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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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Jungnim-ri Songam Halmeoni Harabeoji Seondol |
영어의미역 | Grandma and Granddad Menhir in Jungnim-ri Songam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송암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화섭 |
성격 | 마을 선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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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자연석 |
건립시기/연도 | 조선 후기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송암마을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송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당산 선돌.
[개설]
송암마을은 주산이 옥녀봉이며, 마을의 풍수 형국이 옥녀 직금형(玉女織錦形)이다. 옥녀 직금형은 옥녀가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는 형국을 말하는데, 옥녀가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베를 짜는 형국이다. 마을 오른쪽 야산 지명을 북안등이라 하고, 왼쪽 야산 지명을 사침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풍수 형국과 죽림리 송암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선돌은 상호 관련성이 있는 듯하다.
죽림리 송암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선돌은 마을 앞면 양쪽에 위치하는데, 마을 쪽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위치하는 당산 선돌이 할아버지 당산이며, 오른쪽에 위치하는 당산이 할머니 당산이다. 당산제 줄다리기가 끝나면 암줄은 할머니 당산 선돌에 감고 숫줄은 할아버지 당산 선돌에 감는다. 마을 주민들은 할머니 당산에 줄을 감는 의식을 ‘당산할머니 옷 입힌다’라고 한다.
[위치]
마을 앞면 좌우에 위치하는데, 마을 입구에 해당되는 곳이다. 두 선돌 간에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두 곳에 당산 선돌을 세운 것은 옥녀 직금형에서 여성의 하체를 고정시키는 진압 의미를 갖는 비보 선돌이라 할 수 있다.
[형태]
재질은 화강암이고, 크기는 할아버지 당산이 높이 90㎝, 넓이 29㎝, 폭 15㎝이며, 할머니 당산은 높이 90㎝, 넓이 27㎝, 폭 20㎝이다.
[의례]
송암마을 당산제의 제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마을총회에서 선출된 제관과 화주는 당산제 3일 전부터 수신에 들어간다. ‘3일치제’라 하여 정월 14일부터 제사가 끝날 때까지 3일간 엄격한 금기를 엄수해야 한다. 정월 14일 새벽 화주와 제관집 대문에 금줄이 걸리고 황토 흙이 뿌려진다. 부부합방을 금하며 궂은일은 보지 않고, 제일 3일 전 11일경부터는 음식도 먹지 않으며 매일 목욕재계를 한다. 식사로는 소량의 밥, 김, 간장을 먹으며, 비린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대변을 보고 나서는 목욕을 하고 소변을 보았을 경우 세수를 해야 한다.
제물은 화주집에서 차리고, 주민들의 출입이 금지된다. 정월 14일 새벽에 화주들이 고창장으로 장을 보러 나가면 마을로 진입하는 각 진입로에 금줄을 치게 된다. 금줄은 대나무에 왼새끼를 걸어놓는다. 제물 구입은 마을 이장과 화주가 준비하는데, 제물과 제기를 구입할 때 값을 깎지 않으며, 제물을 만들 때에도 말을 하지 않고 입에 마스크를 쓴 채 장만을 한다.
제물은 매밥, 삼실과, 삼채[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뜸북이 등이며 육류와 비린 생선은 일체 놓지 않고, 제물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간도 보지 못한다. 제관과 화주의 목욕재계는 다른 사람들 몰래 가재골에 올라가 샘물로 한다. 제관과 화주는 마을 제사가 끝난 이후 3개월 동안 궂은데[상가, 산고가 난 집]도 가지 말아야 하고 궂은 음식[개탕국]도 먹지 말아야 한다.
송암마을의 당산제는 천룡제와 당산제와 줄다리기로 구분된다. 14일 이전에 집집마다 돌면서 마당굿~철륭굿[천룡굿]~조왕굿~샘굿의 순서로 걸립굿[지신밟기]을 행한다. 축원의 대가로 전곡(錢穀)을 걷는데 성의껏 낸다. 남자들이 당산제와 천룡제를 거행하는 동안 부녀자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철륭시루를 만들어 안방에 놓고, 장독대 위에 불을 켜 안택 고사를 지낸다. 집에서는 부녀자들이 정성껏 떡시루를 만들고 떡시루 가운데에 접시물을 떠놓으며, 백지를 말아 접시에 참기름을 붓고 등불을 만들어 방의 윗목에 놓는다. 대체로 집안의 고사는 천룡제 이전에 마치는 게 상례이다.
14일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이 2~3다발의 볏짚을 추렴하여 줄다리기에 쓸 줄을 만들기 시작한다. 14일 오전에 줄을 드리는데, 암줄과 숫줄로 나누어 제작을 하며 줄의 길이는 암줄 30m, 숫줄 30m의 길이로 만든다. 오후에는 오방돌기를 한 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서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암줄은 여자가 잡고 숫줄은 남자가 잡아당기는데, 암줄과 숫줄을 결합시키기 전에 암줄과 숫줄로 하여금 3번씩 맞절을 하게 한다. 승부는 3판 양승으로 나는데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여자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줄다리기를 마친 후에 남자들은 숫줄을 들고 굿을 치면서 할아버지 당산에 가서 줄을 감고, 승부에서 이긴 여자 편은 굿을 치면서 암줄을 들고 할머니 당산에 가서 줄을 감는다. 이러한 의식을 “당산에 옷을 입힌다”고 한다. 줄감기가 끝나면 밤 9시경에 축원굿을 청하는 마을 사람의 집에 가서 늘어지게 판굿을 치고 논다.
2~3집을 돌아가며 놀고 나면 자정이 가까워지고 풍물패는 천룡제를 준비한다. 마을 주민들이 횃불을 만들어 밝히고 농악을 울리는 사이 11시경에 화주와 제관 3명이 제물을 짊어지고 천룡당으로 올라간다. 옥녀봉 가재골에 올라가 천룡당에 당도하여 천룡제를 지낸다. 천룡당의 제의는 강신~헌작~참배~독축~소지 절차를 마친 후에 제물을 백지에 싸서 땅에 묻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끝난다.
다시 화주집에 와서 제물을 가지고 할아버지 당산에 가서 같은 방식으로 제의를 거행하고, 다시 화주집에 돌아와서 새로운 제물을 준비한 뒤 할머니 당산으로 가서 같은 방식의 제의를 거행한 후 15일 새벽 2시경 파제한다.
[현황]
할머니 당산은 20여 년 전, 밭에서 작업을 하던 포클레인 기사의 실수로 당산 선돌이 쓰러졌는데, 이후 젊은 여자들 4~5명이 뇌출혈로 죽어나가는 재앙이 발생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을 주민이 선몽을 하였는데, 할머니 당산이 나타나 몹시 춥다고 호소하자 주민들이 음력 2월 1일을 택일하여 협력하여 당산 선돌을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죽림리 송암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선돌은 마을의 좌우 끄트머리 부분[옥녀의 발 부분]에 세워져 압승형의 풍수 비보석 기능을 갖는데, 수구막이 선돌과는 다른 형식의 당산 선돌이다. 또한 할머니 당산이 마을 주민에게 선몽하여 춥다고 옷을 입혀달라고 하였다는 내용에서 미륵선돌의 성격도 나타난다. 마을 주민들이 선돌을 세우는 데는 목적이 있는데, 송암리는 불교 민속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