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3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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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添襟亭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원촌리 949-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원철 |
해당 지역 소재지 | 첨금정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원촌리 9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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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각석|고인돌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원촌리에 있는 각석.
[개설]
첨금정(添襟亭)은 원촌리의 논 가운데에 있는 각석으로 고인돌로 축조된 커다란 덮개돌에 조선시대 각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래는 길 옆에 자리하였으나 주변이 모두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논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다.
[명칭 유래]
『무장읍지(茂長邑誌)』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따르면 무장현 동쪽 5리에 첨금처(添襟處) 혹은 첨금정(添襟亭)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군역에 나가는 사람을 송별할 때 집안사람들이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는 곳이라는 의미로 ‘첨금처’라고 불렀다. 또 이곳 길옆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어 앉을 만하고, 나무 그늘이 있어 마치 나무가 정자처럼 그늘을 제공하여 앉을 수 있는 곳이었기에 ‘정자 정(亭)’ 자를 붙여 ‘첨금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후대에 이 지역이 논으로 개간되면서 나무와 자잘한 바위들은 모두 치웠으나 큰 바위는 그대로 두었다. 고인돌로 추정되는 큰 바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확인된 바로는 임술년인 1922년 김해김씨장사군파종친회의 유사 두 명이 새겼다고 한다. 바위의 오른쪽에는 “만력 25년 10월 일에 통제사 이순신이 새긴, 선무원종공신김해김공 위(緯)·한·천귀(天貴)의 순절비”, 중앙에는 “기훈암(記勳岩), 임술 4월 일 중간, 유사 8대손 전도사 치준 장재 치수”, 왼쪽에는 ‘첨금정’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자연환경]
첨금정이 위치한 곳은 원촌리의 논 한가운데로, 앞쪽에는 첨금산이 자리하고 있다.
[현황]
첨금정에 이름이 새겨진 김위(金緯)는 아버지 김천록(金天錄)이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자, 그 시체를 찾아 무장에 안장하고 원수를 갚기 위해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싸우다가 진도해전에서 전사하였으며, 공신 3등훈에 봉하여졌다.
김한[1575~?]은 김위의 막내 동생으로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무장에 남아 가족을 보호하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무과에 급제하여 장예원판결사를 지내 공신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김천귀(金天貴)[1556~1597]는 형인 판관 김천록과 함께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여 순절하였으나 선무원종공신 녹훈에는 누락되었다.
이렇게 보면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인물은 김위 한 명이며, 더구나 김한은 공신이 아니므로 바위에 새긴 글은 전체적으로 부정확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후손들이 1922년 바위에 글을 새기면서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첨금정 바위가 길옆에 있을 때에는 나무와 크고 작은 바위들이 함께 있어 앉아서 쉴 만한 곳이었으나 주변이 논으로 개간되면서 나무와 바위들이 치워져 지금은 첨금정만 홀로 놓여 있다.