 저술하였다. 경학(經學)에 밝고 문장이 탁월하여 유명하였으며, 특히 시사(時事)...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병자호란 이후 절의를 지켜 개령 삼봉에서 두문불출한 숭정처사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하(李𩡘)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에서 태어났다. 1651년(효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문과에 급제하였다. 1660년(현종 1) 사헌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백, 호는 천고(闡皐). 연안 이씨 가적(家籍)의 종손이다. 이현구(李賢求)[1808~1874]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김천 지역에서 후학의 교육에 힘써 유풍(儒風)을 쇄신하였고,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실행하였다. 저서로 『용학연의(庸學衍義)』가 있다....
-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우석헌(友石軒). 아버지는 이재균이다. 이현문(李鉉汶)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임천리에서 태어났다. 당대 석학이던 허전(許傳), 장복추(張福樞) 등과 교류하며 학문을 연구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사재를 털어 『이서작해(李書酌海)』, 『역대요회(歷代要會)』, 『송략(宋略)』 등을 편찬하였다....
-
조선 시대 김천 지역의 효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회원(李會元)이다. 연안 이씨 이현식(李鉉湜)과 혼인하였다. 이현식 처 전주 이씨는 18세에 시집을 가자마자 집안이 갑자기 망하였다. 시어머니께 “제가 잘못 들어와 집안이 이렇게 되었사옵니다. 이 불효를 어찌하오리까?”라고 말하면서 가정의 불운을 자신의 부덕한 탓으로 돌렸다. 그녀는 남편의 뜻을 좇아 낮에는...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최무길(崔武吉)의 주도로 벌인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
1945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본국으로 철수하던 일본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한 사건.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만주에서 패전하게 되자 관동군이 일본 본국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철수 도중 김천역을 출발한 기차에서 김천 시내를 향해 기관총으로 발포하였다. 해방 직후인 8월 18일 김천군 김천극장에서 김천건국준비위원회[이하 김천건준] 결성 대회가 열렸고, 이어...
-
조선 시대 김천 지역에 설치한 장교청. 장교청(將校廳)은 장교들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장교청(將校廳)은 ‘무청(武廳)’이라고도 한다. 이청(吏廳)의 아전들이 수령을 보좌하여 지방 행정을 맡고, 군사·경찰은 장교청에서 담당하였다. 인리청(人吏廳)에는 육방이서(六房吏胥)가 행정을 분장하고, 장교청에는 군교가 있어 군사는 군관이 담당하고, 경찰권은 포교가 분장하였다...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생산되는 감자를 이용하여 만든 향토 음식. 김천시 조마면은 기원전 82~57년에는 변한(弁韓)의 12국가 중 주조마국(走漕馬國) 또는 졸마(卒麻)라 일컬었다가 742~756년 신라 시대에는 상주목 개령군에 속한 조마부곡으로 불리었다. 1781년에 『금릉지(金陵誌)』에는 김산군 조마남면(助馬南面)으로 기록되었다. 1914년 김산군 조마...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순거.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이고, 아버지는 참의 장곤이다. 장홍한(張鴻翰)[1571~1594]은 의기가 초인하고 지략이 절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승 찬희와 그 상좌승 수정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10월에는 황간의 의병장 박이룡과 더불어 김산, 지례, 개령, 선산 네 개 읍의...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중수, 호는 나옹(懶翁). 수헌 전흥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승정원좌부승지를 지낸 전번이다. 전만령(全萬齡)은 지금의 김천시 대곡동[옛 미곡동]에서 전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486년(성종 17) 성균관 생원으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김천시 다수동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특...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충복(忠僕)이자 효자. 전순기(全順己)는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봉산면 조익의 노비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장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나 성장하여 3년간 추복(追服)을 하였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어머니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약을 달여 드렸고, 어머니가 위독할 때에는 손가락을...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구의 기념비. 정구 기념비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고향 성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에 늘 들르던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鳳谷寺)를 오르내릴 때 지팡이를 기대어 놓고 쉬어 가던 곳에 1826년경 후학들이 정구의 덕을 기리고자 세웠다. 비석을 세우기 시작하여 20년이 지나 비석을 완성하...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출토된 정부인 문화류씨의 묘지명 지석. 문화류씨는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의 부인이자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의 어머니이다. 1459년(연산군 1)에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위는 그의 어머니가 일생동안 많은 부덕을 남긴 것이 모두 없어질까 걱정하였다. 이에 문화류씨의 숨은 덕행(德行)을 드러내어 먼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보(仲輔), 호는 천방자(天方子)·수옹(睡翁).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鼐臣)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생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사위이다. 정유성(鄭維城)[1569~1645]은 총명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촉망받던 제자로, 율곡의 학통을 이을 기량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서룡(鄭瑞龍), 자는 인보(仁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乃臣)이다. 정유한(鄭維翰)[1568~1640]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다. 13세에 시구(詩句)를 맺을 줄 알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나서 일어서지를 못할 때 삼촌과 함께 병간호에 치성을...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찰방 이대유(李大有)이다. 정유한(鄭維翰) 처 이씨(李氏)[1570~1597]는 14세에 영일 정씨 집안의 정유한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예모 있는 행동거지로 집안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8일, 왜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쫓겨 충청북도 괴산에서 흑운산(黑雲山)[...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 있는 정일 부부의 정려각. 영일 사람인 진사 정일(鄭鎰)의 자는 경중(輕重), 호는 송암(松巖)인데, 1556년(명종 11) 2월 16일 영일 정씨 정사신(鄭思信)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3년간 죽만 먹으며 애도하여 널리 효자로 이름이 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정일은 움직일 수도...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정임열(鄭任悅) 처 엄씨(嚴氏)는 엄신서의 질녀로,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탄동마을[현 김천시 감문면 관덕리 탄동]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남편과 함께 충청도로 피난을 갔다가 왜적에게 쫓겨 급히 배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엄씨는 배에 탔지만, 남편은 사람에 밀려 강둑에 남게 되었다. 엄씨가 뱃사공에게 한 사람만 더 태워 달라고 하였지만,...
-
조선 시대 김천 지역의 열녀. 이씨의 남편 정준혁(鄭俊赫)은 혼인 전부터 시름시름 앓아 몸이 약해 결혼식도 겨우 치를 정도였다. 결혼한 며칠 후 아직 친정에 있던 이씨는 남편의 부음 소식을 듣고 말았다. 이씨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의 봉양을 위해 차마 죽을 수 없었다.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시부모 앞에서 자신까지 죽는다면, 남편에게는 열녀이지만...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유중(悠仲). 아버지는 정란이다. 정탁(鄭逴)[1517~1564]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때 이이, 김성일, 이원익 등과 동방(同榜)이라 교분을 맺고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여 친분이 두터웠다. 일찍 노비 문제로 권문세가로부터 무고를 당하였지만, 향리뿐 아니...
-
여러 가지 종이의 생산과 관련된 경상북도 김천시의 산업. 현재 김천시에 속해있는 과거 금릉군 구성면 흥평동 일대는 향토의 유일한 한지 생산지로 예부터 이름이 났으나 한지에 대한 수요 감소와 함께 생산도 줄어들게 되었다. 1983년 발간된 『내고장 우리향토』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흥평동 일대에서 대를 이어 한지를 생산해 오던 집들이 대부분 한지업을 버리고 전직한 상태였으며 서너 가구...
-
해방 직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산하 김천 지역 위원회.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 전후 국가 건설 능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근대 통일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조직한 기구로,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조국 광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1945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여운형을 중심으로 건국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0월 산업 개발을 위한 조선총독부의 금융 정책에 따라 설립된 장기 투자 금융 기관이다. 1906년 한국 칙령 제12호 은행 조령 및 칙령 제13호 농공은행 조령에 따라 자본금 14만 원으로 주식회사 대구농공은행이 설립되었다. 1908년 대구농공은행은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운수주식회사의 김천 지역 지점. 1930년 5월 김천 지역의 운송업자들은 1차 회합을 통해 통합을 결의하고 평화동 김천역 앞에 조선운수주식회사 김천출장소를 설치한 후 같은 달 16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그러나 통합과 더불어 운송업자들이 운영 방안 등 여러 문제로 인한 통합파와 비통합파 간의 갈등으로 다시 분열되었다. 이후 1931...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에 있는 개항기 조응방의 효자각. 조응방(曺應邦)은 조선 후기에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출생 연대는 미상이나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자하여 아랫사람에게도 은혜를 크게 베풀었다고 한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조응방은 특히 앉은뱅이였던 부친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 썼다. 겨울에 눈 위에 꿇어 앉아...
-
조선 시대 김천 출신 효자. 조천민(曺天民)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천성이 근엄하고 순수하였으며 효성스럽고 인자하였다. 임진왜란 때 나이 든 어머니[『김천군지(金泉郡誌)』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어머니로, 『속수금릉지』와 『금릉지(全)』에서는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음]가 적에게 잡혔을 때 절조를 지키면서 적의 무도함을 꾸짖으며 저항하자, 적이 그녀를 한 칼...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
6·25전쟁 중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일대에서 공산군과 경찰 사이에 벌어진 전투. 6·25전쟁 당시 김천을 점령했던 공산군은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하기 시작해 산악 지대로 숨어들었다. 그 가운데 불꽃사단이라 부르는 공산군 3000여 명이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 주둔하면서 면 소재지에 있던 국군 제877경비대와 잦은 전투를 벌였다. 1950년 10월 24일 밤 자정 무렵...
-
1948년 10월 19일 경상북도 김천 지방의 빨치산이 증산지서를 습격한 사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정부가 좌익계 인사를 검속하기 시작하자 좌익계 인사들은 검거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 무장 투쟁을 벌이는 빨치산이 되었다. 이들은 1948년 10월 19일 여순 사건을 계기로 증산지서를 습격하여 지서장 등 경찰관 4명을 사살하고 지서 건물을 불태운 뒤 도주하였다. 증...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의 지례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전각. 지례향교는 김천 시내에서 경상남도 거창군 방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가면 김천시 구성면에 있는 구성지방산업단지를 지나 고개 너머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례향교는 1426년(세종 8)에 지례현감 정옹이 객사 동쪽에 창건하고, 1485년(성종 16)에 지례현감 김수문(金秀文)이 인재 양...
-
원터마을 가운데에 자리한 구성초등학교 앞에 지어진 숭례각에는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는 가례증해 판목(家禮增解板木)이 보관되어 있다. 가례증해 판목은 1758년(영조 34) 이의조(李宜朝)가 관혼상제의 예법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주자의 4대 예서(四大禮書) 중 하나인 『가례(家禮)』를 예를 들어 해설하고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1772년(영조 48...
-
연안이씨 집성촌인 원터마을은 조선 성종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琦)[1429~1489] 선생을 입향조로 모시고 있다. 이숙기 선생은 연성부원군 이말정의 아들로, 구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용맹하며 큰 뜻을 품었던 이숙기 선생은 1453년(단종 1) 25세의 나이로 무과에 일등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인...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에 있는 신라 시대 불전. 청암사 대웅전은 신라 시대인 859년(헌안왕 3)에 도선(道詵)이 건립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이후 조선 시대인 1647년(인조 25)에 화재로 소실되자 사명대사가 2차 중건하였으며, 1782년(정조 6)에 다시 소실되어 20여 년 후 환우(喚愚)와 대운(大運)이 3차 중건을 하였...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박원형의 불천위(不遷位) 사당. 청현사(淸顯祠)는 문과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진 죽산 박씨(竹山朴氏) 박원형(朴元亨)[1411~1469]과 그의 부인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후손 대대로 끊임없이 제사를 지내라는 나라의 특명이 내린 불천위의 사당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1. 구한말 김천 지역에서 초등 교육이 시행된 시기는 구한말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을사조약이후 ‘근대교육=국권회복’이라는 인식이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군수, 계몽단체 회원, 상인 세력, 교회, 사찰 등 다수 세력에 의해 학교가 설립되었다. 구한말 김천 지역에 세워진 학교로는 송천학교[1901], 양성학교[1902],...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호는 원로(元老). 증조할아버지는 최원지(崔元之)이고, 할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 최자하(崔自河)이며, 아버지는 생원(生員) 최안선(崔安善)이다. 어머니는 나상지(羅尙之)의 딸이고, 부인은 권순(權循)의 딸이다. 최사로(崔士老)[1406~1469]는 1406년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1434년(세종 1...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사겸(士謙). 아버지는 최응화이다. 최익대(崔益大)[1719~1783]는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윗대 조상인 수우당 최영경이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집안이 몰락하였다. 그는 “빛나던 가문은 빛이 없어지고, 당장에 끼니를 잇지 못하시는 늙으신 부모님이 계신다. 붓을...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이조판서에 증직된 화순 최씨 최자강(崔自江)과 혼인하였다. 아들은 절의(節義)로 알려진 최선문(崔善門)이다. 진주강씨의 남편 최자강이 중부령(中部令)으로 있던 37세에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남편을 뜻을 좇는 것은 자식을 훌륭히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라고 손가락질...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범구(範九), 호는 남애(南涯). 증조할아버지는 최하대이고, 아버지는 최성수이다. 아들로 김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을 두었다. 최창락(崔昌洛)[1832~1886]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12월 김천시 안서동[현 조마면 신안리]에서 동민들과 함께 마을의 규...
-
조선 전기 김천 출신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자경(子慶). 아버지는 최사로이다. 아들로 최중홍 등 다섯 명을 두었고, 증손자에 수우당 최영경이 있다. 최한정(崔漢禎)[1427~1486]은 1456년(세조 2) 생원이 되고, 1459년(세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과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463년(세조 9) 중시에 급제하였다. 사헌부헌납, 홍...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에 있는, 이곽을 기리기 위한 개항기의 사당. 이곽(李廓)[1590~1665]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태종의 아들 경녕군(敬寧君) 이비(李비(示+非))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이유인(李𥙿仁)이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1636년(인조 14) 이곽이 회답사(回答使)가 되어 청나라 심양(瀋陽)에 갔을 때, 심양에서는 국호를 청(淸...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문충공(文忠公) 김득배(金得培)를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충의재는 문충공(文忠公) 김득배(金得培)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867년(고종 13)에 건립한 사당이다. 김득배의 본관은 상산이고, 호는 난계(蘭溪)이며, 아버지는 판전의(判典醫) 김이록(金李祿)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을 지내고, 전객...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 있는 이숭원(李崇元)을 비롯하여 연안 이씨(延安李氏) 선조를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충효당은 1870년(고종 7)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도동서원(道洞書院)이 철폐되자 충간공(忠簡公) 이숭원(李崇元)을 비롯해 서원에 배향하였던 선조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기 위해 1871년에 연안 이씨(延安李氏) 문중에서 건...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에 있는 정유성(鄭維城)이 건립한 조선 전기의 사우. 태평재는 세조 때 홍문관교리,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만취당(晩翠堂) 정이교(鄭以僑)가 터를 잡고, 1569년(선조 2)에 그의 후손 정유성(鄭維城)이 건립한 영일 정씨(迎日鄭氏) 문중의 사당이다. 태평재는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에서 북쪽으로 철도 굴을 지나 1㎞ 쯤 떨...
-
1919년 경상북도 김천 출신을 비롯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사건.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림 세력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내세워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 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중산리에 있는, 송천상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 은진 송씨 남촌(南村) 송천상(宋天祥)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지례향교에 있던 오성의 위패를 호위하여 유교의 도의를 지켰다. 이에 그 은덕을 갚기 위해서 1860년(철종 11)에 지방의 유림이 모여 의논하기를 “어찌 편안하게 모시고 제사 드릴 곳이 없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