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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28
한자 柳慶福妻蔚山金氏旌閭
영어음역 Yu Gyeongbok Cheo Ulsan Gimssi Jeongnyeo
영어의미역 Memorial Gate for Lady Gim, Yu Gyeongbok'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35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열녀비
양식 정려 비각|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786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354 지도보기
소유자 고흥유씨 종중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경복(柳慶福)울산김씨(蔚山金氏)의 정려각.

[개설]

1786년(정조 10) 고흥유씨유경복(柳慶福)의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열행으로 정려되었다. 울산김씨는 어려서 부친을 여읜 뒤 편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행하였고 형제간에 우애도 돈독하였다. 결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이 큰 병에 걸리자 주야로 시탕(侍湯)[병환에 약시중을 드는 일]하고, 대신 죽기를 기원하였으나 남편이 죽고 말았다.

이에 울산김씨는 물과 밥을 끊고 손수 염습하고 혈서를 쓴 뒤 관에 넣고 같이 죽기를 서원하였다. 이때 시어머니가 억지로 미음을 먹이자 울산김씨는 바로 토해버리고 끝내 죽었는데, 당시 나이 20세이었다. 황윤석(黃胤錫)이 기(記)를 지었다.

[위치]

전주에서 정읍을 지나 국도 23호선을 따라 고창읍에 진입하기 직전에 고창읍 초입인 성두리 상성마을이 나온다. 상성마을에 유경복 처 울산김씨 정려가 있다. 주위에는 비석이 많이 늘어서 있다.

[형태]

유경복 처 울산김씨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안에는 1958년 10월에 5대손 유용상이 쓴 비석이 있다. 벽에는 울산김씨의 편액이 걸려 있다. 주면의 지반과 같게 하여 작은 돌로 주초를 놓았고,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과 결구하였다. 벽체에는 홍살을 둘렀고 홑처마에 우진각지붕이며, 공포는 익공양식이다. 비각 정면에 있는 현판에는 ‘고학생 고흥 유공경복지처 열부 울산금씨려(故学生高興柳公慶復之妻烈婦蔚山金氏旌)’이라 쓰여 있다.

[현황]

편액이 오래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에는 충효와 절의를 강조하여 유교적 통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정려를 내렸다. 유경복 처 울산김씨 정려를 통해 아내 된 여인의 절의를 느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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